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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포기, 모세에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하신 하나님

 출 3: 1-5 , 권리포기
권세보 목사 설교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능력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이라는 거죠. 그래서 악한 사탄 마귀는 종종 우리에게 <권리>를 주장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약4:7에는, “사탄마귀를 대적하라 그가 능히 너를 피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성도의 삶과 선교의 역사에서, 권리 포기는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문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풍습에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노예라는 표시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신발을 벗으라고 할 때 그 의미가 무었인지 금방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도 신발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5:15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때에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사람들은 사실 이렇게 신발을 벗은 사람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류살렘을 떠날 때 그는 신발을 벗었습니다. 이때 신발을 벗었던 그 경험이 하나님앞에서 그를 영적으로 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빌립보서 2:6-8절에 의하면 그 모든 사람들 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리를 포기하셨습니까?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늘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출생할 수 있는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육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공생애를 위해 홀어머니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의 보금자리를 가질 권리도 포기했습니다. 돈에 대한 권리도 포기했고, 명예도 포기하고, 사생아, 갈릴리 사람이라 불리웠고, 종교지도자들은 그분에게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분의 생명도 포기했습니다. 그분은 그 많은 권리에 대한 포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어떤 것을 포기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다른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자매를 기억합니다.그분은 30이 넘도록 결혼을 못해서 안절부절 했고, 급기야는 그로인해 영적인 침체와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그녀는 고전 7장에서 바울이 독신으로 지낸 것이 하나님의 은사였다고 배웠고, 바로, 결혼에 대한 그의 권리를 하나님의 제단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때 그분은 그 분안에서 놀라운 자유함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하나님께 포기하기를 거부합니다. 많은 경우 혼기가 찼을 때 결혼 상대자를 찾느라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고, 내적 평안도 갖지 못하고, 초조하기까지 합니다. 만약에 결혼에 대한 권리를 한번도 하나님께 드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해서 심각한 문제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 문제나 갈등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사탄의 참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이 너의 배우자를 주실 때 까지 기다리지 않았어. 너는 잘못 된 사람과 결혼했을지도 몰라.”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결혼에 대한 권리를 하나님앞에 포기하고 나서 얻은 배우자라면, 삶가운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그의 결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죠. 거기에 평안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에 있어서 권리를 포기했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렙다 과부가 음식을 포기했고, 오병이어의 기적 이전에 작은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포기했습니다.28세의 나이로 1964년 콩고 내란때 살해되었던 빌 맥체스니라는 미국인 선교사의 시가 있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파송받던 날 낭독했던 시는 그의 시신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한번 낭독되었습니다.

나의 선택

 아침 여덟시, 나는 햄과 계란으로 마련된
아침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한시가 되면 잘 구운 스테이크로 점심을
그리고 일과가 마친후 샹드리에 아래서 저녁을 들고 싶습니다.

방마다엔 전화가 있고
부드러운 카펫 이 깔려 있는 마루와
예쁜 커튼으로 꾸며진 문이 있는
그런 현대적인 집을 갖 고 싶습니다.

사랑스런 것들로 잘 정돈된 아늑한 방
스프링이 들어 있는 푹신한 안락의자
그리고 예쁜 텔레비전 한대를 갖고 싶습니다

 나는 또
최신 유행의 조끼, 정장이 가득찬
깔끔하고 멋진 최고급 옷장을 갖고 싶습니다
하나님,
왜 크리스쳔은 이런 최고급을 가질수 없나요?

그러나 그때 나는 기억합니다.
한 조각의 음식도 없이 주님은 40주야를 홀로 금식하셨습니다.
멸시당하고 거절당하신채, 그분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겨질 때 까지 그분은 그 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슬픔과 번민을 겪었고,
안식을 줄 육신의 친구도 그에겐 없었습니다.
마지막엔 하나님께 까지 버림을 당한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지새운 그 수많은 밤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고자 합니다.

나의 이 선택은 내가 가지고 싶었던 이 많은 것들에 대한
포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내란이 일어났을때 도망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영적인 가족들과 함께 있기를 선택했을 때, 그는 또한 그것이 그의 생명의 포기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2차대전중에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그리스도인이 히틀러의 감옥과 수용서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그때 작은 어느 수용소에 앙리코라고 하는 소장이 있었고, 수용된 사람중에 코리텐 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코리텐 붐은 미국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는데, 그녀가 살고있는 그동네에, 그 앙리코가 신분을 속이고 도망와서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코리텐 붐은 그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식사를 하다가 코리텐 붐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그 소장은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죠. 그때 코리텐 붐은 자신이 그 수용소에 있었었다고 말했고, 그녀의 언니가 거기서 죽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장은 얼굴이 창백해 졌습니다. 코리텐 붐은 계속 말했습니다. 전쟁은 끝났고 지금은 평화의 시대입니다. 저는 오직 당신과 식사를 하기 위해 당신을 초대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조금후 그 소장은 포크와 나이프를 던지며 “당신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코리텐 붐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앙리코에게 복수할 충분한 자격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포기했습니다.그녀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용서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식사가 끝났을 때, 그 소장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그의 삶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마5:5 산상 설교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온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종류의 단어를 싫어합니다. 도리어 터프하다느니 강하다느니 하는 말을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문화에서 온유를 연약함으로 종종 의미 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연약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스라엘 지형과 기후상, 그분은 용광로 같은 뜨거운 바람도 쐬어 보셨고, 울퉁불퉁한 거친 바위투성이 산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다면,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도 대부분이 어부 출신의 노동자 계급에 속하였다면, 그들은 결코 유약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복종할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강한 성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뼈아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볼려고 시도했습니다.혈기를 부려 감독관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그 살인이 탄로날까봐 겁이나서 도망쳐야만 했고, 그길로 광야에서 거친 꿈을 묻고 양치기로 40년을 지냈습니다.그리고 나서, 지금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게 하십니다.하나님앞에서 그의 모든 권리에 대한 포기입니다.지금 이순간부터 모세는 없습니다.오직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만 나타나는 것입니다.차라리 훨씬 편합니다.

내가 권리를 주장할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고,
내가 권리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습니다.그때 우리의 영적 생활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 아십니까?

by권세보 목사 (Peter Kwon)

세보(Peter Kwon)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현재 미국 빌행턴 한마음장로교회 담임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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