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목회란 무엇인가?

교육목회란 무엇인가?

교육목회의 필요성과 의미  시대와 복음은 우리들의 교회에 교육목회의 쇄신을 명령적이요, 긴급한 일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교육목회(Educational Ministry)는 교회의 본질적인 차원과 교회의 목회적 기능 그리고 선교론적 입장에서 대두되는 현실적인 요청이다. “교육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 기능을 소홀히하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불가결의 요소를 잃어버린 교회인 것이다.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지 않는 교회나 성례가 … Read more

2020년 한국의 개신교 교단과 교세 통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종교 현황)을 토대로 검토해 본 결과, 현재 한기총에는 개신교 교단 18%(67개), 교회 21%(17,855개)가 소속되어 있음.   1. 교단 수 : 개신교 374개 / 한기총 67개 = 18%종교 현황에 한국 개신교 교단 수는 374개.2019년 6월 27일 현재, 한기총 홈페이지에 기록된 회원교단은 79개.그 중 10개 교단은 행정보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은 6월 11일 행정보류를 결정. … Read more

권리포기,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하신 하나님

 출 3: 1-5 , 권리포기
권세보 목사 설교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이라는 거죠. 그래서 악한 사탄 마귀는 종종 우리에게 <권리>를 주장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약4:7에는, “사탄마귀를 대적하라 그가 능히 너를 피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성도의 삶과 선교의 역사에서, 권리 포기는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문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풍습에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노예라는 표시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신발을 벗으라고 할 때 그 의미가 무었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도 신발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5: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때에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신발을 벗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류살렘을 떠날 때 그는 신발을 벗었습니다. 이때 신발을 벗었던 그 경험이 하나님앞에서 그를 영적으로 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빌립보서 2:6-8절에 의하면 그 모든 사람들 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리를 포기하셨습니까?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늘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출생할 수 있는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육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공생애를 위해 홀어머니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의 보금자리를 가질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돈에 대한 권리도 포기했고, 명예도 포기하고, 사생아, 갈릴리 사람이라 불리웠고, 종교지도자들은 그분에게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분의 생명도 포기했습니다. 그분은 그 많은 권리에 대한 포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어떤 것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다른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자매를 기억합니다.그분은 30이 넘도록 결혼을 못해서 안절부절 했고, 급기야는 그로인해 영적인 침체와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그녀는 고전 7장에서 바울이 독신으로 지낸 것이 하나님의 은사였다고 배웠고, 바로, 결혼에 대한 그의 권리를 하나님의 제단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때 그분은 그 분안에서 놀라운 자유함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하나님께 포기하기를 거부합니다. 많은 경우 혼기가 찼을 때 결혼 상대자를 찾느라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고, 내적 평안도 갖지 못하고, 초조하기까지 합니다. 만약에 결혼에 대한 권리를 한번도 하나님께 드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해서 심각한 문제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 문제나 갈등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사탄의 참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이 너의 배우자를 주실 때 까지 기다리지 않았어. 너는 잘못 된 사람과 결혼했을지도 몰라.”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결혼에 대한 권리를 하나님앞에 포기하고 나서 얻은 배우자라면, 삶가운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그의 결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죠. 거기에 평안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에 있어서 권리를 포기했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렙다 과부가 음식을 포기했고, 오병이어의 기적 이전에 작은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포기했습니다.28세의 나이로 1964년 콩고 내란때 살해되었던 빌 맥체스니라는 미국인 선교사의 시가 있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파송받던 날 낭독했던 시는 그의 시신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한번 낭독되었습니다.

나의 선택

 아침 여덟시, 나는 햄과 계란으로 마련된
아침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한시가 되면 잘 구운 스테이크로 점심을
그리고 일과가 마친후 샹드리에 아래서 저녁을 들고 싶습니다.

방마다엔 전화가 있고
부드러운 카펫 이 깔려 있는 마루와
예쁜 커튼으로 꾸며진 문이 있는
그런 현대적인 집을 갖 고 싶습니다.

사랑스런 것들로 잘 정돈된 아늑한 방
스프링이 들어 있는 푹신한 안락의자
그리고 예쁜 텔레비전 한대를 갖고 싶습니다

 나는 또
최신 유행의 조끼, 정장이 가득찬
깔끔하고 멋진 최고급 옷장을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
왜 크리스쳔은 이런 최고급을 가질수 없나요?

그러나 그때 나는 기억합니다.
한 조각의 음식도 없이 주님은 40주야를 홀로 금식하셨습니다.
멸시당하고 거절당하신채, 그분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겨질 때 까지 그분은 그 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슬픔과 번민을 겪었고,
안식을 줄 육신의 친구도 그에겐 없었습니다.
마지막엔 하나님께 까지 버림을 당한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지새운 그 수많은 밤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고자 합니다.

나의 이 선택은 내가 가지고 싶었던 이 많은 것들에 대한
포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내란이 일어났을때 도망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있기를 선택했을 때, 그는 또한 그것이 그의 생명의 포기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2차대전중에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그리스도인이 히틀러의 감옥과 수용서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그때 작은 어느 수용소에 앙리코라고 하는 소장이 있었고, 수용된 사람중에 코리텐 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코리텐 붐은 미국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는데, 그녀가 살고있는 그동네에, 그 앙리코가 신분을 속이고 도망와서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코리텐 붐은 그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식사를 하다가 코리텐 붐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그 소장은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죠. 그때 코리텐 붐은 자신이 그 수용소에 있었었다고 말했고, 그녀의 언니가 거기서 죽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장은 얼굴이 창백해 졌습니다. 코리텐 붐은 계속 말했습니다. 전쟁은 끝났고 지금은 평화의 시대입니다. 저는 오직 당신과 식사를 하기 위해 당신을 초대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조금후 그 소장은 포크와 나이프를 던지며 “당신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코리텐 붐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앙리코에게 복수할 충분한 자격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포기했습니다.그녀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용서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식사가 끝났을 때, 그 소장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그의 삶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마5:5 산상 설교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온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종류의 단어를 싫어합니다. 도리어 터프하다느니 강하다느니 하는 말을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문화에서 온유를 연약함으로 종종 의미 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연약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스라엘 지형과 기후상, 그분은 용광로 같은 뜨거운 바람도 쐬어 보셨고, 울퉁불퉁한 거친 바위투성이 산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다면,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도 대부분이 어부 출신의 노동자 계급에 속하였다면, 그들은 결코 유약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복종할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강한 성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뼈아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볼려고 시도했습니다.혈기를 부려 감독관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그 살인이 탄로날까봐 겁이나서 도망쳐야만 했고, 그길로 광야에서 거친 꿈을 묻고 양치기로 40년을 지냈습니다.그리고 나서, 지금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게 하십니다.하나님앞에서 그의 모든 권리에 대한 포기입니다.지금 이순간부터 모세는 없습니다.오직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만 나타나는 것입니다.차라리 훨씬 편합니다.

내가 권리를 주장할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고,
내가 권리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습니다.그때 우리의 영적 생활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 아십니까?

by권세보 목사 (Peter Kwon)

권세보목사세보(Peter Kwon)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현재 미국 빌행턴 한마음장로교회 담임목사입니다.

황제가 어쩌지 못한 하나님의 사람 크리소스톰

교부 크리소스톰의 아름다운 이야기

크리소스톰은 로마황제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 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후 신하에게 이 렇게 지시했다. “크리소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했다.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챤입니다.” 황제가 고 함을 질렀다. “크리스챤이면 별놈이냐? 빨리 집어 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넣더라도 혼자있는게 아닙 니다. 하루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 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두면 그에게 좋은 일만 하는 셈입니 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명령했다.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 신하가 고개를 흔들어댔다. “황제님. 그건 더욱 안됩니다. 그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 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마있지 않아 그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챤이 되고 말 것 입니다. 그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악질죄인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 게 해주는 일입니다.”

황제가 노발대발했다.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당장!” 신하가 사색이 되어 다시 말했다. “어이구!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사람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중에는 처형당할때 두려워하거나 우는 사 람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제일 좋은 것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면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앙? 아이 구 — “

우리 크리스챤들은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 질그릇속에는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 두려움의 대상인 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천만의 말이다. 뇌물 몇푼에 양심을 팔고, 수입 몇푼에 신앙까지 도 팔아치운다면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황제와 크리소스톰이 만나 이런 대화를 하였다.

황제 : “네가 만일 예수를 배반하지 않으면 멀리 귀향을 보내겠다”
크리: “이 세상은 어디나 아버지의 집이니 어디 간들 상관이 있겠는가?”
황제: “그러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
크리:  ”나의 생명은 예수 안에 있으니 폐하가 능히 죽이지 못할 것이요”
황제: “그러면 네 재산을 빼앗아 버리겠다”
크리: “내 재산은 하늘에 있으니 빼앗기가 힘들 것이요”
황제: “너의 친구들로부터 너를 떼어 놓겠다”

이런 대화 끝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내보냈다고 한다. 신앙은 참 멋지다.                                            인생을 멋있게 하고, 멋지게 살게 한다.

기독교 이단 연구발표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단 연구 발표 적법하다” 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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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교수 기자회견
 

이단에 대해 각종 매체에 그 이단의 잘못된 것을 알릴 때, 이단들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단의 폐해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또 이단과 기독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일들이 이단들의 잘못을 두고 기독교의 잘못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에서 이단연구 발표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려 눈길을 끈다.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은 총신대 교수들과 그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와의 법적 다툼에서 나왔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와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 간에 벌어진 명예훼손 법적 다툼이 총신대의 최종 승리로 6년만에 마무리됐다.  대법원은 지난 28일 (2011.4)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단성이 의심되는 목회자의 교리를 비판하거나 이를 신문에 광고한 것은 적법하다며 박윤식 원로목사를 비판한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의 손을 들어줬다. 자신을 이단으로 몰아 명예를 훼손했다며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인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원로목사가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한 것이다.

이전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의 담임목사였던 박윤식 목사는 그의 이단성을 지적하는 현대종교의 발간인 고 탁명환 소장을 이 교회의 한 집사가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박윤식 목사의 살인교사 혐의는 무혐의 처리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 박윤식 목사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런데 이후 박윤식 목사는 지난 2005년 예장합동 교단 가입을 시도하면서 새롭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됐다.

박목사측에 이단성이 있다고 판단한 합동 교단 소속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교단 가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교수들은 이를 알리기 위해 박 목사의 이단성을 연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배포했고 교단 신문에도 광고 형식으로 게재했다.

이에 대해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측은 총신대 신대원 교수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면서 지리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 것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의 설교 내용 속에 총신대 교수들이 신문에 게제한 광고 내용과 같이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목사에 대해 이단성을 문제삼은 탁명환 소장을 박 목사의 운전기사가 살해한 사건과 예장통합총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박윤식 목사와 평강제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점 등도 이번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판결은 박윤식 목사의 문제뿐 아니라 이단들에 대해 정통 교회들이 여러모로 잘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갖게 해주었다.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단들의 행태와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널리 알려,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단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재판은 2011.4.28.에 대법원 판결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교회에서 헌금하는 이유 네 가지 유형

교회의 헌금, 교회에 헌금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유형과 바람직한 모습


소토교회 본당의 풍경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헌금도 더 많이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결과에 보면

일주일에 4일 이상 성경을 읽는 사람은
Giving financially to a church 교회에 헌금 +416%
Memorizing scripture 성경 암송 +407%
Discipling others 제자 삼기 +231%
Sharing their faith with others 복음 증거 +228%
Giving financially to causes other than their church 교회 외에 후원 +218%

였다고 하네요. 아쉬운 것은 이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 아니라 미국 교회의 조사결과입니다.

그런데 전 이렇게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헌금도 더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그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삶이 헌신적으로 변하게 되지 않습니까? 신앙이 깊어질수록 돈에 구애되거나 구속되지 않고, 돈을 다스리게 되니, 돈을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교회에서 이렇게 성경의 말씀에 감동되어서 그 삶이 이타적으로 변화되어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과는 달리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 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해보았습니다.

 첫째, 투자형입니다.

때로 교회에 사업성이 뛰어난 분들이 등록을 하거나 교회를 옮겨올 경우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단시간에 정착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돈을 잘 씁니다. 헌금도 많이 할 뿐 아니라, 목사에게 환심을 사려고 선물도 하고, 교인들에게 지지를 얻는데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 대부분 교회에 빨리 정착하고 또 자신의 입지를 빨리 굳혀서 단시간에 교회의 중직이 되거나, 교회의 활동에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거기서 그친다는 것이죠. 그건 신앙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데 말이죠.

둘째, 협박형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심 때문에 헌금을 많이 하는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정말 이것이 신앙 때문인가 싶은 모습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그 심성이 여리고, 또 미래에 대한 무서움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협박에 잘 넘어갑니다. 안하면 벌받을 것 같고, 뭔가 우려스런 일이 생길 것 같고, 그래서 목사가 설교나 기도로 협박하면 무서워서 헌금합니다. 분명 신앙적인 이유로 헌금하는 것 같은데, 그 내면은 두려움 때문에 헌금하는 것이죠. 이 분들은 때때로 하나님을 조폭두목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헌금은 많이 하는데, 신앙은 자라지 않고 도리어 더 큰 두려움에 잠기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죠.

세째, 뇌물형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뇌물로 헌금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 있어서 이걸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뇌물조로 헌금하는 것이죠. 그래도 이 분들은 양심이 밝은 분들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좀 해주어야 체면이 서는 것이죠. 나는 아무 것도 안해주면서 하나님보고는 이것저것 다해달라고 한다는 것은 도둑심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하는대로 되면 다행인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큰 시험에 듭니다. 이 분들이 뜻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이것 저것 다해드렸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돈이라는 것은 참 다스리기 힘든 존재입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우상의 자리에 있는 것이 돈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지 종교개혁자 루터는 사람의 회심을 3단계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마음의 변하이고, 두번째는 행실의 변화이며, 세번째는 돈이 든 지갑의 변화라구요. 그 돈지갑까지 변화되어야 진정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돈을 잘 다스리는 것은 신앙의 큰 과제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성경을 정말 많이 읽고, 제대로 공부하고, 은혜 받아서 헌금도 잘하는 성도들이 되길 기대하고 또 기도합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교인들 헌금 많이 내게 하려고 성경 많이 읽히는 것 아닙니까? ㅎㅎ 일단 저부터 좀 더 깊이 성경을 읽고 체험해보겠습니다. 목사도 다른 성도와 마찬가지로 똑 같이 헌금한답니다. (*)

by 코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