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목회 -증인의 삶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배우자, 동역자, 이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구세주 예수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를 만나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이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왕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신 선지자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제사장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주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세운 사명자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그의 사역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충성된 제자 디모데를 만난 바울은 그와 함께 아시아 선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 바울은 드로아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로써 바울은 자신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결단은 세계 선교의 전진 기지가 되었고, 그가 마게도냐에서 처음 세운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를 향해 쓴 서신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바울처럼 목회하는 삶입니다.
1. 주님은 당신의 심장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건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십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사건을 통해 믿음의 기초를 놓았고, 모세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 율법의 기초를 놓았으며,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해 사도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영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전에 유대교적 율법의 심장이 산산이 부서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심장으로 이식되어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된 그는 곧바로 회당에 나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이식된 바울은 이전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 그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복음으로 이식된 예수의 심장은 육적인 혈통, 세속적인 학문, 바리새인으로서의 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지식이었습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지식, 재물, 명예, 권세에 있지 않고 넓은 마음, 즉 도량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품어주는 여유, 요셉이 형들의 죄를 덮어주는 진실함, 다윗이 사울을 원수로 갚지 않는 정직함이 바로 위대함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가슴에 품으셨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예수의 심장을 소유했기에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했던 바울처럼, 우리도 마음을 넓혀 예수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2. 주님은 자신의 양무리를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역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목장에서 영혼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다윗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재능, 지식, 은사, 믿음의 한계를 아시고 정확하게 말씀의 줄로 재어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양에게 목자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목자가 양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양은 언제든 길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항상 양떼에게 관심을 가지고 앞서서 길을 인도하십니다. 어린 시절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치며 이리와 사자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던 참 목자였습니다. 그의 신실함은 블레셋의 골리앗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용기로 이어졌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목장의 왕권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맡은 작은 사역에 신실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기 위해 구별하신 그릇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주님의 교회를 세웠고, 사역 현장을 떠날 때마다 성도들을 위한 기도 수첩을 만들어 항상 그들을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언제나 영적으로 교통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잠언 27장 23절에도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이처럼 양무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3. 주님은 우리가 자신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렸을 때나, 보디발의 집에서나, 옥중에서나, 총리가 되었을 때나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 앞에 신실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방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믿음을 지켰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 군대를 동원해 주십니다.
세상에서도 귀한 보배는 숨겨져 있고, 진실은 오래 묻혀 있을수록 더 밝게 빛나는 법입니다. 불의한 변론이나 모략 앞에서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에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라고 고백한 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인간의 변명은 오히려 스스로가 거짓됨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 자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입술로 증언하기보다는 행동과 삶으로 보여주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기도가 바울의 인생을 바꾸고, 나아가 인류 역사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이 맡기신 양무리를 살피며, 하나님을 우리의 증인으로 삼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