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오경 그리고 명칭에 관한 이해
창세기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창세기가 구약성경 전체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이며, 동시에 오경(五經)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포함하는 구약의 첫 다섯 권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경이라는 표현은 본래 오리겐이라는 초기 교회 교부(敎父)가 처음으로 사용한 헬라어 ‘펜타튜코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단어는 ‘다섯’을 뜻하는 ‘펜타’와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상자’를 뜻하는 ‘튜코스’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로, 나중에는 이 말이 다섯 개의 두루마리 자체를 뜻하는 표현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은 처음에는 다섯 묶음의 두루마리로 나뉘어 보관되었다고 합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히브리 성경에서는 ‘토라’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토라’는 ‘야라’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가르침, 교훈, 지시, 방향제시’ 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나아갈 길에 대한 하나님의 방향 제시를 포함하는 책들로 여겨졌습니다.
주전 3세기경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구약성경에서는 ‘토라’를 ‘노모스’라는 헬라어로 옮기면서, 토라는 율법 또는 율법서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번역은 오경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법률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오경의 중심 내용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각종 언약법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세기는 율법(서)이라는 개념과 거의 무관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경을 율법(서)라고 부르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은 각 책의 첫 단어를 따서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창세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오경의 첫 번째 책을 1장 1절의 첫 단어를 취하여 ‘브레쉬트’라고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태초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70인역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명칭을 ‘게네시스’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이 책의 기본 구조가 2장 4절, 5장 1절 등에 있는 히브리어 ‘돌레도트'(족보)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네세오스’나 ‘게네시스’는 발생, 기원, 근원, 원천, 출생, 혈통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70인역이 이 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우리말 성경 역시 창세기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은 오경의 첫 번째 책이 세상의 창조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한글판 번역 성경들도 창세기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에, 이 글에서도 창세기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