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변화되는 성경공부
성경을 어떻게 공부해야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에까지 나갈 수 있을까요?
주님,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언제까지든지 그것을 지키겠습니다.(시 119:33)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만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책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성경의 각각의 책들이 언제 쓰여졌으며, 누가 썼으며, 어떻게 보존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쓰여지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또 그 책의 문학형태는 어떤 것인지 등을 공부할 때 올바르게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히브리 사람들의 우주관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야서를 읽기 위해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살았던 유다 나라의 역사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가지 복음서가 있는데 각각 쓰여진 상황과 그 책을 읽는 대상이 달랐는데, 그것을 알아야 그 복음서들의 기록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도 마찬가지로 그 편지를 보낸 교회의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은 그 말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모른 채 성경을 읽는 것은 그 말씀을 잘못 해석하기 쉽고 문자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이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간단한 주석과 이런 역사적 배경을 함께 담은 성경책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도움이 됩니다. 또 구약성서개론 혹은 신약성서개론 같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런 책을 통해서 공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은 교회에 함께 모여서 하는 성경공부 시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생활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할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수요성서연구 시간에 현재 마태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6월경 <케리그마>라는 새로운 교재로 성서연구반을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깨닫게 하소서
다음으로 이 시인은 그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내가 주의 법을 살펴보면서, 온 마음을 기울여서 지키겠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처음에 그 역사적 배경과 상황 그리고 문학적 구성 등을 공부하는 것은 그 본문에 담긴 메시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 본문이 무슨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 깊게 읽는 까닭은 그 본문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본문은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만 어떤 부분에서는 얼른 그 뜻을 알기 어려워서 한참 앞뒤를 읽고 그 말씀이 쓰여진 상황을 검토하면서 연구를 한 뒤에라야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시편 23편 같은 경우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그것은 이해하기 쉽고 그 내용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같은 경우 여러 가지 복잡한 제사 제도와 율법들이 적혀 있어 우리가 얼른 그 레위기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어떤 것은 쉽게 이해가 가는가 하면 어떤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천국은 마치 밭에 심은 겨자씨와 같아서 싹이 나서 자라 나무가 되면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겨자씨가 천국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큰 나무가 천국이라는 것인지, 또 그 천국의 어떤 성격을 말씀하는 것인지 얼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복음서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탄생과 그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하지 않고는 제대로 그 메시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문이 바로 신학입니다. 목사는 바로 이런 신학을 공부하여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는 주로 성경 본문에 나타난 메시지를 바르게 찾아내고 해석하여 오늘의 상황에 맞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선포된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목사들이 신학을 올바로 공부하여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 강단의 문제는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목사들이 상당수 점령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성숙하기 위하여서는 신학교육의 질이 보다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항상 말씀을 상고하므로 설교가 제대로 된 설교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평신도들은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을 선호하지, 그 설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자기 문제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앙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우주적인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생각할 때에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며,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선포하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문자에 집착한 나머지 그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하나님께로 향하기보다 자신에게 향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게 만들 것입니다.
행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이 시인은 주의 말씀의 길에 행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셔서, 주의 계명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아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그것은 대체로 성경공부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의 최종적인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깨달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주의 계명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중요한 것은 실천 없는 깨달음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진리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진리대로 살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그 진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깨달은 말씀, 터득한 진리를 따라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결국 그 믿음은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변화가 없는 것은 공부에서 배운 말씀대로 저들의 삶이 변화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는 단순한 지식을 얻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배운 진리를 자기의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할 때 성경공부의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주제를 “말씀따라 이루는 새 천년”이라고 하였는데, 말씀따라 무엇을 이룬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따라 우리 삶의 변화를 이룩한다는 뜻입니다. 새 천년은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며, 그 진리를 따라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의 말씀의 길에 행하게 하소서” ―이것이 금년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이 되시기 바랍니다. 욕망을 좇아 행하던 길에서 돌이켜 이제는 주의 말씀에 주목하면서 그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이 지시하는 길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화려한 물질문명에 매혹되어 정신을 잃고 바라보던 데서 돌이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의 계명들에 주목하십시오. 그래서 그 말씀들이 이끄시는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문제에만 집착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를 보지 못하였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역사를 통찰하면서 그 크신 역사와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면서 찬송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말씀따라 새 천년을 이룰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과 복이 우리의 삶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동교회 유경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