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되기 전에 삭개오에게 배워야 할 변화의 영성

알아 맞춰보세요.
사진 속 아래 3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목사3인
목사가 되어서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3인, 서세원, 이근안, 용팔이

‘목사’입니다.
이 3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아시죠?
코미디언 서세원, 고문 기술자 이근안 그리고 용팔이입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인생 뒤늦게 예수를 알게 되어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목사가 되었는데, 삶은 이전과 달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로마 권력에 기대어 백성들을 착취하던 세리장 삭개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삶이 변화 되었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지난날 자신이 착취한 사람에게 4배로 갚겠다고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변화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후
제자의 길을 가겠다고 예수를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나눔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남의 것을 착취하던 불의한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겠다고 각오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체험을 하면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목사는 되었는데, 마음의 욕심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탐욕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직업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삶의 내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이 변화합니다.
추구하던 가치가 변화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이 넘쳐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도 가득합니다.
그런데 변화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 예수의 가치, 예수의 길을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며
내 배를 가득 채워줄 예수만을 원하고 있을뿐입니다.

탐욕과 거짓을 버리고, 낮아짐의 길을 간 예수를 따르는
버림의 영성, 변화의 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by최병성 목사

최병성목사최병성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 초록별생명평화교회의 머슴을 자처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이다.

 

성탄절 선생님께 받은 5원짜리 선물의 추억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7살때 성탄절 전날 밤이였습니다. 요즈음은 성탄절날에 선물을 줍니다. 그런데 그때는 선물을 받으려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저녁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때 선물이래야 옥수수튀밥에 건빵 몇개, 굴뚝과자 몇개를 섞은 것이였습니다. 이 과자를 신문지 봉투에 몇 개씩 담아 그걸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땐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도 선물이라고 받으려고 일년씩이나 기다렸습니다.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야단입니다.

마침내 제가 받을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가려는데 선생님  한분이 저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따라갔더니, 선생님이 남모르게 신문지봉투의 선물이 아니라 굴뚝과자 한봉지는 뜯지도 않은채주셨습니다. 5원짜리 과자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느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것같습니다.

왜 선생님께서 그 때 저만 그런 선물을 주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물을 주시면서 제게 보내주신 그 눈빛의 의미는 항상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언제나  기억했습니다. 이것이 늘 마음에 있었기에 교회를 찾게 되었고 오늘 목사가 되었습니다.

* 이 글은 한 목사님의 간증을 옮긴 것입니다.

결혼의 정의를 ‘두 사람의 연합’으로 바꾼 미국장로교총회 성경적인 결정인가?

한인 교회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는 미국 장로교회 총회에서 결혼의 정의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 에서 “두 사람의 연합”으로 바꾼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어제의 일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새삼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알리는 미국인 친구들의 페북 포스팅 중에 기쁨과 환희와 감사에 찬 것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약한 자를 차별하는 교회의 어리석고 못된 행습을 고치는 귀한 일에 큰 진보를 이룬 쾌거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랫 동안 동성 결혼 문제를 놓고 씨름하면서, 양 극단을 피하고 책임적인 자세를 모색하던 이들의 팔 다리에 힘을 쭉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호모포비아는 안 됩니다. 동성 연애자들이 문화적 소수자들인 시절, 그 많은 hate crime 들, 억압과 차별들, 그들을 소외시키던 말과 행동들의 뒤에 보수적 기독교의 책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방조하거나, 묵과 혹은 은근히 동조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쪽 극단이 안 된다면, 다른 쪽 극단도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다. 적어도 성경에 명시적으로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한 반대가 있는 한, 이런 계명에 대한 순종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책임적인 태도를 보이려는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저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지 않지만, 찬성하는 사람들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사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비웃으며, 동성 결혼 인정이 역사의 진보요 진리의 승리라고 쉽게 단정짓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다시 놀랍니다. 이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없는 사람들이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들고 강단에 서는 것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호모포비아가 극단이라면, 이들은 다른 극단입니다. 적어도 성경을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그렇습니다.

한 극단의 야만성을 경계한다면, 다른 극단의 폭압성 또한 주의해야 합니다. 한 극단은 정죄하고 손가락질하고, 다른 한 극단은 관용의 사람들로 높이는 고약한 프레임에 미국 교회가 걸려 있습니다.

아픈 마음을 부여 잡고, 오늘 아침에 시편 85 편을 묵상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이후,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 길을 찾는 시인의 기도에 하나님은 이런 응답을 하십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인애와 관용을 가지며 동시에 진리를 지키는 것이 힘들어, 아니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입니다.정의와 화평은 늘 따로 노는 것이 이 세상이더라, 우리는 경험해 보아서 압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에 약속하셨으니, 다시 이 말씀 의지해 보려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만난 교회, 그러나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인애와 진라가 같이 만나는 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줄 믿습니다.

P. S. 제가 포스팅 한 후 유승원 목사님께서 “두 사람 사이, 전통적으로는 한 남자와 여자 사이였음” 가 정확한 워딩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래 댓글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bw박영호목사y 박영호 목사

*박영호 목사님은 장로회신학교 졸업 후 미국 시카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시카코에 있는 ‘약속의 교회 PNF Community Church’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공동기도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작성한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을 위한 공동기도문

하나님,
모처럼 내리는 봄비가 참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비가 마치 가족을 잃고 슬피 우는 이들의 눈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이 땅의 라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팽목항에서 담요를 들고 돌아오지 않는 아들딸을 기다리며
야속하게도 푸른 바다만 바라보는 엄마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계십니까?
이제는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마른 울음을 울다 지쳐 쓰러진 이들을 보고 계십니까?
공포에 질린 채 다가오는 죽음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했던
그 착하디 착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채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스러진 꽃봉우리들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예수님의 아픈 탄식을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듣고 있습니다.

주님,
뜻하지 않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뜻하지 않은 시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슬픔의 강물에 떠밀리고 있는 모든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가슴 속에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존자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이땅의 청소년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품으로 안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주님,
인류의 첫 사람을 ‘너희가 신처럼 되리라’ 유혹하며
기어코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그 징그러운 뱀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장과 발전 강박’에 사로잡혀 행복의 신기루를 따라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하늘도, 이웃도, 자기 자신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모두 괴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효율과 경쟁’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인 후 세상은 죽음의 벌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그 시간에,
언론은 죽은 이들이 받을 보상을 계산하는 기민함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적나라한 우리 사회의 민낯입니다.
돈 귀신이 이 땅을 휘젓고 다닙니다.

주님,
돈벌이를 위해 생명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기업,
관리 감독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무사안일하게 대처해온 관료들,
위기에 빠진 이들을 버려두고 제 한 목숨 구하기 위한 달아난 사람들,
그리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구조의 임무를 방기한 사람들,
그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비용만 계산하고 있던 사람들,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기 보다는 가십거리만 찾는 언론,
마치 남의 말을 하듯 다른 이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무능한 정부,
성급하게 값싼 화해와 용서를 권유하는 교회,
그리고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살아온 우리 모두를 엄히 꾸짖어주십시오.

하오나 주님,
우리는 이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위험 속으로 들어간 이들 말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벼랑 끝에서 오히려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그들 속에서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위로를 얻습니다.

주님,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죽음이 헛되이 허비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문화가 생명중심의 문화로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저들의 억울한 죽음을 망각의 강물 속에 떠내려 보내지 않게 해주시고,
새로운 세상을 위한 주춧돌로 삼게 해주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진심으로 찬미할 수 있겠나이다.
에스겔의 해골 골짜기에 불어왔던 생기를 지금 우리에게도 보내주십시오.
아멘.

선교단체 인터콥의 이단성에 대한 연구결과

2011년 제96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에서 인터콥의 이단성에 대해 연구하여, “최바울씨와 인터콥의 주장과 운동에는 교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거나 위험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의 사정’과 관련된 성경 해석은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백투예루살렘’ 운동에 대해서도 재림에 관한 성경 말씀에 모순되는 점이 있다. 최바울씨와 인터콥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와의 관계 및 현지 선교사들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최바울씨는 이미 교계의 비판을 수용하고 문제점들을 수정하고자 약속한 바가 있으므로, 교회는 인터콥이 약속을 잘 이행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참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인터콥은 통합총회에 재심요구를 하였고, 이에 대해 통합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운영위원회에서 재조사하여 연구한 결과 이전에 지적한 문제점에 대해서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상당 부분 수용하고 개선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인터콥이 신사도운동과 관련성이 있다는 의심이 있어 이에 대해서도 연구한 결과,  ‘영적도해’ 개념, ‘다윗의 장막’, ‘땅밟기 기도’, ‘백투예루살렘’ 등의 개념들과 기타 행적들에서 인터콥이 신사도운동과 연관성이 있다고 의심을 살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최바울 씨 본인이 신사도운동을 강력 비판하는 글들을 발표해 왔고, 그것을 인터콥 공식 웹페이지에 게재하고 있음도 확인되었기에 신사도운동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총회는 이러한 인터콥의 입장변화와 사과에 대한 진정성으로 볼 때  ‘최바울 선교사와 인터콥선교회가 고치고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며, 다만 이단으로 규정하여 모든 관계를 끊고 출교할 만큼 심각한 이단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하였다.

하지만  인터콥과 최바울씨의 해명과 반성의 진정성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인터콥에 대한 예의주시 및 참여자제’ 결정은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지었다.

인터콥은 여러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 선교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이슬람권에 파송한 선교단체로서 현재 약 750명의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런 선교가 인터콥이라고 하는 한 단체의 활동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인터콥이 이미 지적된 문제점들을 잘 해소함으로써, 교회와 아름답고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더 큰 선교의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by코이네뉴스

유대인의 육아법,아기목욕할 때 부모의 기도

우리는 흔히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제 교육이 뭔가라고 물으면 참 대답하기 어려워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교육을 해야하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교육으로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제대로 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또 머뭇거리게 된다. 사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어떤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국민적 합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그 어떤 사람에 대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부모가 아기를 목욕시킬 때도 드러난다. 유대인들은 아기를 목욕시킬 때 몸의 부위별로 기도하면서 목욕을 시킨다. 과연 어떻게 기도하며 목욕을 시킬까?

유태인의 아기목욕 기도문

1. 얼굴을 씻어주면서

“하나님, 우리 아이의 얼굴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갖고 자라게 하소서”

2. 입안을 씻어주면서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복음의 말이 되게 하소서”

3. 머리를 감기면서

“하나님, 우리 아기의 머릿속에는 지혜와 지식이 가득 차게 하옵소서”…

4. 손을 닦아주면서

“이 아이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5. 가슴을 닦아주면서

“하나님, 우리 아기 가슴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6. 배를 씻어주면서

“하나님, 우리 아기의 오장육부는 건강하여 튼튼하게 자라게 하소서”

7. 성기를 씻어주면서

“하나님, 우리 아기가 자라나 이 거룩한 성기관을 통해 거룩한 백성을 만들게 하옵소서. 결혼하는 날까지 순결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축복의 자녀를 준비하게 하소서”

8. 다리를 씻겨주면서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서 온 나라와 민족에 복음을 증거 할 전도자의 걸음으로 인도하소서”

9. 엉덩이를 씻어주면서

“교만한 자리에 앉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옵소서”

10. 등허리를 씻어주면서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유대인들은 자녀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심이 되고, 거기에 건강하고, 지혜롭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이 기도문 중 아기의 성기를 씻어주면서 “하나님, 우리 아기가 자라나 이 거룩한 성기관을 통해 거룩한 백성을 만들게 하옵소서. 결혼하는 날까지 순결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축복의 자녀를 준비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니, 아기는 어릴 때부터 바른 성개념을 갖고 성장하지 않겠는가? 참 본받아야 할 것이다.

미래 교회는 조직을 역동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미래교회는 조직이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역동적인 조직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조직을 말합니다.  조직없는 생명은 오래 못 가고 생명 없는 조직은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과 조직, 조직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바뀌려면 두 가지 즉 생명을 발생하는 영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고, 생명을 유지 보존하는 구조적 조직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동적인 조직이란  ‘사람중심’이고, ‘사역중심’이며, ‘양육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교인 전체수가 얼마든지 상관없이 각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교회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계속해서 그 은사를 활용하는 위치에까지 이르도록 양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교회들이 갖고 있는 조직, 예를 들면 집사, 권사, 장로, 당회원, 당회장 같은 직분을 중시하는 교회가 아니라, 은사자, 사역자, 헌신자, 지도자 같은 기능이 강조되는 구조로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

교회는 보호적 기능과 훈련적 기능, 생산적 기능이 극대화되는 구조로 거듭나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아무나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사명과 운명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자가 교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전체가 모여 축제를 경험하는 예배구조와 소수가 모여 사랑을 경험하는 소그룹조직 외에는 과감하게 모든 모임과 프로그램과 조직을 폐지하거나 개혁시켜야 한다. 즉 모임을 위해 교인들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필요한 모임과 활동,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가 탈진하도록 일하고 평신도는 구경하고 평가만 하는 조직에서 목사는 지도자와 경영자와 관리자로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성도들은 기쁨과 순종과 헌신으로 그 꿈을 같이 나누어 먹는 조직으로 환골탈대(換骨奪胎)해야 교회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by 코이네정보

교회의 지도력 개발에 꼭 필요한 세 가지 자질

앞으로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 그 영향력을 펼쳐나가려면 교회의 지도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목회적 리더십을 개발하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어떠한 미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과,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즐겨하는 복수 리더십(multiple leadership)혹은 팀 리더십과, 철저하게 목회를 섬기는 삶으로 살아가는 종의 리더십 (servant leadership), 섬김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더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자질을 확보해야 합니다.

첫째는 열정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불타는 소명감과 열정은 지식과 능력과 도덕성이라는 리더십 요소를 극대화시킬 것입니다.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 교회성장에 대한 열정, 세계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어떠한 미래가 다가와도 반드시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자질은 창조성입니다. 

이제 교회는 성도들의 충성심만으로는 미래의 책임을 다할 수 없습니다. 열정과 함께 창조성(creativity)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는 곧 미래의 다른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인도할 때나, 성경을 가르칠 때나, 하다 못해 광고를 하나 할 때에도 창조적으로 해야 미래교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구태의연하고 무미건조하며 고루한 방식으로는 창조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사회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창조적 사역을 위해서는 복음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책과 정보에 항상 열려 있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정서가 메마르지 않도록 늘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 번째 리더십 자질은 용기입니다. 

용기란 위험을 감수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지 인간적인 계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식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일을 벌리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안전지대를 고집하는 한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개혁시키기 위해서는 참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용기란 참고 용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by 코이네정보

거듭나는 인생 그 변화의 핵심은 무한히 하나님 편에 서는 것

예수님 당시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고위관료였고, 영혼의 구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물었고,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물음과 답변에 조금의 간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원을 물었더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대답하셨다. 즉 구원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지만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 니고데모는 육체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린 쉽게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달라서 이런 식의 생각을 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에게 이는 죄인 된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영혼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외면으로 변화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이 말은 세례와 성령의 임재가 새 사람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또한 그 마음이 예전에 더렵혀진 죄인의 자아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런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으며,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한다.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위해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첫 시작이다. 그 변화의 시작을 하면 우리의 내면은 치열한 영적인 전쟁터가 된다.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려는 성령님과 예전의 정욕과 죄의 욕심을 따라 살려는 옛 자아가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갈등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하나님 편에 서야한다. 때때로 실패하여 다시 옛 습관 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번번이 실패하는 우리를 끝까지 용납하시고, 우리가 마침내 승리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신다. 우리는 그런 전쟁을 평생 치루지만, 실패하고 넘어진 수만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백성으로 변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는 선택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음도 느낄 것이다. 처음 전쟁을 치를 때에는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정말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은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죄를 짓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죄짓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죄 짓는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한 인생으로 보인다면, 당신은 거듭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목사님 이러시면 선거법 위반입니다.

알송달송 교회 관련 선거법 위반

6·4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교회에서 종종 선거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예배 시간에 목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지지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선거법 위반 항목이다. 그런데, 사실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목사가 후보자의 예배 참석 사실을 신도에게 알리는 행위는 선거법 위반일까? 후보자가 평소 다니지 않는 교회에 헌금을 하는 건 어떨까? 교회에서 범하기 쉬운 선거법 위반에 관해 알아보자.

1. 교회나 목사가 소속 교인의 출마사실을 통상의 방법으로 알기는 행위

교회나 목사가 소속 교인의 출마 사실을 통상의 방법으로 알리는 건 괜찮다. 하지만 출마한 교인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행위는 할 수 없다. 여기서 통상의 방법이란 후보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주보에 단순 공지한다든지, 광고시간에 출마사실을 알리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이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하는 행위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우리교회 모 집사님이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섰습니다. “라고 단순 공지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번 선거에 우리 집사님이 당선되도록 힘을 실어줍시다. “라는 식의 지지발언이나,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을 하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2. 후보자가 교회에 찾아 공개석상에서 인사할 때

후보자가 예배에 참석한 사실을 단순하게 알린다면 상관없지만 예배에 참석한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광고시간에 단순히 방문한 것을 알리는 정도는 괜찮지만, 후보를 위해 응원의 박수를 하게 한다는지, 후원해달라는 식의 지지발언이 이어지면 이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예배 도중 선거와 관련한 일반적인 발언이나 기도는 괜찮지만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이나 기도는 금지돼 있다. 예를 들어 “주님 이번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며, 훌륭한 일꾼이 선출되게 해주옵소서”는 괜찮지만 “주님, 우리 교회의 모집사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게 해주옵소서” 등의 발언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4. 후보자가 평소 다니는 교회에서 선거와 무관하게 기도, 간증을 하거나 통상의 예에 따라 헌금을 내는 것은 허용돼 있다. 하지만 선거와 관련된 내용 특히 자신이나 특정 후보,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을 할 경우 이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5. 또한 평소 다니지 않는 교회에서 기도,간증, 발언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거나 헌금을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사양하는 것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6. 당연한 말이지만 선거기간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식사와 선물을 준다면 이 역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일반 교인들에게도 물론이지만 공개적으로 단체 기부를 하는 것 역시 선거법 위반이다. 보통의 경우 교회에서는 점심을 특정인이 헌금하여 제공하기도 하는데, 선거기간에 후보자가 이런 행위를 하면 불법이 되며, 만일 이를 알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면 엄청난 과태료가 물려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는 대형교회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작은 교회도 선거에 있어 중요한 유세현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때문에 혼탁 선거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떤 교회는 교회 마당 안에서 선거유세하는 것을 막고, 교회 밖에서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시간을 조율해서 모든 후보들이 한 자리에서 소개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담임목사에게 특정 후보의 개인적인 면담이나 기도요청을 사절하기도 한다. 또한 선거기간에는 후보자 외에도 일반 성도들이 제공하는 모임이나 식사자리를 될 수 있는대로 피하거나 연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거투표는 격려하면서도 불법선거는 차단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by 코이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