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정부의 고위관료였고, 영혼의 구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물었고,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물음과 답변에 조금의 간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원을 물었더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대답하셨다. 즉 구원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지만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에 대해 니고데모는 육체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린 쉽게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달라서 이런 식의 생각을 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에게 이는 죄인 된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영혼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외면으로 변화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이 말은 세례와 성령의 임재가 새 사람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 또한 그 마음이 예전에 더렵혀진 죄인의 자아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런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으며,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씀한다.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위해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첫 시작이다. 그 변화의 시작을 하면 우리의 내면은 치열한 영적인 전쟁터가 된다.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려는 성령님과 예전의 정욕과 죄의 욕심을 따라 살려는 옛 자아가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갈등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하나님 편에 서야한다. 때때로 실패하여 다시 옛 습관 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이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번번이 실패하는 우리를 끝까지 용납하시고, 우리가 마침내 승리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신다. 우리는 그런 전쟁을 평생 치루지만, 실패하고 넘어진 수만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백성으로 변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는 선택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음도 느낄 것이다. 처음 전쟁을 치를 때에는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정말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은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죄를 짓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죄짓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죄 짓는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한 인생으로 보인다면, 당신은 거듭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