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4가지 관심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관심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선교를 시작하실 즈음에 유대인들의 생활은 강대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 지배하의 전형적인 생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쟁과 약탈 분쟁과 폭력 계층간의 억압과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복자의 종교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협력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하에서 고통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있어서 가난하다는 말은 곧 경건하고 신실하다는 말과 상통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난한 자와 더불어 여성 노인 사마리아인들이 사회에서 냉대 받고 소외된 계층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특히 지역적으로 갈릴리도 예루살렘에 비해 소외 된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예수님은 선교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된 소식 곧 복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 불쌍한 자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불쌍한 자를 찾으시고 돌보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자에 대해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천대, 멸시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세리가 비판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리들이 동족의 피땀어린 결실을 로마인들에게 갖다 바치는 것을 못마땅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비난하거나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깊은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세리를 제자 삼으셨고(눅5:27) 같은 식사도 하며 그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시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는 바리새인보다 세리의 믿음을 모범적인 신앙으로 소개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을 갖게 될 만큼 소외된 자들과 가까이 하시면서 주셨던 것입니다.

 

  1.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던 예수 믿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나라를 점령한 군인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돌아갈 혜택이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눅4:18).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눅6:20), ‘주린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잔치를 베풀 때 부한 이웃을 부르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부르라고 하셨으며(눅14:12–13) 부자 관원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눅18:22)

 

  1. 여인들에 대한 관심

 

대략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오늘날에 부분적으로 남성에 비해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누가복음에서 여성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사람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됨을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1,2장에는 많은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엘리사벳(1:7), 천한 여인 마리아(1:45), 늙은 예언자 안나(2:36), 사렙다 과부(4:26), 나인성 과부(7:1), 마리아와 마르다(10:35), 예루살렘 성에서 우는 여인들(21:27)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비교적 많은 여인들의 질병도 고쳐 주셨습니다.(4:33, 7:11, 8:2, 8:43, 8:48, 8:49, 13:10), 그리고 그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인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7:36-50)

 

  1. 이방인에 대한 관심

 

탄생한 아기 예수는 경건한 노인 시므온에 의해 “이는 만민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빗이요”라고 찬양을 받으십니다(2:31-32). 그리고 나사렛 한 회당에서 공생애의 첫 설교를 하시면서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인 사렙다 과부와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임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심으로써(4:26-27)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다는 점을 확신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로마의 백부장이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습니다(7:9).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직후 이를 지켜보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23:47).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 사랑하시고 이방인은 상대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산업 사회가 고도로 발달 해감에 따라 계층의 분화가 심화되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많이 생기게 되고 의료 시설과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아직도 성차별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서의 신분과 육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소외된 자, 가난한 자, 여성, 이방인 등 당시 사회에서 냉대 받고 소외된 부류에 대해 예수그리스도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셨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소외되었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유대인이거나 그가 가진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심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