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기독교강요’의 집필 동기와 목적

칼뱅의 ‘기독교강요’ 집필 동기와 목적

 

기독교강요는 라틴어로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인데, institutio(강요)란 `원리들’ 혹은 ‘주된 교의적 주제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강요는 신학의 모든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주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는 자신이 가장 중시한 책이며, 칼뱅주의의 전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안에는 칼뱅 사상의 종합적인 이론이 나타나 있으며,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이론서가 된다. 그러므로, 칼뱅과 칼뱅주의에 있어서 기독교강요는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칼뱅이 이 기독교강요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기독교강요 초판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칼뱅이 기독교강요 초판을 작성하여 출판하게 된 해인 1536년에 그는 독일의 바젤(Basel)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의 노용(Noyon)을 떠나 바젤에 머무르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않는 곳을 찾아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해오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않고 공부를 계속하고자하는 욕망 때문이었고,

둘째는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프로테스탄트의 박해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칼뱅이 바젤에 있는 동안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고 그러던 중 칼뱅의 용감한 친구인 에띠엔 드 라 포르즈(Etienne de la Forge)가 사형에 처해 졌다. 프랑스왕(프란시스Ⅰ세,1515-1547)은 희생자들에 대한 외국의 동정을 막기 위해 2월 1일의 선언에서 처벌당한 자들은 단지 재세례파들과 내란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칼뱅에게 있어서 그들은 신실하고 성도다운 사람들이었으며 거룩한 순교자들이었다. 왕이 잔인성 위에 중상의 죄까지 더했다는 사실은 절대 불문에 붙일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칼뱅은 무고하게 죽어간 동료 신자들을 옹호하고, 이들에 대한 거짓된 비난을 비판하기 위해서 기독교강요를 출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칼뱅은 ‘단지 어떤 기초적인 사실들을 전달함으로써 그것에 의해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된 경건에 도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고 집필 목적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있다.

 

그런데, 초판을 발행한 이후 재판과 최종판을 보면 집필 목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539년에 독일의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서 출판된 기독교강요 제2판에서 칼뱅이 독자들에게 간단히 쓴 서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원하는 신학 후보생들에게 준비를 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출판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강요 최종판인 1539년판(제네바)에도 ‘신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읽기 위한 준비를 하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기독교강요’는 처음에는 기독교의 기초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고 자기 동료들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신학생들을 위한 신학 입문서 역할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것을 알 수 있다.

by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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