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었냐고 질문을 할까?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저 혼자만 받는 건 아니겠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얘기는
선악과를 먹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선악과를 먹지 않는 수준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느냐고 원망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자기의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이죠. 도리어 하나님께 자기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않은 상태가 되도록 해주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됩니다.

또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잠깐 에덴동산을 상상해보시겠습니까? 어떻게 상상했습니까?
맑은 시내가 흐르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토끼와 다람쥐가 뛰노는 곳으로 상상했나요? 그러면 에덴동산의 크기는 어느 만하게 상상했습니까? 잠실운동장? 여의도광장?

성경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네 강이 발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서울을 중심으로 강 네 개를 꼽으면 한강, 임진강, 소양강, 한탄강입니다. 네 강이 발원한 것과 같은 얘기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에덴동산이 상당히 넓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담, 하와가 평생을 돌아다녀도 한 번도 안가 본 곳이 있을 만한 규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평생 받아누려도 다 받아누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고 많은 곳 중에 왜 하필이면 선악과나무가 있는 곳에 갔을까요? 에덴동산이 잠실운동장만한 크기였으면 자기들 의사에 관계없이 늘 선악과나무를 봐야 했습니다만 에덴동산은 그 정도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평생 그 근처에 갈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갔을까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엄마와 아이는 서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체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한지, 자기가 공부를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공부할 마음이 아니니까 게임 잠깐 하고 공부하겠다는데 왜 잠시도 못기다리고 안달복달인지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체 왜 그렇게 공부하기를 싫어하는지, 지금 공부를 잘해두면 평생 유익한데, 왜 한사코 놀려고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결국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수준과 관계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먹는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다고 했고, 뱀은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둘 중에 누구 말을 믿어야 합니까? 대체 무슨 정신으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뱀이 하는 얘기를 듣는단 말입니까? 아담, 하와는 대체 IQ가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그런데도 아담, 하와가 왜 선악과를 먹었는지는 궁금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지만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요? 보나마나 뻔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자와 한통속이기 때문입니다.

강학종by 강학종 목사

강학종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지금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하늘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성경에 불신자를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는지 목사님께 물었더니

Q. 목사님, 친구와 신앙에 대해 말하는 중 너는 너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에게 사로잡혀 산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어이상실이라며 엄청 분개하네요. 저도 교회에서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정말 성경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마귀에 사로잡혀 산다고 말씀하고 있나요? 궁금합니다.


A. 이런 정말 큰 일 날뻔 했네요. 두 분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성경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불신자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말씀드릴께요. 성경은 불신자의 모습을 크게 6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요8:44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며,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칭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두고 돌직구를 날립니다.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마귀의 자식들은 마귀의 말을 듣고 따릅니다. 예전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믿고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게 되죠. 그 이후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하고, 마귀의 말에는 솔깃해서 더 잘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답니다.

둘째, 엡2:2에 보면 세상 풍속을 좇고 종노릇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셋째,   엡2:3에 불신자의 마음 상태는늘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넷째, 벧후2:14 저주의 자식이라고까지 합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다섯째, 사8:22 죄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 다음에 땅을 내려다 보겠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뿐일 것이니, 마침내 그들은 짙은 흑암 속에 떨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여섯째, 요12:48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내가 말한 바로 이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위 다섯가지 내용을 좀 더 세분해서 설명하거나 보충해서 설명하는 정도입니다. 불신자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런 불신자들이었고, 하나님께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운좋게도 예수님을 믿고, 이런 심판받고 멸망받을 죄인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을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행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제가 예수 믿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마치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운이 좋아서 그리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마귀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는 왜 성경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며, 진노의 자식이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지를 차근히 설명해주면서 그렇다고 이해를 구해야지, 대놓고 넌 마귀의 자식이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이 할 일을 대신하는 월권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 이렇게 말합니다. “너 자신을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아라. 대부분 사람들은 악한 일을 저지르거나, 미워하거나, 죄를 짓는 것은 참 쉽게 한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한다. 하지만 선한 일을 하거나, 용서하거나, 의로운 일을 할려면 정말 몇 번이고 다짐하고, 용기를 내어야 겨우 할까말까 하지 않냐?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죄인이라고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벌 받는 것은 당연하듯이,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 죄값을 치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너도 나도 마찬가지다. “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그 친구와 잘 화해하고 앞으로 좋은 우정 나누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목사님 질문있어요. 사람은 하나님의 소모품인가요?

Q.목사님 질문있어요.

목사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잖아요? 그럼 우리가 필요해서 물건을 만들 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필요해서 만든 물건이라는 뜻인가요? 어떤 분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하던데 정말인가요? 궁금합니다. 목사님의 성실한 답변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코이네 박동진 목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숙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질문하신 분처럼 그렇게 의문을 갖고 질문을 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핵심을 찌르고 있네요.

하나님은 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그런데 이 질문을 할 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불편한 진실이 있는 것이죠.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 인간은 이미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단 인간이 우선이고 그 나머지는 뒤에 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이 잘되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고 되고, 주인이 되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이 듭니다. 인간이 수단이 되고, 인간은 단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죠. 자존심이 상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질문은 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이지만 그 질문의 속뜻을 잘 살펴보면 “왜 하나님은 나(인간) 잘되라고 하는 세상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세상을 만드셨을까? 나는 그 세상 속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인가?” 라는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만든 사람 마음대로라는 생각이죠. 정말 만든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창조품, 그리고 그것을 보고 흠족히 여기며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창조자 보다는 그저 필요한 물건을 아무 생각없이 공장에서 척척 찍어내는 제조자와 제품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일단 소모품을 생각하게 되죠.

천사구름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만드셨을까? 우린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소모품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답을 내리게 된다면 정말 씁쓸하죠? 그저 쓰다가 버려질 인생, 이렇게 내가 가치 없는 인간일까? 이런 식으로 자신을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만든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 차라리 반기를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입니다.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그런 사상적 맥락 속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에게 함몰된 인간 존재를 찾고, 그 가치를 회복하자는 것이죠.

하지만 창세기에 우리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결코 소모품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재미삼아 만든 것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시편8편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편8:3-9)

저는 사진 찍는 취미가 있습니다. 한번씩 작품활동을 하는데, 찍어 온 사진을 컴퓨터로 저장해서 볼 때 어떤 때는 아주 흐뭇합니다. 이 사진 한 장 건지고자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온 정성을 쏟았던 것을 생각할 땐 더욱 흐뭇해지죠. 그래서 그 사진을 리사이징하고, 사진 위에 제 이니셜을 넣어서 블로그나 사진동호회나 제 사진을 자랑할 수 있는 곳에 다 올립니다.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제 마음 같아서 찬사를 보내오면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사진대전 같은데 출품도 해보구요, 그리고 당선이 되면 더 기쁘죠. 나중에는 개인작품전을 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랑스럽거든요.

하나님도 이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 인간을 만드셨을 때 그런 자부심과 즐거움이 가득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드신 후에 스스로 “좋다”라고 흐뭇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시고 난 뒤에는 그 자부심이 절정에 달했죠. 그래서 “Very Good”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성경은 이를 “심히 좋다”라고 번역하였죠. 경상도 말로는 “대끼리 좋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땅에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쏟았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저 우리가 한낱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그 아들의 목숨으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이며, 걸작품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우리 스스로 그 인생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는 바로 그 잃어버린 소중한 생명을 찾게 하고, 우리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떠나 제 마음대로 살면서 죽어가는 인생으로 살지말고, 주님 안에서 자신이 지어진 그 뜻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함…예수 안에서 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이유입니다. 성실한 답변이 되었나요?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