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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네 박동진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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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내 삶의 궤적이 거룩한 물음표 하나를 던지는 것

삶이 질문을 던질 때 복음은 시작된다 출근길 지하철이나 복잡한 번화가를 걷다 보면, 전도한답시고 확성기를 틀어놓고 험한 말을 쏟아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그리스도인인 제 마음마저 무겁고 부끄러워집니다.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교리를 들이민다고 해서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릴 리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왜 저렇게 무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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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하다’ 등 법정에서 쓰이고 있는 뜻도 모르는 법률 용어의 실체

아직도 일제식민지 잔재를 벗지 못한 법률 용어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억울한 사정을 안고 재판정에 들어선 시민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은 주권자로서의 존엄이 아니라 거대한 ‘언어의 장벽’이다. 판사와 변호사가 주고받는 대화, 집으로 송달된 판결문에 적힌 문장들은 한글로 쓰여 있을 뿐, 실상은 일반 대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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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이 낮은 사람의 5가지 특징

공공의 자리를 침범하는 무례: 사회성과 신앙의 접점 흔히 ‘사회성이 낮다’고 하면 말주변이 없거나 낯을 가리는 내향적 성격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회성의 본질은 사교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내 존재와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 인지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는 곧 ‘이웃 사랑의 구체적 감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은 거창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웃과의 공적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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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이중직 사역에 대한 오해

이중직 사역에 대한 오해   “목사님, 이제 교회도 꽤 커졌는데 언제 다시 전임으로 사역하실건가요?” 주변 목사님들께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교회가 작아서 하는 알바’, ‘돈 안 되는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 하는 돈 되는 일’, ‘소명이 부족한 사람의 차선책’ 정도일겁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만약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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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로 보는 인생 장편소설로 보는 인생

우리는 지금 장편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오랫동안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차이를 그저 ‘분량’으로만 알았습니다. 짧으면 단편, 길면 장편.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지요. 완전히 틀린 답은 아니었지만, 소설이라는 세계와 그 속에 깃든 삶의 결을 헤아리지 못한 얕은 이해였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단편소설은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은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모두 보여주지 않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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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티베트 홍수 ‘우리의 애도에는 분노가 담겨야 한다’

네팔-티베트 홍수를 보고 인류가 망했다, 종말이 왔다, 이번 생은 망했다와 같은 한탄들. 이같은 종말론적 관점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시야와 분노를 흐릿하게 한다. 결국에 그런 넋두리는 자본주의 재난 체제를 지속시키는 역할에 복속된다. 우리의 애도에는 분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네팔의 탄소 배출 누적량은 고작 0.1%다. 또 네팔은 전 세계 기업들이 삼림 벌채에 미쳐 있는 동안,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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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수련회, 목적 없이 노는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

그냥 놀러 가면 안 됩니까: 목적 없이 노는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   교회 수련회 기획 회의를 떠올려 보십시오.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올해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강사는 누구를 모실까. 집회는 몇 번 할까. 결단의 시간은 언제 배치할까. 그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크리에이션도 넣어야죠. 애들이 지루해하니까.” 여기에 이미 답이 들어 있습니다. 노는 시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집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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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모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지옥이 되기 쉬운 목회현장 오늘 까지, 이번 달만 세 번째다. 사랑하는 동료 목회자와 사모님이 공황발작을 겪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며, 정신적으로 무너져간다는 소식이다. “개인의 연약함”으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인 신음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자주 오해되는 사르트르의 이 말은 인간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규정하고, 나의 존재를 옥죄어 결국 “내가 나로 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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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교체와 새로운 시대, 변화하는 신앙의 옷을 입으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를 때마다 삶의 방식이 바뀌듯, 신앙이 표현되는 양식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본질과 중심은 결코 변하지 않지만, 그 신앙을 담아내는 그릇과 형태는 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발맞추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경 민수기 28장에 배치된 제사 규례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전환에 따른 신앙 형태의 재정립’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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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의 반역에서 본 참된 지도자와 불량한 지도자

권력의 찬탈인가, 생명의 헌신인가   어느 시대, 어느 공동체나 지도자의 부재(不在)보다 무서운 것은 ‘거짓 지도자의 출현’이다. 특히 공동체가 위기를 맞이하거나 긴 방랑의 피로감에 젖어 있을 때, 사람들의 상처와 결핍을 파고드는 선동가들은 언제나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성경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은 참된 지도자와 거짓 지도자를 구별하는 가장 선명한 영적 시금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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