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여 경계선에 서라
교회생활의 세가지 유형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신앙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교회중심의 교회생활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세상 < 나 교회(하나님) >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변화산상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내려가자고 하신 것처럼 그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신앙이 더 성장할 수 없다.
교회생활의 세가지 유형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신앙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교회중심의 교회생활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세상 < 나 교회(하나님) >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변화산상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내려가자고 하신 것처럼 그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신앙이 더 성장할 수 없다.
이스라엘-하마스간 전쟁이 끝났습니다. 성지순례도 재개되기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참 이상해요. 다시 평온합니다. 깔깔대고 삶에 분주합니다. 죽은사람만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격당한 가자시민도 86%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로켓공격을 지지했습니다.하마스의 지지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지금당장 선거가 이루어지면 61%의 팔레스타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온건성향의 압바스의 파타당은 31%에 머물러있습니다. 2006년 하마스의 선거대승보다 높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적인
기독교와 교회의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복음”이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정신으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에 따라 기독교가 기독교가 될 수도 있고, 앤티 크리스쳔anti-Christian들이 비아냥 거리는 개독교로 전락할 수 있다. 복음의 정신에 사로잡힌 자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핵심키워드가 있다. “스며듦과 자기소멸”이다.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스며들기 위해선 자기소멸이 있어야 한다. 자기소멸, 혹은
전 요즘 온전한 예배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정말 하나님께서 임재해계신 그 체험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과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순종하고 싶고 하나님이 절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온 몸과 마음과 영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 먼저 성도간의 축복과 사랑의 인사를
광화문 단식장과 청와대 앞에서 유민 아빠를 보고, 단식장에서 문재인 의원과 함세웅 신부님을 만나 말씀을 나누었다. 연구실로 가던 발길을 돌려 오늘은 꼭 용기를 내어 유민 아빠에게 직접 한 말씀이라도 드리리라 결심하고 광화문으로 갔다. 뜨거운 볕 아래 한참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좀처럼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빵집에 가서 좀 기다렸다. 다시 단식장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를 보면, 그 지향이 분명히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죽었지만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한 지점에 많은 목소리들이 오롯이 모이고 있다. 재발방지를 위한 첫 걸음은 진상규명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없이 넘어가자는 것은 대한민국을 이런 위험천만의 상태에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이다. 수사권 기소권 다 가지고도 거대권력 앞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에서 육군 제28사단 총기사망사건과 병영 내 구타로 인한 윤일병 사망사고에 대해 성명서를 내었다. 사실 이번 윤일병 사망사건은 내 자식을 군대에 보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한 그런 사건이었다. 아직도 구타로 군기를 잡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우리 군대의 문화, 이제는 이 미개성을 벗고 고쳐야 한다. 군대의 개혁, 이는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할
교황의 방문과 한국 개신교회 족벌주의, 혈족주의 등으로 번역되는 nepotism 의 어원은 라틴어의 nepos, 영어의 nephew 입니다. 옛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자신의 조카들을 고위직에 앉혀서 기득권을 유지해 가던 데서 생긴 말입니다. 신부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가 없었기에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성직자 독신정책이 그 성경적 근거 여부를 떠나, 다행이라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성속을
충고로 사람이 변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남에게 충고했다가 관계가 나빠진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충고는 쓴 약과 같습니다.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약을 기꺼이 삼키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충고가 약과 같다면,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약은 식후에 먹으라고 권합니다. 위에 음식이 없이 약만 들어가면 오히려 몸이 상할 수도 있다는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저 혼자만 받는 건 아니겠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얘기는 선악과를 먹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선악과를 먹지 않는 수준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느냐고 원망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자기의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이죠. 도리어 하나님께 자기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