저소득 어르신 전기료를 대신 납부해주는 교회

충청노회 청북교회(박재필 목사 시무)는 지난 4일(2014.3.) 상당구청과 취약계층의 노인들을 위한 전기료 후원 협약을 맺었다.

냉난방 기기 사용이 많은  여름과 겨울 특히 노인 세대는 건강상의 이유로 심한 더위와 추위로부터 더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전기료를 아낀다고 참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교회가 위치한 상당구 내에서만도 4명의 노인들이 혹서기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에어컨도 아닌 선풍기 사용을 참고 생활한 결과다.

청북교회 전기료 지원 협약식

교회는 구청 복지과에서 추천한 60명의 노인 세대(국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65세 이상 노인)에 매월 3만원씩 총 1080만 원을 지원하게 된다. 혹서기 및 혹한기 대비가 필요한 5∼7월, 10∼12월 총 6개월 동안의 지원이다. 그동안 전기장판, 선풍기가 있어도 사실상 사용하지 못했던 노인들이 교회의 따뜻한 관심으로 조금이나마 전기료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북교회는 같은날 월드비전과도 ‘섬김과 나눔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협약식’을 맺고 ‘한 구역, 한 생명 살리기 아동 결연 캠페인’, 교회 절기별 사랑 나눔 캠페인, 월드비전 해외사업장 식수위생사업 등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by코이네 뉴스

눈물의 기도가 진주같은 사람을 만든다

눈물의 기도가 진주같은 사람를 만든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르는 진주를 선물한다. 딸이 결혼 후 흘릴 눈물을 상징하는 선물이다. 왜 하필 진주인가?

진주

진주는 ‘아비큘리데’라는 굴의 몸에 들어온 모래알이 변해 생성된 보석이다. 몸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을 생성해 살갗에 파고든 모래알을 끊임없이 감싸거나, 아예 모래알을 무시해버려야 한다. 나카가 모래알을 감싸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고통의 분량만큼 진주는 점점 커진다. 모래알을 무시하면 통증은 없지만 살이 곪아서 곧 죽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의 모래알을 만날 때 기도로 맞서 눈물의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파멸하는 사람이 있다. 역경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눈물은 강력한 힘을 갖는다. 아내의 눈물은 남편을 감동시킨다. 자녀의 눈물은 부모의 마음을 녹인다. 눈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인다. 곡읍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소연할 상대가 없는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 크게 놀란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보면 아무 말도 못한 채 울음만 터뜨린다. 어린이의 통곡은 가장 강렬한 사랑의 표현이다.

고아는 울지 않는다. 고아는 슬프고 괴로워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울어도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가 눈물샘을 막아버렸다. 고아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고아처럼 빙결된 영혼을 녹이는 것은 사랑뿐이다.

미국 미시간주의 성 요셉보육원에 아주 포악한 고아 소년이 있었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웠다.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다. 입양도 실패했다. 고아 소년은 웃음과 눈물을 모두 잃어버렸다. 어느 날, 베레다 수녀가 그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나님은 너를 놓지 않는다 . 너를 사랑한다. 힘들 때는 울며 기도하라.”

소년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피자 만드는 일에 몰입했다. 피자 한 판을 11초에 반죽하는 최고 기술자가 됐다. 나중에는 피자 체인점을 만들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사람이 바로 도미노 피자를 만든 톰 모너건이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눈물의 기도는 진주를 만든다.

눈물의 기도는 보석같은 사람을 만든다!!

by 박성배 목사

이글을 적으신 박성배 목사님은 서울장신대 겸임교수입니다.

순수복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미가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떤 이들은 종종 순수 복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우리 기독교가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나온 생각인 것 같다. 도대체 순수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순수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순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목숨 바쳐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구도를 중시하는 종교처럼 동굴 깊숙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동굴에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사랑할 사람들이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고, 구원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 사회공동체 전반에 걸친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걸쳐 예수님이 가르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를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미가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처럼 너희가 정의를 아는 것이 본분이 아니냐고 당시 타락한 지도자들을 향해 돌직구를 날린 것처럼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린 더 깊이 공부해야 하고, 더 깊이 기도해야 하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 있다. 불의를 행하고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교회만 나오면 모든 심판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가당치 않는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온갖 불의를 행하면서도 미가가 비판하고 있는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처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무식도 이만하면 병이다.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꼴까타 마더하우스 담벼락에 붙어있는 시

마더 테레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인도 꼴까타 마더하우스 벽에 이런 시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여기에 소개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꼴까타 마더하우스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당신이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가장 작은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당신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면사람들이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라.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예수님의 사랑이군요.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 헌금 때문에 받은 어린시절의 상처

어린시절 누구나 다 한 번쯤 교회에 가 본 기억이 있을겁니다. 그 당시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그 땐 친구들과 신나게 흙을 밟으며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기에, 교회는 저에게 더없이 신비하고, 즐거운 놀이공간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평소에 대하지 못한 특별한 맛있는 먹거리를 주었기에 이번에 가면 뭘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맛있는 먹거리가 넘쳐나다보니 먹는 거 준다고 교회에 가진 않지만, 30년 전만해도 간식이란 개념이 참 귀했던 시절이라 교회에 가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가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 받은 충격이 어린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헌금 때문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에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특별한 날이나 필요한 것을 살 때 부모님께 돈을 받았고, 어떨 때는 그걸 조금 남겨서 꼭꼭 숨겨두었다가 필요한 것을 사던 시절이었습니다.

사건이 생긴 그날, 친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교회에 갔었습니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예배, 게임, 성경공부 다 좋았는데 딱 한가지 좀 부담스런 시간이 바로 성경공부하는 시간에 내는 헌금순서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헌금을 내지 않고, 담임선생님과 성경공부하는 시간에 헌금을 걷고는 얼마를 내었는지 출석부 같은 곳에 기록을 해두더군요. 전 낼 헌금이 없어서 항상 빈손이었구요.

그런데 그날, 다른 날은 별 말이 없던 선생님께서 제가 헌금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친구들 앞에서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당한 저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구요, 어린마음에 너무도 창피해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다음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이해 못했던 건 그 선생님의 태도였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제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더군요. 도리어 제가 결석한 그 다음 주부터 저희 집에 오셔서 절 데리러 가려하시는데, 이제 교회에 안나가니 오시지 말라해도 그냥 막무가내로 계속 찾아오시는 겁니다. 정말 그 당시에는 너무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교회가 질리게 되더군요. 아마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저도 교회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백일기도문그런데 팀블로그를 하면서 블로그 하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벌써 알게된 지 5년이 되네요. 얼마 전 그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십니다.

“줌마님을 위해 100일 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고맙기도 하고, 또 절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목사님의 따스한 마음에 살짝 감동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제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커서 그런지 선뜻 교회에 다시 가고 싶진 않네요. 어린시절의 그 충격이 제 마음의 문을 너무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요즘 교회가 사회적인 질타도 많이 받고, 또 교회 내부적으로도 교세가 감소한다고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겠지만 제 경험 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자연스럽게 다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억지로 하게 하고, 강압적으로 한다고 해서 신앙을 갖게 되진 않습니다. 도리어 역효과가 나죠. 제가 피부로 경험한 우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절 위해 100일 기도하신다는 목사님 때문에 저의 경험을 여기 코이네 뉴스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by 줌마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가 한국교회에 날린 돌직구

 최근 발간된 책 한 권이 한국 교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바로 사랑의교회 설립자인 고(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씨가 펴낸  ‘서초교회 잔혹사(저자 옥성호, 박하 펴냄)’이다. 100% 허구인 ‘소설’로 분류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옥성호 씨가점은 소설의 배경이 최근 수년 동안 사회법 소송전에 휘말리고, 비리 의혹으로 여론에 오르내린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교회 안에서 벌어졌다고 보기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김건축’ 목사는 아프리카에서 한인교회를 운영하다가 ‘서초교회’ 담임으로 발탁돼 부임한 후 소위 잘나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 내 속임‧협박‧거짓이 난무하는 정치를 시작했다. 서초교회는 그의 구상대로 한 동안 정말 잘나가는 행도를 하다 인터넷 한 언론에 김 목사의 만행들이 제보되면서 큰 갈등에 휩싸인다. 하지만  김 목사는 회개는커녕 오히려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내용이다.

서초교회잔혹사 표지

이 책이 발간되자 사랑의 교회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한다. 하지만  저자 옥성호 씨는 사랑의교회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며, “ 소설 속의 ‘서초교회’는 서울 강남의 ‘서초동’이 지닌 부유함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며 “특정 교회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금기와 성역이 위선과 거짓을 양산하고 있다며, 이걸 깰 목적으로 이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를 썼다고 밝혔다.

이 소설에서 집중한 건 ‘비리 목사’의 문제다. 소설 속 김건축 목사는 자신의 영욕을 위해 왕처럼 부목사들을 부리며 부정을 자행한다. 옥씨는 “주변에서 많은 목사님들을 봐왔는데, 요즘 목사님들은 마치 황제와 같은 느낌으로 변해버렸다”며 “결혼식 주례가 들어온 여자를 성추행하고, 헌금을 아들 회사에 갖다주기도 한다. 소설은 현실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라고 말한다.

`서초교회 잔혹사`는 신도 수 늘리기에 급급한 일부 대형교회와 욕망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위선적 태도에 대한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이미 기독교계 안팎에서는 교회의 대형화와 사유화 그리고 지나친 대형 성전 건립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나온 `서초교회 잔혹사`는 한국 기독교의 자성을 위해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3위에 예수님이 선정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요즘 뜨는 유명 배우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평소 존경하는 위인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리스토텔레스나 최근 세간에 떠들썩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 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나타났다. 그 다음이 플라톤이요, 그 다음이 예수님이다. 예상밖 조사 결과라 눈길을 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으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

☞ 가장 유명한 인물이 예수님이 아니라니?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성경보다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 인류의 문화자산이라고 일컫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디 하나 성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다.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예수님보다 더 유명하다. 이 연구결과는 뉴욕타임즈 등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수님보다 유명도 높다’ 어떻게 조사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예수님보다 더 유명하다는 연구결과는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 소속된 거시연결그룹(Macro Connections Group)이 조사한 것이다. 거시연결그룹의 새 프로젝트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언어의 수와 2008년 초부터 2013년 말까지의 클릭 수 등을 종합해 유명도를 산출한 결과 아리스토텔레스가 1위에 올랐던 것. 부연하자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각국 언어로 소개된 정도와 페이지뷰를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예수보다 유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 아리스토텔레스와 예수의 페이지뷰는?

MIT 미디어랩 거시연결그룹의 지난 6000년간 가장 유명한 인물 조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52개 언어로 위키피디아에 소개돼 있었으며 6년간 페이지뷰가 5천600여만 회에 달했다. 2위는 플라톤, 3위는 예수였으며 소크라테스와 알렉산더 대왕,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순서대로 4∼6위에 올랐다. 공자는 7위로 동양권에서는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줄리어스 시저와 호메로스, 피타고라스가 각 8∼10위였으며 아르키메데스와 모세, 무함마드, 아브라함, 히틀러, 모차르트 등으로 순위가 이어졌다.

☞ 예수님 순위가 왜 이렇게 낮을까?

예상밖으로 예수님 순위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보다 낮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우선 기독교인 숫자를 살펴보자.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는 지난해 전 세계 71억 인구 가운데 종교인을 살펴보면 기독교인이 23억5400만명(33%), 이슬람교도가 16억3500만명(22.9%)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는 모두 1,37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9.2%(당시 총인구 4,704만명 기준)으로 나타났다. 이 중 개신교가 861만명(18.3%), 천주교가 514만명(10.9%)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천주교의 약진이 눈부시다. 신자가 지난 1985년 186만명에서 20여년 만에 세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천주교 측은 2013년 기준 536만명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개신교는 같은 시기 648만명에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세계와 국내를 돌아봐도 기독교인의 숫자는 둔화되고 있다. 기독교인의 숫자 둔화도 예수님의 위상과 관계가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왜 예수보다 순위가 높을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위인전을 읽게 된다. 위인전 목록엔 아리스토텔레스는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위인전 목록에서 빠져 있다. 또 학교에 들어가 교과서를 배우게 되면 빠지지 않는게 아리스토텔레스다. 하지만 수업중에 배우는 교과서에도 예수님은 언급이 거의 없다. 말하자면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레 예수님을 교회가 아니면 접할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 예수님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순위가 낮은 진짜 이유는?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다. 이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니 성탄절날 가장 떠오르는 것을 꼽으라는 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산타클로스가 단연 으뜸이었다. 그 다음이 선물이었고, 외식이었다. 설문조사 결과엔 예수님이 한참 아래다. 속된 말로 예수님의 생일날인데 예수가 아닌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사슴코, 크리스마스 캐롤 등이 더 우선시되는 세태속에선 예수님의 존재는 점차 퇴색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이다. 그런데 이 날도 예수님보다 계란이 더 먼저 떠오른다는 한 설문조사는 뭘 의미하는 것일까. 세태를 탓해야 할까.

☞ 예수님 더 알기 클릭! 클릭!

전 세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순위가 낮은 것은 그만큼 온라인 상으로도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스마트시대에 예수님의 존재는 점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루에 한번, 한달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예수님을 검색해보면 어떨까. 네이버를 검색하기에 앞서 예수님부터 검색하면 어떨까.

검색어 예수님이 많을때 페이지뷰도 올라가고 온라인 생태상 예수님과 크리스천, 기독교에 대한 더 많은 검색결과가 나타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 세속보다 예수님을 먼저 올려드리는 신앙인의 자세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수님보다 순위가 높다는 사실은 오늘날 세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오늘날 교회를 돌아봐도 세속적인 것이 더 먼저 침투한다. 그래서 성탄절날 예수님을 먼저 올려드리기 보다는 아이들 재롱이나 유희에 더 심취하지는 않는가.

교회 속에서 예수님을 찾기 보다는 세속적인 물결은 더 깊이 들어와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교회가 사회를 바꾸는 것보다 세속 사회가 교회를 바꾸는 힘이 더 크다. 진작 깨어 있어야할 크리스천들이 오히려 세속에 더 빨리 동화되고 세속의 흐름 속에 유유이 내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by세미예

평신도로 내가 섬기는 교회에 등록하겠는가?

한번씩 짧은 질문이 목회자로서 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 아래의 질문이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사역자가 아니라면, 평신도로서 지금 섬기는 교회에 계속해서 출석할 것인가요?”

아마 이 질문을 목회자들이 직접 듣게 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그런데 직접적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이런 질문에 많이 봉착하게 됩니다.

예전에 필자도 아는 친구로부터 자기교회 성도가 이사를 하게 되어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게 되는데, 너희교회에 출석하면 어떻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교회에 와야지, 반갑게 대답을 하자, 그 친구가 너희 교회는 어떤 점이 좋은가? 소개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도 이러이러해서 이 교회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솔직히 그 때 참 많이 당황했습니다.

지금 한 교회의 담임이 되어서도 그 때의 충격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자문해 봅니다. 만약 내가 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라 평신도로 방문했다면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할 것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존맥아더목사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충언

지난 4일(2014.3) LA중앙일보에 미국의 대표적 강해 설교가 존 맥아더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존 맥아더 목사는 마스터스 대학교 총장이며, 선밸리 지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에서 45년을 시무하고 있고, 또 한국전과 깊은 인연이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주로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우려를 금치 못하며, 중심어린 충고로 한국교회의 변혁을 바라고 있었다. 그가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맥아더 목사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19.4%라는 말에 “당연한 결과”이며,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는 이제 하찮은 곳으로 전락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목소리를 잃었다. 미국은 기독교의 가치를 잃었고, 그걸 잃는 데 200년이 걸린 셈이지만, 한국은 그 과정을 밟기도 전에 갑자기 끝난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교회가 본질을 잃은 채 물질주의에 기반한 소비자적 개념과 상대적 가치 등 세상의 흐름을 좇다가 결국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것에 있으며, 한국교회는 특히 짧은 역사 속에 갑자기 규모가 커지면서 기독교 가치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힘과 권위만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둘째, 교회는 진리와 실제적인 삶의 나눔을 갖는 곳이 되어야 한다.

맥아더 목사는 사랑의교회가 3억 달러(약 3000억 원) 규로로 교회를 건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며, 교회 건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그는 “현재 한국의 물가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 교인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 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며, 차라리 그 돈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기독교엔 지금 ‘거대한 빌딩(empire building)’이 너무 많으며, 대개 교회 확장은 목사의 개인적 야심과 연결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랑의 교회의 건축이 목사의 야심에 의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깊은 우려를 나타내었다.

맥아더 목사는 젊은 층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에 대해 “교회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만 치중했다”고 교회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을 편하게 하고, 복음을 최소화시킨다면 언젠가 그들은 ‘내가 왜 여기에 있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며 “교회가 허구가 아닌 진리와 실제적 삶을 나누는 곳임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by 코이네뉴스

이만재교수가 말하는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는것일까? ‘막쪄낸 찐빵’으로 유명한 칼럼리스트이자 숙명여대 교수인 이만재교수가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는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교회 가기 싫은 이유 39가지와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교회 가기 싫은 이유 38가지를 열거하며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기싫은이유“신세대 젊은이들한테 그 좋은 하나님 사랑 얘기를 해주자면, 그러자면 우선 내 자신이 신세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순서였다. 저들의 의식성향을 알아야 하고, 저들의 행동양태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저들이 왜 교회를 멀리하려 하고, 왜 교회를 떠나려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오랜 기도와 숙고 끝에 나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 세세한 사연들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이 책 내용 각 항의 화두로 삼기로 했다. 신앙심이 이미 깊은 경지에 들어가 있는 기신자보다는 늘 초신자의 시각과 초신자의 언어로 다른 초신자와 다른 비신자를 만나고 싶었다.

책을 읽는 동안 느꼈겠지만 그래서 나는 자칫 정형화도기 쉬운 교회식 논리나 율법처럼 들리기 쉬운 성경적 어법을 가급적 피하고자 하였다. 어떻게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디 뜻과 섭리를 보다 쉬운 생활언어와 피부언어로 바꿔서 닫힌 마음의 저들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면서 아프고 뜨겁고 곤혹스러운 화두들 앞에 조심조심 접근하곤 했다.”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들은 왜 교회가기를 거부할까?

1. 노방전도의 모습이 싫다. 2. 여유가 없다. 3. 말 많은 전도사가 싫다. 4. 부자 교회가 싫다. 5. 믿을 건 나 자신뿐이다. 6. 술 담배도 아예 못하는 것이 싫다. 7. 종교가 미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8. 타종교 타종파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다. 9. 종교 없이도 별 불편함이 없다. 10. 부모님이 반대하신다. 11. 조용한 교회가 없다. 12. 교인 아니면 다 사탄인가? 13. 기독교는 외래 문화이다. 14. 광신도들의 광적 행태가 무섭다. 15. 허황된 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믿겠는가? 16. 팔자 편한 사람들의 교회지. 17. 동정녀 마리아 잉태가 이상하다. 18. 건축헌금이 무섭다. 19. 세상 문화를 사탄으로 매도하다니. 20. 무교회 종교론에 공감한다. 21. 꼭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22. 광란의 기도원 풍경이 혐오스럽다. 23.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거짓말이 싫다. 24.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못 믿겠다. 25. 종교생활로 말미암는 각종 제약이 싫다. 26. 교회의 요구사항이 뻔하다. 27. 무전여행 때 냉대 당했다. 28. 목사 결혼 세속적이다. 29. 현찰로 돈 내면 천당서 갚는다고? 30. 유흥업 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있겠는가? 31. 부흥회 가보고 어이 없었다. 32. 형제 자매 장로 집사 호칭이 싫다. 33. 가정 파괴 광신도를 봤다. 34. 세무 조사 반대 이해할 수 없다. 35. 양보 모르는 압력집단이다. 36. 죽은 후 천당에서 영생한다고? 37. 붉은 십자가가 너무 많다. 38. 개척 교회의 과잉 경쟁이 싫다. 39. 신체 장애 때문에 안 간다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은 왜 교회 가기를 싫어할까?

40. 각종 모임 참석에 대한 강요가 많다. 41. 기업화된 교회의 위화감이 싫다. 42. 빈민 구제를 외면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43. 교회에 쓸 만한 총각이 없다. 44. 감사할 줄 모르는 탐욕 메카니즘이 싫다. 45.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46. 교회는 또 하나의 계급 사회이다. 47. 교회는 고리타분하다. 48. 양보없는 일등주의 세속성이 싫다. 49. 세상과 타협하는 기회주의가 싫다. 50. 교인들은 재미가 없다. 51.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겁준다. 52. 헌금 명단 공표는 속보인다. 53. 일요일에 늦잠 잘 수 없다. 54. 자유로운 모험 정신을 억압한다. 55.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56. 목사 수준이 낮은 것 같다. 57.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나? 58. 교회의 종파 분쟁을 이해할 수 없다. 59. 이중 인격자가 많아 싫다. 60. 헌금따라 사람 대접이 달라서 싫다. 61. 교회의 단순 논리는 사고력을 퇴행시킨다. 62. 마음 터놓을 깊은 친구가 없다. 63. 진화론을 부인하는 교리를 믿을 수없다. 64. 교회에서 연애를 많이 한다. 65. 엉터리 목사가 많다. 66. 뭔가 달라야 한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67. 교회 비판 함구는 불문율인가? 68. 사기꾼 목사를 봤다. 69. 예수는 좋지만교회는 싫다. 70. 능력 이상의 직분을 강요한다. 71.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많다. 72. 이성 교제 제약 받는다. 73. 음치라서 찬양이 재미없다. 74. 지옥 협박 고립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75. 자신의 이중생활이 가책스럽다. 76. 아전인수 자기합리화 도구. 77. 신분차별 때문에 벽을 느꼈다.

이 책이 발간한 해가 1997년이다. 그 내용을 보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내용들도 있고, 몰라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당시 그가 관찰한 내용들은 그 당시로도 이미 오랫동안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받았던 내용이다. 안타까운 것은 1997년의 문제가 2014년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17년동안 한국교회는 자신의 문제를 개혁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약점이 더 깊어졌다는 것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목회관부터 바뀌어야 한다. 말씀을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이 말씀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나가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개혁이며, 우리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인 것이다.

by 코이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