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광야 길을 걷다 보면 문득 하늘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스스로의 허물에 걸려 넘어질 때, 우리는 은연중에 하나님을 매서운 눈으로 감시하는 ‘심판자’나, 끊임없이 무거운 짐과 의무를 지우는 ‘법관’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행위를 달아보시는 무서운 존재로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아장아장 걷는 어린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과 닮아 있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딸아이가 넘어질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엉덩이를 뒤따르며, 작은 몸짓 하나에도 눈을 떼지 못해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는 아빠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무한한 사랑의 미소를 짓고 계십니다. 그분의 이 따스한 ‘아빠 미소’가 가장 순도 높게 드러난 구절이 바로 민수기 6장의 ‘제사장적 축복(아론의 축복)’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이 말씀이 선포된 시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나 험난한 광야로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대적들의 위협과 타는 듯한 갈증이 기다리는 거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의 군기를 잡거나 무거운 율법의 의무만을 강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제사장의 입술을 빌려 당신이 얼마나 그들을 축복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으신지, 그 사랑의 열망을 쏟아내셨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번의 축복 속에는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삼중적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샤마르)’입니다. 이는 단순히 방관하는 보호가 아니라, 사나운 맹수로부터 양 떼를 지키기 위해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는 목자의 역동적인 보호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위협 속에서 우리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비추시는 분’입니다. 짙은 어둠 속을 헤매는 인생 위에 따스한 햇살을 비추듯, 자격 없는 자에게 호의와 긍휼(은혜)의 미소를 지어 주십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은 본성상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시는 분’입니다. 우주의 통치자께서 수많은 군중 가운데 오직 ‘나’ 한 사람을 온전히 주목하시고, 내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서 삶의 모든 영역이 모자람 없이 온전해지는 최종적인 상태, 곧 참된 ‘평강(샬롬)’을 선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굴복시키거나, 벌을 주어 공포에 떨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치심을 받았을 때,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7)”고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목적은 당신의 자녀들이 그분의 임재 안에서 참된 안전과 은혜, 그리고 평강을 누리며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지치고 곤한 걸음을 걷고 있다면,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얼굴을 들고 계신 그분의 시선과 마주해 보십시오. 주님은 오늘 당신의 삶에 무거운 벌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의 복을 채워 당신의 행복을 완성해 가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