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바울,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이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고(창 17:5), 사래는 사라가 되었고(창 17:15),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창 32:28). 예수님께서 시몬을 만나시고는 그가 게바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2).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지요.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교회 내에서 거의 일반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된 것 같이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라고 주장합니다.정말 성경에는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일까요?

1. 바울은 사울이 회개한 후 새롭게 지어진 이름?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잠시 접어두고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라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사울이 회개한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울이 다메섹(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돌이킨 것은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로 돌이킨 후에 담대하게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22에서 우리는 그가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한 바나바도 그를 사울로 불렀으며(행 11:25), 사도행전 12장에서도 그는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행 12:25). 13장에는 성령님께서도 그를 사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시킬 일을 위해 그들을 내게로 구별하라, 하시니”(행 13:2)

만약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과 같이 사울이 회개하고 바울이 되었다면, 그가 회개한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울은 회개한 후에도 여전히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사울이라는 이름과 바울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으므로 이런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나오다가 사도행전 후반부에 가서는 바울이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고 무엇이건 연결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울에서 바울로의 변화”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울이라는 이름은 회개하기 전의 부정적인 뜻을 가진 이름이고, 바울이라는 이름은 회개한 후의 좋은 이름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2. 바울은 세계 선교를 위한 이름

그러나 실상은 사울에게 바울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으며(빌 3:5), 동시에 로마 사람이었기에(행 16:37),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과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둘 다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9을 보면, 사울이 “바울이라고도”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Then Saul, (who also is called Paul,) filled with the Holy Ghost, set his eyes on him.

“사울은 바울이라고도 한다.” 라는 표현은 그가 회개하고 나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부터 그는 두 가지 이름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사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바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는 뜻입니다. 즉 사울의 또 다른 이름이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로마 시민권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여기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울에게는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사도행전 후반부로 가면 자신이 로마 사람인 것을 내세우며 바울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성령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선교 여행을 떠난 후부터입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의 이름은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로 소개되었습니다(행 13:9). 그리고 사도행전 13:13에서는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에 바울이라는 이름이 단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울 일행을 핍박하고 대적하자, 그는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 사역에 나설 것을 선포합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되어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영존하는 생명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판단하므로, 보라,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그가 이방인 선교사가 되어 활동하는 데는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보다는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했을 겁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 중에도 한국 이름 외에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더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 목사님이 회개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그 후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이 몇 번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총독 앞에서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간증할 때 과거를 회상하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행 22:7,13, 행 26:14).

그러므로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이 된 것이 아니라, 본래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과 바울이라는 이름을 둘 다 갖고 있었는데,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3. 사울과 바울 이름의 뜻은 큰자와 작은자?

다음으로, 과연 “사울은 큰 자, 바울은 작은 자” 라는 뜻일까요? 그래서 큰 자, 교만한 자가 회개하고 낮은 자, 작은 자가 되었을까요? 이것 역시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바울(파울로스)이라는 이름에는 ‘파울루스'(작은 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사울은 ‘큰 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 이름인 사울은 “묻다, 요청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솨알에서 파생된 ‘샤울’에서 나온 것으로 “요구하는, 구걸하는, 걸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가 주께 묻고 간구해서 얻은 아들이라고 하여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따라서 “스스로 큰 자라고 하는 교만한 사울이 회개한 후에 사람이 변하여 겸손하고 작은 자 바울이 되었다”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y코이네 자료실 (http://koinedata.tistory.com)

예수님을 사형선고한 본디오 빌라도는 누구인가?

예전에 성경에 있는 인물들이 과연 실제 인물인가 하는 논란이 많이 있었다. 그 중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선언한 본디오 빌라도도 그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왜냐하면 성경 외에는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디오 빌라도 그는 정말 실존인물인가? 오늘 그 정체를 밝혀본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 「디베료·가이사」치하에서 유대지역의 로마 5대 총독(AD26-36)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예수님의 재판을 직접 주관하였던 인물로서 성경에 언급되어있다. 사도신경에서도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suffered Under Pontius Pilate)라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아그립바」 1세가 말하는 빌라도는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고 굽힐 줄 모르는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규탄하였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에는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원한과 감정으로 대립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필로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특별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휘장을 사용하거나, 빌라도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걸어 놓음으로서 유대인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또한 빌라도는 성전의 보물들을 압수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필로와 요세푸스는 빌라도를 강탈자와 포학자로 묘사하고 있다. 눅13:1에 의하면,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극악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기 전에 그의 총독직을 위협하는 민중봉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즉각 폭동을 일으켰다. 빌라도는 5일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두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하라고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피에 굶주린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아내의 청원은 그로 하여금 예수를 석방시키도록 용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그와 같은 그의 성격은 군중들의 압력 때문에 예수에 대한 판결을 바꾸어버리는 성경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마리아의 거짓 선지자가 그리심산에서 성전보물을 찾아내겠다고 주장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심산으로 몰려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빌라도는 군중들이 갑자기 모임으로 인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하고 유대인들 몇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화근이 되어 사마리아 지방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 사건 때문에 빌라도는 AD 36년에 로마로 소환 당하고 총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가「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항상 예수의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칼리쿨라 황제때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주장에 의하면 네로황제 때에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전승에 의하면 그가 후에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와 함께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특히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던 그의 아내는 프로쿨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추앙을 받고 있으며, 희랍정교회는 그의 아내 프로쿨라만이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