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성지방문 현지 목사가 살펴본 중동지역의 정치적 이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4일(2014.5.)부터 취임 후 첫 중동 순방길에 올라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을 방문한 후 26일 로마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2박3일간의 비교적 짧은 성지방문을 하였지만, 그가 거닐었던 정치적인 여정은 참 멀었다. 먼저 요르단의 세례터를 방문하신 후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행은 차로 한시간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유대광야로 연결되는 성경적인 명 코스였지만, 교황은 헬레콥터로 날아갔다. 요르단으로서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잃은 땅이었고, 팔레스타인에 양도된 팔레스타인 영토지만, 국경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통제하에서 국경통과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예루살렘은 20여키로의 거리로 차로10분거리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베들레헴에서 60여키로 다른 방향인 텔아비브 벤구리온공항까지 가서 정식으로 입국환영을 받은 뒤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셨다.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점령지인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정부의 영접을 받을 수 없는 것도 이유였지만, 이스라엘은 정식으로 이스라엘의 관문 텔아비브공항에서 환영하고 싶은 거였다.

교황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미국대통령급 이상의 경호작전이 펼쳐졌다. 교황이 지나가는 동선은 수시간 전부터 전면통제되었다. 영공에는 무인감시고무풍선외에 무장헬기 2대가 예루살렘전지역을 전방위적으로 경호하고 있었다.

교황의 성지방문, 사진=연합신문

이제 교황이 성지를 방문을 마친 후 지금 저마다 정치적 승리를 얻었다고 논평이 쏟아져나오고있다.

[요르단] 요르단은 이스라엘과의 성지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모양이다. 요르단은 교황의 성지방문 첫 방문을 자신의 요르단으로 모셔갔다. 자원없는 요르단은 국가적차원에서 성지순례객 유치에 열올올리고 있던 터였다. 특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곳이 요단강이지만은, 실제 세례받은 곳이 요르단쪽인가 이스라엘쪽인가. 양국이 벌이고 있는 고고학적 역사적 논쟁에서 교황은 요르단쪽세계터를 방문함으로서 요르단쪽 손을 들어줬다. 향후 기독교 성지순례 유치 흐름에 막대한 이익을 얻은 셈이다. 기독교 2천년 역사가운데 예루살렘 라틴대주교가 요르단 태생 현 주교의 덕을 독톡히 본 셈이다.

[팔레스타인] 교황은 성지방문에서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에 먼저 발을 딛었다. 게다가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주일미사를 드린 것에 대해 고무되어 있다. 교황은 베들레헴 성지방문 외에 이스라엘에 쫓겨나와 형성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방문했고, 이스라엘이 쌓아올린 분리장벽에 직접 다가가서 기도하는 깜짝방문도 했다.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참혹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대 성공을 거둔셈이다.

[이스라엘] 이스라엘도 얻은게 많다. 교황의 성지방문기간에 브르셀 유대인박물관에서 테러로 유대인 한가족이 희생되었다. 이 적절한 시기에 교황은 그간 팔레스타인의 테러로 희생된 테러희생자추모관에 들렀다. 교황이 유대인 최고의 성지 통곡의벽이나 유대인학살기념관 야드바셈을 방문한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팔레스타인이 분리장벽 앞에 교황을 세운것을 비교할 만한 것이었다.

오전에 야드바셈을 방문하는 동안 엔케렘에서 2시간 가까지 거리에 묶여있었던 나는 오후에 아예 유대광야에서 시간을 보냈다. 예루살렘영공에 두대의 무장헬기를 보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황께서 성지를 방문하는데 경호가 왜 이렇게 삼험할까? 모두가 교황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에 더 끌어들이려는 속셈때문이다. 적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게 교황은 프로파겐다다.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극대화 하면 할 수록 상대편은 잃은 슬품과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교황께서는 이땅의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지만, 성지를 관활하고 있는 이땅의 정치적인 지형은 더욱 첨예해지고 복잡해질 뿐이다.

Holy Land is too political!!!!

by 이강근 목사(예루살렘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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