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성공한 목사인가?

가끔 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많이 아픈 내용들을 담고 있는 표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이 성공한 목사로 표현되어질 때입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교회 목사가 성공한 목사로 표현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성공에 대한 평가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크기를 보고 성공을 평가하면 이는 완전한 세속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호주에 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시드니 한복판 타운홀 건너편에서 교회를 시작할때는 간판만 밖에 두어도 젊은이들이 매주 20명정도 등록을 했고 일년 이년이 지나자 300명의 가까운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또 학생들 중에 뉴캐슬에서 오는 성도들이 있어 뉴캐슬 대학 앞 초등학교를 빌려 또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뉴캐슬 교민들이 등록해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두 교회를 섬겼습니다. 성도들이 합쳐 300명이 넘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김목사 성공했네”였습니다.

이게 성공입니까? 좀 모이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 바쁘게 사는게 성공이냐고요? 이건 성공이 아니고 은혜입니다. 믿음의 인도 사람인 성도를 만나 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3시간 기차를 타고 뉴캐슬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의 편리를 위해 뉴캐슬에 교회를 세웠는데 교민들이 함께 예배하게 된 것은 내가 잘나고 잘해서 된 것이 아니고 은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형교회는 조직으로 움직입니다. 물론 작은 교회도 그런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일년 목회 계획을 세우고 행사를 계획하고 그리고 사역자들을 통해 교회가 움직입니다. 더 큰 교회를 추구하기 위해 교육관을 세우고 모든 교육시설을 갖추고 모든 편리시설을 교회에 둡니다. 그러니 많은 성도들이 잘 갖춰진 교회를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직, 시스템의 문제는 영혼에 대한 절실함이 부족합니다. 대형교회는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돌봅니다.

하지만 개척교회 목사들, 작은 교회 목회자들, 흔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은 돈도 없고 건물도 없는 그리고 약간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는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그 영혼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설교가 아닌, 탁월한 설교는 아니지만 한 영혼에 생명을 겁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온 대형교회 목사님을 만날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대접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작은교회 목사는 그 대접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어 이곳을 방문했던 대형교회 목사님은 연락하기도 힘들고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 목사는 다릅니다. 심지어 공항까지 픽업을 나올려고 하며 없는 돈으로 가장 귀한 대접을 할려고하며 기꺼이 강단도 내어주며 귀한 섬김을 합니다. 차이는 늘 받고 살고 부족함이 없는 목사는 시스템으로 교회 사역을 하고 교인들 만나기에 차가운 맘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 목사는 한 영혼이 소중하기에 목숨을 걸며 살기에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 친구 중에는 섬에서 목회하는 목사도 있고 산골에 목회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성도가 얼마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영혼을 돌아봅니다. 성도가 아프면 차로 병원에도 데려다주고, 배고파 우는 성도들에게는 자신도 없는 생활비 떼어 주기도 합니다. 없는 교회 형편에 선교비도 보내고 힘들어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구제도 합니다. 이들이 과연 실패한 목사일까요?

제가 타락하게된 시점이 있습니다. 진실한 나의 고백입니다. 성도들이 점점 모여집니다. 바빠졌습니다. 한주간의 일과가 많이 바빴습니다. 주일은 시드니에서 1, 2부 예배를 드리고 2시간 운전해서 뉴캐슬로 올라가 오후 5시에 예배를 인도하고 교인들과 저녁식사하고 교제를 했습니다. 월요일 뉴캐슬 대학에서 청년들을 만나 오전 양육 후 시드니로 내려왔습니다.
화요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설교 준비와 양육 훈련을 준비했습니다. 수요일 하루종일 청년들을 만나고 바리스타로 커피를 하루에 200잔을 타서 섬기고 수요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목요일 오전 뉴캐슬로 올라가 저녁에 목요예배를 인도하고 금요일은 시드니에서 금요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하루종일 양육훈련을 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타락한 것은 다름아니라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해왔던 전도를 멈춘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 기도회를 인도했지만 개인적인 기도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바로 청량교회 송준인 목사님이십니다. 혹시 리차트 포스트의 ‘기도’라는 책을 아신가요? 그 책을 번역하신 분입니다. 호주에 오기전 나는 청량교회를 일년 섬겼습니다. 전 바빴습니다. 총회 교육부에서 일을 했었고, SCE 총무 간사였습니다. 교회 사역은 금요기도회, 토요일 오전 사역, 그리고 주일 오전 중등부 예배 인도하고 주일예배를 드린 후 초청교회 설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절 이해해 주셨습니다. 송준인 목사님이 놓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토요일이면 모든 교역자들을 데리고 청량리 시장쪽에서 매주 전도를 하신 것입니다.

시드니에서 성도들이 늘어나니 교역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역자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난 그 위에 있었습니다. 교만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겉치래가 많아졌습니다. 감투도 많아졌습니다.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외형으로 좋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타락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전도를 놓은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겨 기도 시간을 버린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이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난 놓쳤고 이제 깨닫고 시작합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교회 목사입니다. 표현을 잘 못하지만 난 우리교회 성도를 무지하게 사랑합니다.

제가 지금 만나는 많은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작은 교회 목회를 하십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없으면 한국교회는 문을 닫아야만 합니다. 개미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영혼 사랑과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성공의 평가를 교회 규모나 크기에 둘 것이 아니라 영혼을 향한 마음에 둬야 하지 않을까요?

대형교회 목회를 선호하는 후배들에게 고합니다. 좋은 학력을 갖추고 유학가서 학위도 받으셔서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길 원하신다면 아니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이젠 성도들이 알고 세상이 우릴 알아봅니다.
성도가 없어 고민하는 목사님들의 마음도 경험해보시고 시골, 산골, 어촌에서 고민하는 목회자들의 마음도 경험해 보시고 상가교회, 오갈데 없어 일하며 사역하는 이중직 목회자의 아픔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목사의 성공이 크고 작음이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by YOUNGEUM KIM 목사

(시드니 진리의 교회 담임목사)

로또복권을 산 목사들의 은밀한 묵시

10년쯤 전, 멕시코에서 선교를 하던 친구가 잠깐 귀국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였습니다.
당연히 멕시코에서 온 친구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먹고 싶다는 메뉴로 점심을 먹고, 그 친구가 찜질방에 가고 싶다고 해서 찜질방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로또복권 얘기를 꺼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목사가 로또복권을 사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만, 멕시코에서 고생하다 온 친구 얘기를 모른 척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만 원씩 거두었습니다.
걸음 빠른 친구가 대표로 가서 복권을 구입해왔고, 한 친구가 그것을 보관했습니다.
친구들이 다 모이면 11명인데 그때 3명이 불참해서 8명이 같이 있었습니다.

로또복권이 대화 소재가 되었습니다.
1등 당첨되면 예배당을 크게 지어서 공동목회를 하자는 말도 했고, 불참한 친구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에 사찰집사로 써주자고 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에 복권을 보관했던 친구가 우리끼리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습니다.

7인의 기도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은 위대하시도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자 3인에 의해 빼앗긴 바 되었으며,
우리의 것은 그 중 8분의 7이 쓰레기통에 슬피 울며 찢겨진 채 버림받았으나
다행히 우리의 손에 의하지 아니한 것에 의해
우리의 분깃 중 8분의 1이 다시 또 색깔 입혀짐을 당하고 있음을 고하노라.

7인의 기도하는 사람은 8명 중에 자기를 뺀 일곱 명입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자 3인에 의해 빼앗긴 바 되었다는 얘기는 당첨되면 우리끼리 공동목회를 하기로 했는데 그 자리에 없던 세 명 때문에 부정 타서 꿈이 무산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것은 그 중 8분의 7이 쓰레기통에 슬피 울며 찢겨진 채 버림받았다는 얘기는 복권 8장 가운데 7장이 ‘꽝’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분깃 중 8분의 1이 다시 또 색깔 입혀짐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는 한 장이 본전을 건져서 그것으로 다시 복권을 구입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재미삼아 한 일이지만 목사 체면에 ‘로또복권’을 직접 말하기는 거북했나 봅니다.

그 글을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배꼽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친구는 무슨 내용인지 알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묵시서입니다.
제 친구가 쓴 글은 물론 장난입니다만 대부분의 묵시문학은 세상의 종말이나 악에 대한 심판을 소재로 합니다.

그런 내용을 다루려면 천생 아는 사람만 알게 써야 합니다.
할 말은 하되 책은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그런 책입니다.
구약의 배경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듣게 썼습니다.
구약성경을 모르면 도무지 모릅니다.

……… <쉽게 보는 어려운 요한계시록>중에서

요한계시록이 어려운가요?
요한계시록의 원래 독자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들에게 쓴 편지가 우리가 보는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때 그들도 요한계시록을 어려워했을까요?
마치 수수께끼나 암호 문서를 푸는 것처럼 머리를 싸맸을까요?
편지를 그렇게 쓰는 법은 없습니다.
그때 그들은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워합니다.
암호를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 배경만 알면 성경 66권의 다른 책들과 똑같은 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 특별하거나 신비한 책이 아닙니다.

by 강학종 목사

강학종 목사님은 현재 서울 하늘교회 담임목사이며,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저서로 ‘하룻밤에 읽는 이스라엘 왕조실록’ ‘쉽게 보는 어려운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슈퍼플러스’ ‘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 등이 있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삭개오에게 배워야 할 변화의 영성

알아 맞춰보세요.
사진 속 아래 3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목사3인
목사가 되어서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3인, 서세원, 이근안, 용팔이

‘목사’입니다.
이 3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아시죠?
코미디언 서세원, 고문 기술자 이근안 그리고 용팔이입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인생 뒤늦게 예수를 알게 되어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목사가 되었는데, 삶은 이전과 달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로마 권력에 기대어 백성들을 착취하던 세리장 삭개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삶이 변화 되었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지난날 자신이 착취한 사람에게 4배로 갚겠다고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변화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후
제자의 길을 가겠다고 예수를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나눔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남의 것을 착취하던 불의한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겠다고 각오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체험을 하면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목사는 되었는데, 마음의 욕심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탐욕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직업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삶의 내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변화합니다.
추구하던 가치가 변화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이 넘쳐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도 가득합니다.
그런데 변화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 예수의 가치, 예수의 길을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며
내 배를 가득 채워줄 예수만을 원하고 있을뿐입니다.

탐욕과 거짓을 버리고, 낮아짐의 길을 간 예수를 따르는
버림의 영성, 변화의 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by최병성 목사

최병성목사최병성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 초록별생명평화교회의 머슴을 자처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이다.

 

성탄절 선생님께 받은 5원짜리 선물의 추억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7살때 성탄절 전날 밤이였습니다. 요즈음은 성탄절날에 선물을 줍니다. 그런데 그때는 선물을 받으려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저녁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때 선물이래야 옥수수튀밥에 건빵 몇개, 굴뚝과자 몇개를 섞은 것이였습니다. 이 과자를 신문지 봉투에 몇 개씩 담아 그걸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땐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도 선물이라고 받으려고 일년씩이나 기다렸습니다.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야단입니다.

마침내 제가 받을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가려는데 선생님  한분이 저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따라갔더니, 선생님이 남모르게 신문지봉투의 선물이 아니라 굴뚝과자 한봉지는 뜯지도 않은채주셨습니다. 5원짜리 과자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느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것같습니다.

왜 선생님께서 그 때 저만 그런 선물을 주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물을 주시면서 제게 보내주신 그 눈빛의 의미는 항상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언제나  기억했습니다. 이것이 늘 마음에 있었기에 교회를 찾게 되었고 오늘 목사가 되었습니다.

* 이 글은 한 목사님의 간증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