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자세
성경을 읽는 자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경건하고 겸손하게 읽어야 한다. 성경을 어떤 자세로 하면 좋을까? 성경을 읽는 자세 10가지를 살펴보자. 기도하며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를 […]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에 대해 이해한다.
코이네 박동진 목사입니다. 시체나 사체를 만지면 부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에서 제물을 잡은 사람들은, 양이나 소, 염소 등을 도축한 사람들은 부정해진 것 아닐까요? 이런 의문이 들어 연구를 해봤습니다. 성막에서 제물을 잡는 행위는 시체를 만져 부정해지는 ‘시체 부정(טמא מת, Tame Met)’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물을 잡는 사람들은 부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구체적인 성경적,
코이네 박동진 목사입니다. 오늘은 유월절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절기입니다. 우리는 보통 유월절 하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구원받은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 텍스트와 역사적 문맥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놀랍고도 웅장한 구속사적 ‘비하인드 팩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1. 성막이라는 좁은 공간,
성경에서 가장 세심하고 독특한 제도 중 하나는 단연 민수기 8장에 등장하는 ‘레위인의 은퇴 규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고된 노동과 성물 운반을 담당하던 레위인들에게 25세부터 사역을 시작해 50세가 되면 정식 직무에서 물러나라고 명하셨습니다(민 8:24~25).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고대 광야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50세라는 나이는 육체적·영적 노련미가 정점에 달했을 시기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이른 시기에
인생의 광야 길을 걷다 보면 문득 하늘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스스로의 허물에 걸려 넘어질 때, 우리는 은연중에 하나님을 매서운 눈으로 감시하는 ‘심판자’나, 끊임없이 무거운 짐과 의무를 지우는 ‘법관’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행위를 달아보시는 무서운 존재로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아장아장
자복(自服), 감추어진 죄를 ‘부지 중의 죄’로 바꾸는 은혜 우리는 흔히 ‘부지 중에 지은 죄’라고 하면, 아예 모르고 저지른 단순한 실수나 불가항력적인 행동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부지 중의 죄, 즉 히브리어 ‘쉬가가(שְׁגָגָה)’의 성격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여기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허물뿐만 아니라, 순간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혹은 정욕과 연약함에 이끌려 ‘알면서도’ 저지른 범죄까지도
레위인과 제사장. 성막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특별히 선택하셨고, 그들 중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동행하는 자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무너짐은 ‘질서의 왜곡’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시내산에서 제사장 가문과 레위 지파를 세우셨을 때, 그 장엄한 설계도 안에는 인간적인 계급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헤렘(חֵרֶם), 바쳐진 마음에 타협은 없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라 인류 중에서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속량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7:28~29) 인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영역을 꼽으라면 단연 ‘물질’과 ‘소유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막이 거두어진 이스라엘의 운명 세상은 거대한 맹수들의 사냥터와 같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이 타락한 세상이 작동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냉혹한 원리입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야 하고, 그 결과 세상은 늘 비명과 아우성이 가득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현장이 됩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척박한
고엘(Goel, 기업 무를 자) 제도는 어려움에 처한 형제의 요청을 기다려 행하는 수동적인 구제 활동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법적·종교적 책임감에 따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Duty)였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과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종교적 의무 고엘은 하나님의 토지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율법으로 정해진 강제성 있는 제도였습니다. 고엘의 책임을 맡은 자(가장 가까운 친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