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묵시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은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교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종말”이다. 대개 우리는 종말을 멸망과 파괴로 생각하고, 구원이란 그것을 피해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은 우리가 타락했으니까, 하나님이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것, 예를 들면 밥상 앞에서 손자들이 까불고 아들 부부는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그러니까, 참다 못해 밥상을 둘러 엎으시는 화난 할아버지의 얼굴, 그게 종말의 이미지이다. 그러면, 할아버지의 분노를 촉발하지 않게 조용 조용히 밥 먹는게 신앙생활이 된다!
성경의 역사관은 종말을 완성으로 본다. 죄로 인해 깨어지고 타락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이며, 언젠가는 그 역사가 절정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성경적 종말론의 요체이다. “하나님의 승리”라는 역사…적 관점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종말적 사건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묵시”는 무엇인가? 이 종말이 지금의 세상과는 아주 다른, 현세와는 단절된 모습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묵시적 사고이다. 묵시 문헌은 종말에 관한 진리를 담기 위한 문학적 도구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종말이 상위 개념이고, 묵시는 하위 개념이다. 묵시에서 파괴로서의 종말, 이 세상과의 단절로서의 종말이 강조되는데, 파괴로서의 종말은 상위 개념인 완성으로서의 종말 아래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단절을 완성보다 더 강조하는 사고는 이 땅에서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현실도피적 신학이 될 수 밖에 없다.
종말은 심판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의 귀결점이다. 심판은 이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다. 그 역사는 이미 이 세상 속에서 시작되어 싹이 나서 자라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사는 것은 그 사랑의 역사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이제 곧 무너질 집을 새단장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증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종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이렇게 끝맺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박영호 목사님은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한일장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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