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신앙과 창조과학은 구분되어야 한다?

윤철민 목사(울산미포교회)는 <개혁신학 vs. 창조신학(CLC)>이란 책을 통해 개혁신학 입장에서 ‘창조과학’을 비평하였다. 개혁신학에서 보는 창조과학, 과연 그는 어떤 시각을 갖고 창조과학을 보고 있을까? 개혁신학 대 창조신학

저자는 먼저 ‘창조신앙’과 ‘창조과학’을 구분하며, 지구 나이에 대한 관점에 대해 “성경은 지구 나이에 관해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창조과학자들이 언제나 성경에 호소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신자들에게 설득력을 갖지만,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 종교개혁자들의 ‘문자적’ 해석과는 다른 ‘겉보기 문자적 해석’을 사용하면서, 문자 안에 담긴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남용하여 성경이 주장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도, 즉 자신들의 글과 강의가 무오하며 영감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인다.

구체적으로 그는 창조과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절대 도그마(dogma), ‘홍수지질학’에 대한 태도를 통해 ‘창조과학’과 ‘창조신앙’을 분리한다. ‘

노아의 대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이자 전지구적인 대격변이고 지질학적 증거를 남겼다는 주장은 옳지만, 창조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지구상의 화석을 생성시킨 유일한 대격변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 이같은 논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안식교)나 세대주의자들의 교리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는다.

또한, 타락 전에는 인간과 동물의 죽음이 없었고 그들이 채식만 했으리라는 ‘네페쉬(nephesh) 교리’에 대해선, “개혁주의는 인간이 순종이라는 윤리적 조건과 상관 없이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미신적인 믿음을 경계했다”고 답한다. 타락 이전 에덴에서 사람은 불사(不死)의 생존이 아닌, ‘행위언약’을 통해 영생을 가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 순종을 통해 영생의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언약을 체결했지만, 아담이 이를 어겼기 때문에 무위로 끝났다는 해석이다. 동물의 불사 문제와 창세기 9장에서 파생된 ‘채식주의’에 대해서도 “하나님이시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밖에 ‘인류 나이 6천년설’의 근거가 된 창세기의 족보에 대해선 “창조과학의 최대 관심사는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젊은 지구를 지켜라’ 라는것 같다”며 “창세기 저자들이 먼 과거에 대한 정확한 연대기적 정보를 전달하려 한 게 아니었으므로, 연대기적 사료를 읽는 독법으로 창세기를 읽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창조과학자들처럼 ‘젊은 지구론’을 믿지 않아도 진화론자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은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지구 창조론과 지적설계 운동도 충분히 ‘창조신앙’으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며,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성경을 백과사전으로 여기는 것은, 성경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는 끝으로 “창조과학에 대해, 과학은 어쩔 수 없더라도 신학은 얼마든지 비평해 볼 수 있음에도 한국 신학자들이 창조과학의 신학을 방치해 둔 것 같다”며 “신학자들이 침묵하니 목사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 신학자들은 자크 데리다나 미셀 푸코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창조과학 같은 실용적인 신학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신학계에 건의했다.

코이네도 이 책의 저자와 일맥상통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기독교인인 오바마 미대통령 왜 성탄절에 교회가지 않았을까?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번 성탄절 때 교회에 가지 않은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그가 공무 중인 것도 아니고, 고향이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인데도 그는 성탄절에 교회에 가질 않았고, 이 때문에 보수 기독교인들이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교회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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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독교인 창조론에 대해 얼마나 믿고 있을까?

인간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 미국인들은 창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2013.7)에 따르면, “사람과 생물들이 태초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미국인의 60%가 ‘아니다’ 라고 대답했으며, 33%는 그렇다고 대답하여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조금 세밀하게 살펴보면, 응답자의 32%는 무신론적 진화론 입장에서 “진화는 자연선택과 같은 자연스런 과정을 거쳐 일어났다”고 보고 있어, 인간은 신의 개입 없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이나 절대자가 진화에 개입했다”고 보는 유신론적 진화론자가 무려 24%나 되었다. “절대자가 사람과 생물들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하도록 진화의 과정을 이끌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표면적으로는 진화론을 수용하는 이들이 60%이지만, 인간의 모습에 대해 신이 개입했거나, 신이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이들 또한 60% 라는 것이다. 즉 신의 창조와 진화의 중간지대에 있는 이들이 1/3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_진화론_미국인

이런 결과는 응답자의 종교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였다.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자는 64%가 창조론을 믿고 있었고, 흑인 개신교인은 50%가 그러했다. 주류 백인 개신교인은 15%만이 창조론을 믿고 있었고,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는 31%, 백인 가톨릭 신자는 26%가 창조론을 믿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진화했다는 주장은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자의 27%, 흑인 개신교인의 44%, 주류 백인 개신교인의 78%,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의 53%, 백인 가톨릭 신자의 68%가 믿고 있었다.

재미난 부분은 진화를 믿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유신론적 진화를 믿는 사람과 자연적 진화를 믿는 사람에 대한 조사였다.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자는 유신론적 진화론이 압도적이었다. 100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자 가운데 8명, 흑인 개신교인 가운데 17명, 주류 백인 개신교인 가운데 36명,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 가운데 27명, 백인 가톨릭 신자 가운데 33명은 하나님이 현재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지 않았으며 진화에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즉 이들은 기독교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다는 대답을 하였다.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여성들이 창조론을 더 잘 믿는 경향이 있었다.여성의 38%가 창조론을 믿는 반면, 남성은 28%였다.

그러나 나이가 어릴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진화론을 믿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18세에서 29세는 68%가 진화론을 믿고 있었으나, 30세에서 49세는 60%, 50세에서 64세는 59%, 65세 이상에서는 49%로 점점 줄어 들었다.

반면, 창조론은 18세에서 29세는 27% 뿐이었으나, 30세에서 49세는 33%, 50세에서 64세는 35%, 65세 이상에서는 36%로 점점 늘었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는 72%가 진화론, 24%가 창조론을 믿었다. 대학 재학의 경우는 62%와 33%, 고등학교 이하는 51%와 38%로 각각 나타나 고학력자일수록 진화론, 저학력자일수록 창조론을 믿는 경향이 뚜렷했다.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이를 보면 민주당원의 67%와 무소속의 65%는 진화론을 믿는 반면, 그리고 공화당원은 43%만이 진화론을 찬성했다.

미국인들이 진화론을 믿는 경향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2004년에는 단지 13%가 인간은 오직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된 존재라고 믿고 있었고, 2008년에는 단지 15%가 믿고 있었다.이번 조사에서 미국인의 33%는 인간은 하나님 없이, 수십억 년에 걸쳐서 진화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교회

소토교회

교회여 남자의 심장을 뛰게 하라, 남성의 박진감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두둑한 교회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 교회에 여성과 장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게 장년층 특히 여성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그들을 끄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남자들과 청년들은 그들의 가치를 무시당하거나 나쁘게 보기 때문에 교회에 오길 꺼려한다고 한다는 말이 된다.

현대 교회는 부드러운 아내, 엄마와 같은 포근함, 섬세하고 정적인 현모양처와 같은 그런 여성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교회는 불안하고 긴박한 세상 속에서 그 인생을 잡아주는 영혼의 닻이며, 안전과 평안과 안위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성 중심적인 교회에서 남성들은 혹 편히 쉴 수는 있을 지언정 그들의 가슴을 뛰게하며, 그리스도에게 헌신적인 사람이 되게 하긴 어렵다.

남자들은 도전 지향적이며, 짜릿함을 원한다.뭔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고자 하는 기회를 찾고 있으며,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때로 위험도 과감히 받아들인다. 다른 남자들이 모험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거기에 뛰어들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땀흘려 올라가서 깃발을 꼿고 싶은 저 높이 보이는 정상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교회는 이런 남자들의 마음을 뛰게 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비전을 꿈꾸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큰 모험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큰 배를 저어가며, 서로 도전을 주고, 모험하도록 격려한다. 남자들은 이러한 배짱 두둑한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다.

남자들이 깨어나야 교회의 양적인 성장도 이루어진다. 왜냐면 남성들은 가족을 교회로 이끌고 오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엄마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경우 가족들의 17%가 엄마를 따르지만,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즉각 93%가 따라간다고 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기독교의 가치는 여성적이지만, 삶은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교회가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남성들이 자기 위치를 찾아서, 남자들의 타고난 재능이 교회를 위해 드려지도록 남성적인 목소리를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예수님을 사형선고한 본디오 빌라도는 누구인가?

예전에 성경에 있는 인물들이 과연 실제 인물인가 하는 논란이 많이 있었다. 그 중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선언한 본디오 빌라도도 그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왜냐하면 성경 외에는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디오 빌라도 그는 정말 실존인물인가? 오늘 그 정체를 밝혀본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 「디베료·가이사」치하에서 유대지역의 로마 5대 총독(AD26-36)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예수님의 재판을 직접 주관하였던 인물로서 성경에 언급되어있다. 사도신경에서도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suffered Under Pontius Pilate)라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아그립바」 1세가 말하는 빌라도는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고 굽힐 줄 모르는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그를 규탄하였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에는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원한과 감정으로 대립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필로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특별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휘장을 사용하거나, 빌라도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방패를 걸어 놓음으로서 유대인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또한 빌라도는 성전의 보물들을 압수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필로와 요세푸스는 빌라도를 강탈자와 포학자로 묘사하고 있다. 눅13:1에 의하면,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극악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기 전에 그의 총독직을 위협하는 민중봉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첫 봉기는 로마군을 투입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세속화시키려고 시도한데서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즉각 폭동을 일으켰다. 빌라도는 5일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두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궁전에 세운 「로마」기념비를 제거하라고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피에 굶주린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아내의 청원은 그로 하여금 예수를 석방시키도록 용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다. 그와 같은 그의 성격은 군중들의 압력 때문에 예수에 대한 판결을 바꾸어버리는 성경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마리아의 거짓 선지자가 그리심산에서 성전보물을 찾아내겠다고 주장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심산으로 몰려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빌라도는 군중들이 갑자기 모임으로 인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하고 유대인들 몇 명을 죽였다고 한다. 이 사건이 화근이 되어 사마리아 지방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 사건 때문에 빌라도는 AD 36년에 로마로 소환 당하고 총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가「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항상 예수의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칼리쿨라 황제때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주장에 의하면 네로황제 때에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전승에 의하면 그가 후에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와 함께 순교를 당하였다고 한다. 특히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던 그의 아내는 프로쿨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아내가 추앙을 받고 있으며, 희랍정교회는 그의 아내 프로쿨라만이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성 니콜라스에서 시작된 산타가 음료회사 CF모델이 되기까지

산타의 유래와 정체, 산타는 어떻게 성니콜라스 주교에서 코카콜라의 CF 주인공이 되었는가?

드디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과 산타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없는 산타, 그러면서 성탄절의 주인공처럼 행세하는 산타는 누구인가? 산타의 정체를 파헤쳐봅니다.

산타

1. 산타란 누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Santa는 아마 북부 추운 나라 어딘가 에서 탄생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Santa는 Turkey의 중앙, Anatolia 지방의 남쪽 Myra라는 곳, 그러니까 추운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막지형에 가까운 곳에서 기원전 4세기에 일생을 보낸 실존 인물 St.Nicholas가 원조입니다.   당시 그 지역의 주교로 있던 성니콜라스는 어린이를 특히 좋아하였고, 또 많은 선행을 행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자매가 구혼자가 있음에도 가난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자 이들을 몰래 도와 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저녁에 그 집 지붕에 몰래 올라가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그 금 주머니가 벽난로에 걸어 두었던 양말에 들어가게 되었다네요.그래서 성탄절 전날에 아이들이 선물을 받기 위해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는 풍습이 생긴 것이라 합니다.

그후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우스의 축일 (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12월 5일에 과거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그 풍습이 유럽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우스라는 이름 대신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산타클라스는 뉴욕에서 자본화, 상품화의 연금술사 미국인들에 의해 지금 모습의 Santa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재탄생된 산타클로스는 그 정체마저 다시 세탁이 되어 터키의 성자 니콜라스가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전설적인 인물로 각색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산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어디에 산타 본부가 있다고 여겨져 매년 전세계 어린이들이 자신의 소망과 받고 싶은 선물을 적은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칸디나비아에 있다고 알려진 Santa 는 원래 이 지역에서 구전되던 말을 타고 선물을 나눠줬다는 바이킹의 신 Odin과 염소를 타고 비슷한 일을 했다는 그의 아들 Thor의 전설이 미국식 Santa와 결합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터키에 살았던 St.Nicholas와 염소를 타고 다녔다는 바이킹의 신이 미국에서 만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지금도 아이들의 동심에서 살아, 성탄절의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Santa 할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산타_성니콜라스 주교

그래서 제가 산타는 짬뽕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슬프기까지 한 전설의 우여곡절이지만 그 모든 것이 섞이고 무쳐 오늘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핵심은 바로 St.Nicholas의 인류애와 박애정신이 지금의 Santa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불뚝이 빨간 옷의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런데 성니콜라스의 화신이라는 산타, 그 산타는 어떻게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싼타클로스 할아버지로 캐릭터화 되었을까요?

그리고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면서 “호~ 호~ 호 메리크리스마스” 하고 달리는 싼타클로스의 모습은 1822년 성탄절 이브에 미국의 신학자인 클레멘트 무어라는 분이 쓴 시인 “성 니콜라스의 방문”에서 처음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호주에서는 산타의 ‘호~호~호~’라는 웃음소리가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가졌다하여, 법적으로 산타에게 이렇게 웃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웃음 소리인 Ho-Ho-Ho에서 ‘Ho’와 비슷하게 들리는 ‘Hoe’가 ‘매춘부’라는 뜻의 단어 ‘whore’의 속어이기 때문이라네요. 산타는 호주에선 또 다른 웃음을 개발해야 감옥에 가지 않겠네요.

그리고 원래 날씬 했던 산타가 흰 털이 달린 빨간옷과 검은 벧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뚱뚱보가 된 것은 미국 만화가 Thomas Nast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20년동안 잡지에서 산타의 캐릭터를 계속 발전시켜왔다고 하네요.

Tomas nast의 산타

그러다가 1931년, 미국의 음료 회사 코카콜라가 겨울철 콜라 제품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해 홍보 전략으로 코카콜라의 상징적인 색, 붉은 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히면서, 백화점 홍보에 나선 이후 이 모습이 크게 유행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제 산타의 정체를 아셨죠? 제 생각에는 예수님을 닮은 성니콜라스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이번 성탄에 선한 일을 하신다면 (물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산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Merry Christmas ~~~  행복한 성탄 되세요.

개신교 정통교단들도 선거부정과 현 정부에 대해 비판해

개신교 정통교단들도 현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국선언을 해

한국의 대표적인 정통교단이라 할 수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이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현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교단 총회장의 목회서신 형식으로 발표하였다. 천주교의 박근혜 대통령 하아 발언으로 정부와 종교가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개신교 정통교단이 여기에 가세해 정부를 비판한 것이라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음은 예장통합 교단 총회장 명의의 목회서신 전문이다.

2013년 대림절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총회장 목회서신

김동엽목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우리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이 땅을 회복시키신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였던 것처럼(눅4:18),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며(막10:45)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마5:9)으로 대림절의 참된 소망을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총회는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 이웃사랑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각 시대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하며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해 왔습니다.

먼저 우리 총회는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사이버사령부의 개입으로 인한 국론분열, 정치권의 비정상적 국회운영, 민생문제의 소외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 원칙과 국민의 주권을 무시한 행위입니다.

또한 정부가 성직자의 말씀선포사역에 대해 감시, 고소 및 수사를 하는 행위는 자유로운 종교활동과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총회는 이 일에 중심에 있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사과를 요청하며, 재발방지를 위한사후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총회는 IMF 경제 위기 당시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신앙각서”를, 2,000년대를 시작하면서는 “새 천년을 맞는 한국교회의 신앙과 경제생활”을, 세계에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경제 정의, 생태정의에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표하고 성서적 경제관를 바탕으로 청지기적 경제정의 실천운동을 해왔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구조화된 빈부격차 속에서 청년취업문제, 비정규직 문제, 고용불안과 실업문제, 여성노동자 차별문제, 장애인고용문제 등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의 요구에 응답하기보단 대기업 친화적 정책으로 경제정의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총회는 정부가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기반으로 안정과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 가기 위해 경제정책의 민주적 전환을 요구합니다.

 또한 우리 총회는 지난 WCC 제10차 총회에서 채택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가 증언한 바 대로 분열, 전쟁, 고통은 충만한 생명을 바라는 하나님의 뜻과는 모순됨을 고백합니다.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인간적 삶의 위기를 고려할 때,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재개하고 북한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유엔이 한반도에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윤리적이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북 경제제제와 금융제재의 해체를 고려할 것을 요구합니다.

총회는 분단체제를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의 부담감과 핵무기를 포함한 전쟁의 위험을 떠안고 살아왔던 지난 60여년의 반생명적 분단 상황이 너무 길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총회는 정부가 평화통일을 향해 가는 민족공동체의 사회적 통합과정을 수립하고, 평화협정체제를 포함한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하여 평화통일의 길을 적극적으로 열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끝으로 무엇보다 가슴 아픈 현실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지 못하므로 사회적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한 사회적 책임과 참여와 봉사에 대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도외시하고, 이웃과 소통하지 못한 채, 여전히 교회의 벽을 높이 쌓고 있습니다.

총회는 이 대림절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교회와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화평의 주님이 오셔서 한국교회가 불의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치유와 화해의 생명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세상에 흩어진 모든 교회들과 민족들에게, 특별히 고통 가운데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중동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에게 의와 화평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화.

2013. 12. 5

총회장 김동엽 목사

제자교회의 판결로 본 교회의 재정 부정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제자교회의 판결로 본 교회의 재정 부정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제자교회 재정부정을 규탄하는 시위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김용관)의 제자교회 관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측의 검사는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과 이를 반박하는 피고인측 변호인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진행되었다.

검찰측은 교회의 재정을 제자교회 내규와 절차에 따라 집행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재정을 선교비라는 명목으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측은 경우에 따라서는 내규와 절차와 상관없이 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으로 선교비를 지출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서로 맞선 것이다. 

본 건과 관련해서 대법원의 종교단체의 횡령죄의 판례를 보면 

▲위탁받아 보관하고 있는 교회 재정이 사라졌을 경우 그 행방이나 사용처를 설명하는지의 여부,

▲피고인이 주장하는 사용처, 즉 선교비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의 존재유무,

▲피고인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신빙성 있는 자료를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

한결같이 불법영득의 의사로써 횡령한 것이라고 추단하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00. 3. 14. 선고 99도457 판결).

또한 사용처에 대한 입증뿐만 아니라 재정집행에 대한 정당한 절차가 내규와 내규가 없을 경우 교인총회를 통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집행했느냐를 판단한다.

교회의 재정은 교회의 재산이다. 기독교 단체인 교회에 있어서 교인들의 연보, 헌금 기타 교회의 수입으로 이루어진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교회 소속 교인들의 총유(總有)(지분권 없는 공동재산)에 속한다. 따라서 그 재산의 처분은 그 교회의 정관 기타 규약에 의하거나, 그것이 없는 경우에는 그 교회 소속 교인들로 구성된 총회의 결의에 따라야 한다. 비법인사단인 교회의 대표자는 총유물인 교회 재산의 처분에 관하여 교인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아니하고는 이를 대표하여 행할 권한이 없다(대법원 2009. 2.12. 선고 2006다23312 판결)고 판시하고 있다.

즉 교회의 재정은 교회의 내규에 따라 집행해야 하며, 그러한 내규가 없다면 교인총회라 할 수 있는 공동의회에서 예산ㆍ결산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교인총회에서 결의해 준 예산항목이 없으면 지출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지출행위는 불법행위가 된다. 마치 국회가 예산 승인을 해 주지 않으면 행정부가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목동제자교회  횡령에 관한 검찰 조사 결과, 정 목사는 2008년 10월부터 2010년 2월까지 32억여 원의 교회 헌금을 횡령했다. 정 목사는 2011년 12월 2일 열린 1심에서 징역 4년, 이듬해 5월 30일 열린 2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정 목사와 공모한 서 아무개·홍 아무개 집사도 각각 징역 1년 6월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3년 8월에 정삼지 목사는 가석방되어, 지금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과 함께 하고 있고, 아직까지 교회는 그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교회에 가기 싫은 10가지 이유

Top Ten Reasons Church Dropouts Stopped Attending Church

교회에 출석하기 싫은 이유 10가지

 

1. Simply wanted a break from church

1. 그냥 쉬고 싶어서

2. Church members seemed judgmental or hypocritical

2. 교인들의 비판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 싫어서

3. Moved to college and stopped attending church

3. 대학 진학 후 교회 출석을 하지 않음

4. Work responsibilities prevented me from attending

4. 과중한 업무로 인해 교회 출석을 하지 못함

5. Moved too far away from church to continue attending

5. 계속해서 출석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로 이사를 떠나서

6. Became too busy though still wanted to attend

6. 교회는 가고 싶어도 바빠서

7. Didn’t feel connected to the people in my church

7. 출석교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해서

8. Disagreed with the church’s stance on political or social issues

8.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과 견해를 달리해서

9. Chose to spend more time with friends outside the church

9. 교회 밖 친구들과 더 어울리기 위해서

10. Was only going to church to please others.

10. 교회 다닐 때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었기 때문에

(Source: Essential Church? by Thom S. Rainer and Sam S. Rainer III)

기독교 여자 목사가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대안

여자목사, 여성안수를 넘어 이제는 당당한 교회의 사역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예장통합 전국여교역자 연합회가 주관한 서울·이북지역 여목회자대회

예장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가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여성목회, 그 당당한 발걸음!’이라는 주제로 서울·이북지역 여목회자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발제자들은 현 한국교회에서 여자목사들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여자 목사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전국여교역자연합회는 1973년 여교역자들이 자신들의 노후 준비와 법적 지위 확보, 지도력 개발과 사역 현장 지원을 목적으로 만든 단체다. 예장통합 산하 교회나 기관에서 사역하는 여교역자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으며, 현재는 2,200여명의 회원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 동안 주어진 목적을 향해 활동한 결과 안식관, 보금자리(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 또 하나의 집(아동그룹홈)을 비롯한 6개의 시설을 갖춘 사회복지법인과 복지교회와 예지교회, 28개 지회와 13개의 전문위원회를 갖추고 있다.

이날 주베발표에 나선 김호경 교수(서울장신대 신약학)는  “ 여자 목사는 참 힘든 자리다. 교회가 여자 전도사를 원하지 여자 목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안수받기를 주저하는 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들의 힘이 엄연했던 그 시절에, 여자의 바른 믿음을 통해서 그의 권능을 드러내셨다”며 “성경의 혈루증 앓던 여자처럼 절박한 마음과 믿음으로 응답한다면, 불가능으로 넘쳐나는 시대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생명은 반드시 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채은하 교수(한일장신대 구약학)는 ‘여성목회, 그 당당한 발걸음!’이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여학생들의 일터가 교회에서 극히 제한적이고 사실 그리 반겨주지도 않는다는 현실을 꼬집으며, 사회는 여성의 진출을 당연시하고 인정하고 있는데, 교회는 사회적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리다”고 지적하며,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남자목사와 여자 전도사의 구도로 그 사역이 이어져왔고, 그 역할이 거의 고정화되다 시피하였다. 그런 현상에서 이제 여성들이 남자목사들이 하던 사역의 영역에 순조롭게 정착하기는 정말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현재 교회의 성장이 하락추세에 있고, 일할 수 있는 교회와 사역의 현장이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목사들이 설자리가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분명히 있고, 하나님께서 여성을 목사로 세우신 또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일자리가 없는가? 남자 목사와의 경쟁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목회사역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일에 준비해야 한다. 목사안수를 받은 것은 밥벌이 하기 위해 그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