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것이 예수님 마음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정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그런데 가장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이렇게 가슴 아픈 현실을 두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이를 이해하여 국민과 실종자 유가족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일들입니다. 이에 대한 장로회신학교 교수이신 손은실 목사님의 글입니다.


손은실교수

정 아무개가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과 장관에게 거칠게 항의한 것을 두고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표현하여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 분노하는 분들, 그들의 표현 방식이 거칠다고 정씨는 미개하다고 말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눈에는 성전에서 제사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꾼들의 탁자를 둘러 엎어시고, 그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호통을 치셨던 분, 예수도 미개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분의 거친 태도 때문에.

그런데 현재 범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반응에 대해 정씨와는 다른 각도에서, 어쩌면 스토아철학의 관점에서 뭔가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외부의 사건에서 정신이 영향을 받지 않는 무정념(apatheia), 혹은 평정(ataraxia)을 추구했다. 지금 이런 철학적 태도에 대해 논할 여유가 없다. 각설하고,

성서는 이와 달리 ‘공감’ 능력을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로마서 12:15).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분노해야 할 대상에 대해 거침없이 분노하시고,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슬피 우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아픔과 기쁨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즉자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애쓰면서. 더 나아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 1)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함께 우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불의한 것들을 바로 잡고 미래의 희망을 보여 줄 때 비로소 희생자 가족들과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조금씩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원하지 않게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한 마디만 더…

지금까지 한 사람이라도 살려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많은 분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계실 것이다. “그 분은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까?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그 분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과연 그 분은 응답하시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까?

성령이여, 간구합니다. 닫힌 우리의 귀를 열어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어두운 우리의 눈을 밝혀 진리를 보게 하소서! 주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모든 희생자들과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물속에 갇혀 있는 190명이 한 시라도 빨리 구조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 시간도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에 헌신하는 분들을 지켜 주소서!

by장로회신학대학교 손은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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