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주일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 ‘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 1.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따라서 내일을 스승의 주일로 지키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사 등 교회 안에 가르치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매년 5월 셋째 주일을 청소년 청년 주일로 지킵니다. 대신, 11월 셋째 주일을 교육 주일로 정하고 교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2. 이 글은 스승의 날인 오늘 […]
코이네 박동진 목사의 칼럼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 1.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따라서 내일을 스승의 주일로 지키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사 등 교회 안에 가르치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매년 5월 셋째 주일을 청소년 청년 주일로 지킵니다. 대신, 11월 셋째 주일을 교육 주일로 정하고 교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2. 이 글은 스승의 날인 오늘 […]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 것 깉다.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분들이 계신다. 그냥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자신의 신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모범으로 삼고, 심지어 교인들에게 본(本)으로 증언까지 하게 되는 분들이다. 그 분들의 믿음이 너무 귀해서다. 그들의 헌신이 너무나 아름다워서다. 천국에서 해처럼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여인이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군인 중 상사 한 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빵을 받아든 여인은 지체없이 이 빵을 세
1.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새벽 두 세 시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시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신 후 가시는 분도 계신다. 거의 매일 저녁에 교회에 와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 거의 매일 이른 아침에 차를 몰고 와서 교회 마당 한쪽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기도한 후, 바로 출근하는 분이 있다. 일터에 가기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참 선지자이신 주님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 주님의 사역의 핵심가치인 ‘회개(심판의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희망의 메시지)’에 비추어보면 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거짓 선지자들은 ‘죄’를 지적하거나 회개를 촉구하지 않는다. 대신 칭찬 일변도의 말이나 만사형통에 대한 메시지만 전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지 않는다. 대신, ‘이스라엘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8:6) 이 세상 사람 몇 명이 죽으면 사람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될까? 세계 인구 77억 중에 70억이 죽으면 나머지 7억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생명이 있으면 죽음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모든
절에 다니는 친구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교회도 절처럼 헌금 들어오면 목사가 다가지는 것이냐고요! 내가 말했습니다. 교회에 헌금을 교인들이 관리하고 목사는 교인들이 예결산위원회를 뽑아서 정해주는 사례비를 받는다고 하니 놀랍니다. 사이비 종교나 사교집단은 몰라도 정통적인 교회는 교인들이 재정을 공적으로 관리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도 교인처럼 똑같이 헌금도합니다. 대체적으로 목사님들은 모범적으로 헌신해야하기에 헌금도 많이하는 편입니다. 저도 시골교회 목사로 최저
백해무익한 유투브 영상이 올라오면, 특히 그 해로움이 위태할 정도라고 생각될 때, 열심히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 그래?” 하면서 들어가 본다. 한 쪽 구석에서 그냥 지나갈 무명인의 유투브 조회수가 갑자기 올라가고, 그 무명인은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된다. 욕해 준 분들 덕분이다. 이렇게 우리는 악당들을 키우고 있다. 페이스북에 정치든, 신학이든 별 중요하지 않는 내용으로 거친 말로 집요하게
사업은 망했는데 정작 누구에게도 기댈 사람이 없었다. 그때 처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아이들 운명이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는 것은 아이들이 가난과 함께 학업을 어느 시점에서 멈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일을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불러 세워 “ 내가 과외나 학원은 보낼 수 없지만 시험에서 만점 받는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 고 하자 아들이 끼득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