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잘하는 청소년 내면세계도 더욱 건강해져

교회생활에 나름 충실한 아이들의 내면세계는 어떨까? 한국성결신문과 서산교회(담임 이기용)가 전국 중고등부 학생 14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이번 조사에 임한 학생들 중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고 응답한 아이들이 89.2%엿고, 5년 이상 교회에 출석한 학생들 비율도 76%에 달했다. 다시 말하면 이번 조사에 응한 아이들 대부분이 그래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꽤 충실히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아이들에게 우울증에 관한 질문을 하자 조사 대상 학생들 가운데 19.7%가 “자주 우울하다”라고 대답했으며, “가끔 우울하다”가 38.7%였다. 절반이 넘는 58.8%가 평소 자주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반에 육박하는 41.8%의 학생이 “자살충동을 느낀 적 있다”고 대답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교회 청소년들 역시 우울증, 자살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 있다. 아이들의 신앙에 대한 태도의 정도에 따라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느끼는 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신앙이 (삶에 있어) 매우 많이 중요하다”고 54.1%가 대답했는데, 이들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라고 대답한 비율이 63.3%였고, 우울함과 슬픔의 감정에 대해 “거의 없다”라고 대답한 비율이 42.4%였다.

반면 신앙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1.5%) 혹은 중요하지 않다(0.5%)라고 대답한 학생 가운데 우울과 슬픔을 자주(39.3%) 혹은 매우 자주(34.3%) 느끼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출경험에 대해서도 신앙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신앙의 중요성을 모르는 학생들보다 비율이 덜 높았다. 또 인정 받고 사랑 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는 학생들일 수록 덜 우울한 감정에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흡연과 음주운전, 음란물 시청 등도 신앙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혀 현격히 낮은 응답을 보였다.

신앙이 좋을 수록 좋지 못한 생각과 품행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로 신앙이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내면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BY 코이네뉴스

연륜과 지혜를 존중하는 이스라엘의 노인공경법

이스라엘 텔레비젼을 보면 나이 많은 앵커가 많다.
나이많은 애널리스트가, 나이 많은 리포터가 많다.
한 분야의 연륜이 발휘되는 나라다.
앵커를 75세까지 하다보니 미스터 TV란 별명까지 붙은 분이 얼마전에 은퇴했다.
유명한 정치 평론가가 한명있다. 채널 1과 채널2에서 경쟁적으로 모신다.
그의 얼굴의 절반이 화상을 입었고 입의 일부가 화상이라 말할 때 부자연스럽다.
(순간 든 생각은 이런분이 한국TV에서도 저렇게 출연할 수 있을까?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스라엘 국민에서 정치현상을 제대로 짚어준다.

매일 나가는 스포츠센타에 아주 키작은 난쟁이 트레이너가 한명있다.
그는 회원들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자세를 교정해주고 조언을 해준다.
회원들도 자연스럽고 그도 당당하다.
피스갓제브 쇼핑몰에서 만났는데 우리동네사람인 것을 최근에 알았다.
외모보다 그의 전문성을 존중해주고 나누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마케팅에 이용하지 않는 나라.
또한 인생을 소모품처럼 생각해 적정 나이가 되면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져야하는 풍조는 사회적 손실이다. 깊이 있고 품위있는 사회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이스라엘에는 노인을 보면 무조건 인사를 하거나 버스에서 벌떡일어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젊은 것이 예의도 없다라는 동방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어하고 반드시 양보해야 할 노약자라면 반드시 도와준다.

유대인에게는 이런 교훈이 있다.

“노인은 자신이 젊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자신이 늙는 다는 것을 모른다”

유대인들은 노인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울 줄 안다.
그것을 집대성 해놓은 것이 ‘탈무드’다.

연륜과 지혜는 나이를 들수록 더욱 깊이 쌓인다.
이를 존중하고 알아보지 못하면 그런 사회는 세대가 단절되고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되어있다.

 

이강근목사by 이강근 목사

이강근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 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공부했으며,  현재 유대학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한인회장을 지냈습니다.

미국 대법원 공공기관에서 기도하는 것 합헌 결정

 美 연방대법원, “공공기관에서의 기도는 합헌” 판결

 2014.05.07 크리스천투데이의 기사를 인용합니다.

공공기관에서 각종 모임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시각) 판결했다. 기도 자체가 합헌일 뿐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특정 종교에 편향돼 있더라도 무방하다고도 했다. 1983년 ‘마쉬 대 챔버스 소송’(Marsh v. Chambers) 이후 30여년 만의 ‘그리스 대 갤로웨이’(Greece v. Galloway) 소송에서도 연방대법원이 기도할 권리를 보장하면서, 이 문제로 인해 몸살을 앓던 공공기관들이 환호하고 있다.

뉴욕 주 그리스 시는 타운홀 미팅 때마다 기도해 왔는데, 이에 대해 유대인인 수잔 갤로웨이 씨와 무신론자인 린다 스테픈스 씨가 “기독교 편향적”이라며 위헌 소송을 냈다. 갤로웨이 측은 기도 인도자 다수가 크리스천이며 기도 끝에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종교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시 외에도 미국 다수 지역에서 공공기관의 기도에 대한 갈등이 진행되던 터라, 이 소송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또 마쉬 대 챔버스 소송에서 “의회 개회 시 기도하는 목사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며, 이는 미국의 역사적 전통”라고 판결했던 연방대법원이, 이번에 어떻게 판결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종교 자유 역사와 현주소도 점검할 기회로 인식됐다.

이 소송은 “기도할 권리” 그 자체보다는 “기독교적인 기도를 금지시키겠다”는 의도가 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결에서 케네디 대법관은 기도가 반드시 여러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도 경계했다. 그는 “기도가 중립적(nonsectarian)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 기도를 주관하는 의회나 이 문제를 다루는 법정으로 하여금 종교적 발언을 검열하고 심의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즉, 이번 판결은 공공기관이나 정부기관이 단순히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적 기도를 하는 것도 보장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이 소송에 대해 뉴욕지방법원은 시 정부의 손을 들어 줬으나, 뉴욕 제2항소법원은 만장일치로 판결을 뒤집었다. 현재 미국 대다수 지역에서는 “기도가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지 않다면 불법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상태지만, 무신론자들의 무차별적 소송과 그 소송 비용을 두려워한 일부 지역에서는 기도하던 전통을 자발적으로 폐지하고 있었다.

이 소송에서 예상대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새무얼 알리토, 안토닌 스칼리아, 클래렌스 토마스 대법관 등 4명의 보수적 대법관이 찬성표를, 스테픈 브레이어, 엘리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이어,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 등 4명의 진보적 대법관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스윙보터 역할을 하는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이 찬성표를 던지며 5대 4로 판결이 났다.

케네디 대법관은 “그리스 시의 타운홀 미팅에서 기도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마쉬 대 챔버스 소송에서도 의회의 기도가 정교분리 조항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연방대법원은 판결했다. 기도는 사실 종교적이긴 하지만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헌법이 구성될 때부터 의회는 기도해 왔고, 이것은 의원들이 보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사소한 차이를 초월하며 정의와 평화라는 공동의 열망을 표현하게끔 했다”고 판시했다.

이제 미국에서 기도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군요. 반가운 일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종교이든 그 형태를 떠나 기도하는 대상을 위한 마음이 담겨 있다. 상대를 사랑하고 아끼며,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 그것은 기도’ 라고 하였다.

by 코이네뉴스

바쁜 현대인들 성경앱 개발로 성경 더 많이 읽을 수있어

영국복음주의연맹이 최근(2014년) 현지 복음주의 교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알 수 있다.

1. 성경읽기와 기도

응답자들의 87%가 ‘기독교인이라면 모두 매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정해서 지켜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성경 읽기와 기도를 정기적으로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90%에 달했으다. 하지만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읽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50%, ‘매일 기도한다’고 밝힌 이들은 31%였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성경을 찾아보거나 기도를 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18% 가량이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42%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등의 신앙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2. 교회 활동

복음주의 교인들의 90%는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에 유익하다’고 믿고 있으며, 10%만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93%가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거의 없거나 한 번도 없다’고 답했으며, 70%는 ‘성경 내용은 오늘날 나의 삶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 말씀을 삶에 온전히 적용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답한 교인들의 수도 82%나 달했다.

3.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

이번 설문의 응답자 중 60%가 매일 성경을 보거나 기도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 60%의 교인들은 바쁜 삶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스마트 기기 등으로 성경, 묵상, 기도문 등 다양한 기독교 컨텐츠를 제공하는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이동 중에 이용한다고 이들은 밝혔다. 특히 성경 앱이 나온 뒤로부터 그 전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기술 발전 덕택에 하나님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응답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4. 설문조사에 대한 평가

이번 조사를 이끈 영국복음연맹의 데이브 랜드럼 목사는 “대다수의 교인들이 매일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며, 이러한 결과는 교회들로 하여금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날 교인들의 필요를 깨닫게 하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영국복음연맹 총무인 스티브 클리포드 목사는 한편, “이 설문조사는 교회들에 생각할 주제를 제시하기 위해 실시됐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오늘날 다양한 수준의 신앙을 갖고 있는 교인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성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바쁜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정해서 지킬 수 있게 할 수 있느냐는 문제 역시 교회 지도자들이 고민해 봐야 할 주제다”고 전했다.

 by 코이네뉴스

세월호 농성 이제 끝내자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1. ‘4.16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중인 방인성 목사님

지난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촘촘한 일과로 인해 찾을 수 없었던 광화문 단식장을 오늘은 기필코 가리라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올해 환갑을 맞으신 방인성 목사님께서 유가족을 대신해서 40일 금식을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염려가 되어 꼭 찾아가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계속 릴레이 단식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만류하시는 과정에서 금식을 시작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가장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탄원하는 정의를 실현하시기 위해 금식을 결단하신 방목사님의 모습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제한적 자기희생 정신, 자비의 영성, 그리고 타인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시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이 글을 쓴 다음에 네이버에 목사님 성함을 쳤다가 50세에 신장을 기증하셨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주님께서 방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 주시기를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단식을 끝낸 방인성 목사
세월호특별법 제정위해 유가족 위해 단식하신 방인성목사

방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방목사님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무조건 40일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셨다. 그리고 오늘 방목사님 옆에서 광화문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24시간 넘게 금식하며 자리를 지키신 양희송 대표님과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감사했다.

그런데 단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처음부터 나는 단식보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쩍도 않는 대통령과 여당을 움직일 수 있는 돌파구, 그것이 무엇일까? 정녕 그것을 찾을 수 있기를!

2. “세월호 농성, 이제 끝냅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위의 문구를 쓴 종이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사진을 찍어 ‘작은 용기’ 캠페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연세대 김정호 교수. 이 분의 행태에 대해서는 같은 대학 출신이신 김응교 교수님이 이미 적절한 지적을 하셨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오늘 나는 오프라인에서 두 명이나 만났다. 두 분 모두 택시 기사였다. 택시를 두 번이나 탄 날. 나는 두 분에게 왜 끝내야 하는지 여쭤보았다. 두 분은 거의 똑 같은 대답을 하셨다. “이제 경제를 살려야 하지 않는가? 진상조사는 검경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유가족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하는가? 책임질 사람은 선주와 해운업계 비리 연루자가 아닌가? 그런데 왜 대통령에게 책임지라고 하는가?”

이 분들은 유가족과 특별법 제정에 서명한 450만 이상의 국민이 요구하는 수사권 기소권의 의미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 이 부분의 오해를 풀어 드린 다음에 책임 소재는 단순히 해운업계 비루 연루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것을 허용한 윗선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정의 사회 건설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서민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나도 잘 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우리는 늘 먹고 살기 바빠서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부정부패의 양상을 뻔히 보면서도 못 본 채 내버려두고 지금까지 살아 왔다. 하지만 지금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자식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네 달을 훌쩍 넘긴 지금도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은 우리나라에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자신들의 모든 힘을 바치고 있는 정말 훌륭한 분들이다. 따라서 온 국민이 감사해야 하는 분이다. 대략 이런 말씀을 드렸다.

한 기사님은 내 말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평소 자신이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물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인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악행을 할 수 있는가가 그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은 예수를 믿는 민족이 아니고 배척한 민족이라는 것,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자신의 궁금증을 풀게 된 기사님은 너무나 좋아하며 내가 고척교회 앞에 세워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오늘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주일 되세요”라고 인사했다. 다른 한 기사님은 단 거리를 함께 가게 되어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위의 내 답변을 듣고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였다. 그래서 내 생각을 다시 말하니까 자신은 무식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며 “세월호 그만 해야 합니다”라던 자신의 주장에서 아주 조금은 물러서는 자세를 보여 주셨다. 아무튼 두 분 모두 배움에 필요한 덕목인 유순함을 가진 시민들이셨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나는 강의실 밖에서까지 강의를 연장하게 된 것인지…

3.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아첨하고 돈 버는데 골몰하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신경 쓰느라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고 그들을 잊었습니다.”

프란치스코 로마주교님은 자신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형화재로 2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크로마뇽 대참사 5주기 미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5년이 지난 다음에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세월호 참사 네 달을 넘기고 아직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세월호 이제 그만 하세요” 너무 한 것 아닌가요?

로마 주교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지요.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세월호 이제 그만 얘기합시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 혹시 내 귀가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닫혀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눈은 그들의 고통을 보지 못할 만큼 먼 것이 아닌지 잠잠히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by 손은실 목사

서슴없이 질문하고 답변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문화

한국군대와 이스라엘군대

 현재 한국사회는 윤일병 사건 이후 군대내의 병영문제로 혼란스럽다. 특히 군입대를 앞둔 아들을 둔 부모는 더욱 불안하다. 이 와중에 강한군대를 유지하면서도 병영생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주목받고 있다.  강한 군대의 조건이 강한 군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군작전중에는 엄격한 명령체계가 유지되면서도, 평상시에는 선임과 후임병, 장교와 사병간의 자유로운 병영생활이 가능할까? 이스라엘은 가능하다.

이스라엘여군_PX

훈련병 퇴소식을 가보았다.  훈련소장이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훈련병퇴소식을 하고있었다. 곧 자대배치 받는다.  훈시를 끝낸 훈련소장이 일일이 훈련병들을 돌며 악수를 하고 격려를 한다. 훈련병들은 열중쉬어를 했지만 편안한 자세다. 왼쪽발을 앞으로 내고 약깐 짝발로 서있다. 훈련소장이 6주간 훈련에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린다. 훈련병이 소장님 그래도 참을 만 했습니다 하면서 훈련소장의 어깨를 툭친다.

자대배치를 받은 사병들은 전투시에는 반드시 서로간의 계급을 부르고 이름을 부른다. 명령 지휘권자와 명령을 하달받은 사병이 누군인가를 밝히며 상호 명령계통을 확인하며 소통한다. 그러나 작전과 훈련이 끝나면 계급호칭은 없다. 바로 이름을 부른다. 상급자는 하급자의 자상한 선배로 대화로 시작되고 어려움을 묻고 상담하는 친구처럼 된다.

사병은 선임사병이나 장교에게 서슴없이 질문하고 답변한다. 이것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국방장관이나 군통수권자인 수상이 현장순방을 해도 마찬가지다.  질문에는 예외가 없다. 그 질문을 감히 사병이…라는 느낌이 없다.

수년전 한국의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전례없는 일로 기록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다시말해 폼잡는 장면이 거이 없다.  며칠 전 이스라엘군대의 소위 엘리트부대인 8200부대소속 43명이 비인간적인 명령에 불복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상관에게 쪼인트도 당하지 않았고 바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지 않았다.

한국은 현재 윤일병사건의 재판이 다시 시작되면서 군병영문화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이 폭로수준이다. 경악할 수준이지만 군대생활을 했던 우리 모두는 터질게 터졌다는 끄떡임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였거나 지켜본자였거나 가해쟈였거나 셋중에 하나다.

자 이스라엘의 다양한 군관계자나 담당자들에게 묻는다.
“강한군대를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병영생활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가?”

이들의 공통적인 답변 중에 하나가 문화란다.  군대내의 시스템만의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이미 군에 입대하기 전이나 후에 형성된 이스라엘의 문화란다.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은 이스라엘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의 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군대의 문제는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문화의 일부가 군에서 나타났을 뿐이다. 이런 문제는 직장내의 문화에도 있고, 공무원 사회내에서도 존재하고 있고, 교육계에도 있는 사회구석구석에 만연된 우리 문화이다. 한국군대문제는 우리사회문화의 고질적인 것이 군대 내에서 보다 자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 잘못된 군대 문화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잠식해왔는지.. 우리사회가 품고 있는 이 야만적인 문화, 이제 모두가 함께 자성해봐야 될 문제다.

이강근목사by 이강근 목사

이강근 목사는 장신대를 나와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정칙학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재이스라엘한인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유대학연구소장이다.

노르웨이 목조 양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작은 교회

저희 가족은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교회당들을 가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여름방학 마지막 주에 위스칸신주의 도어 카운티 갔다가, 마지막날 집으로 오는 길에 한 예배당을 찾았습니다. 80년 전 쯤 전에 지은, 12 세기에 노르웨이 사람들이 짓던 양식 그대로, 나무를 손으로 깎아지은 예배당이었습니다.뒤로는 한적한 숲이고 앞으로는 미시간 호수가 탁 트인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예배당 앞 벤치에 아저씨 한 분이 유니폼 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들어가 봐도 되냐고 물어 보니까, 친절하게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앉아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안내를 해 주는 것입니다. 들어가 보니, 3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 여섯 개 놓인, 그렇지만 예배당으로서 갖출 것 다 갖춘 곳이었습니다.

광대한 숲 속에 놓인 극소의 예배당은 우리의 영성이라는 것이 원래 한이 없이 큰 것을 아주 조그마한 곳에 담는, 그러나 정성을 다해서 담아내는 것이라는 유비로 다가왔습니다.

도어카운키 교회강대상 바로 밑에 밧줄이 하나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밖에 나와서 물어 보니, 종치는 스트링이라고 하더군요. 제 질문에서 그런 바램을 읽었는지, 쳐봐도 된다고 하네요. 들어가서 종을 치는데, 이게 상당히 무거워서 몸무게를 실어서 매달리다시피해야 되는 것이네요. 댕그렁 댕그렁…. 손 맛을 보았지요.나와서 조금 가다가 선 글래스를 두고 온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까 흘려 들은 말을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이 관리책임 기관에서 나왔는데, 현지 관리인을 잠깐 만나러 와서 기다리고 중이었습니다. 이 분이 약속 시간에 먼저 와서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우리가 거기 도착했던 거죠. 우리는 무턱대고 지도만 보고 갔는데, 알고 보니 이 곳은 일 주일에 두 번 밖에 문을 열지 않는, 그것도 투어하려면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돌아 나오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아내가 “천사같애!” 했습니다. “아냐… 사람인데…” 하다, 천사인지, 사람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 스스로는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도움의 손길을 입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이 열어주신 사건으로 해석하고 그 여운을 간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고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w박영호목사이 날 주신 깨달음을 따라 인생 발걸음을 내디뎌 보려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by 박영호 목사

사도행전14:3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도행전 14장 3절 ‘자기 은혜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이영표 간증

사도행전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이라는 곳에서 전도하는 모습을 두고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은혜’, 헬라어로 “로고테스 카리토스 아우투”라고 표현되는 이 자기 은혜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헬라어를 직역해보면  은혜–나에 대한 은혜입니다. 이를 조금 의역을 하자면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3절, 15장 15절, 갈라디아서 2장 9절, 에베소서 3장 7절 등 여러 곳에서 같은 말씀을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라고.

은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주의 은혜’라는 말이 있고, 문자 그대로 ‘은혜’라는 말도 씁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은혜도 여러 가지요, 그 중에서도 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은혜가 따로 있습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은혜에 대해서 간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사도 바울은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은혜의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울이 남다른 명예를 가진 사람도 아니요, 과거가 좋은 사람도 아니요, 권세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적 권위’라고 합니다. 그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같이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있을 때에만 남에게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요 자격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그 때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치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 하나만이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인 것처럼 모두를 사랑하신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만 사랑하시는 것 같다, 모든 되어지는 일이 다 나 때문이요, 나를 위해서 있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까? 바울은 은혜를 위해서 삽니다. 은혜만을 위해서 삽니다. 나에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by 곽선희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집 “교회의 권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여 경계선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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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의 세가지 유형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유형의 신앙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교회중심의 교회생활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세상 < 나 교회(하나님) >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변화산상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내려가자고 하신 것처럼 그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신앙이 더 성장할 수 없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은 아니다.

둘째 유형은 세상중심의 교회생활이다.

 <세상 나 > 교회(하나님)

내 중심에 하나님보다는 늘 세상에 관심이 더 많다.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많고 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런 유형의 교회생활은 교회가 별로 재미가 없다. 교인들이 답답해보이고 조금은 갑갑해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어리석어보이기도 하고 한심하기까지 해 보인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너무도 재미있고 자유로운데 교회에 오면 하지말라는 것 투성이어서 교회만 오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셋째 유형이 경계선에 있는 교회생활이다.

 <세상 <나> 교회(하나님)>

여러분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을 믿으려면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세상속으로 죽어도 안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진짜 예수를 믿는 것은 그들과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어야 그게 진짜 예수쟁이이다.
건강한 신앙은 세상과 하나님나라사이 즉 경계선상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가장 어장이 풍부한 곳이 어디인줄 아는가?
민물의 멋진 냇가도 아니고 반대로 망망한 바다도 아니다. 가장 어장이 풍부한 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멋지게 살아야 할 장소는 교회안에서의 삶이 아니다. 반대로 세상도 아니다. 세상과 교회의 경계선상에서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짜 그릭스도인이 최고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비난을 받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선이다. 그 독선은 비그리스도인을 불신자라고 배척하는 것에 절정을 이룬다. 지금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안 믿는 비그리스도인지만 사실은 그 사람은 非그리스도인 아니라 未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풀고 섬겨야 한다. 누차 이야기했듯이 타종교인들에게는 더욱 더 예의를 갖추어서 대해주어야 한다.

고형진목사by고형진 목사

고형진목사는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여 현재 강남동산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이스라엘_하마스 휴전 후 하마스가 승리를 자축한 이유

이스라엘-하마스간 전쟁이 끝났습니다.
성지순례도 재개되기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참 이상해요. 다시 평온합니다. 깔깔대고 삶에 분주합니다.
죽은사람만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책선_이스라엘

그렇게 공격당한 가자시민도 86%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로켓공격을 지지했습니다.하마스의 지지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지금당장 선거가 이루어지면 61%의 팔레스타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온건성향의 압바스의 파타당은 31%에 머물러있습니다. 2006년 하마스의 선거대승보다 높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적인 주인은 하마스입니다.
휴전직후 하마스가 승리를 자축한 것이 이런이유입니다. 하마스는 승리했습니다.

늘 그렇듯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승리한 것 같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한듯합니다.
내홍이깊습니다. 때려부순 것 외에 뿌리뽑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반이스라엘정서가 그 어느때보다도 강합니다.
휴전의압박감에 끝내 하마스의 무장해제를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가자지구로 온갖물자가 쏟아져들어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차고넘칩니다.
물론 가자의 형편이 금새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제제와 압박으로 고통이 큽니다.

그러나 세계가 나서서 계속 회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가려져있습니다. 정치적인 투쟁만 있을 뿐입니다.
반하마스 보도를 일삼았던 언론인들은 전후를 취재하기 위해 가자지구에 들어가기를 꺼려합니다. 혹시 보복이 있지 않을까해서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의 소리로 반이스라엘 보도를 일삼았던 언론인들은 이스라엘우파의 위협으로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녀야할 정도로 위험합니다.

가자지구 언론에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여지지 않듯,
이스라엘언론도 가자지구의 참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국 국민은 상대방의 고통에 눈이멀어있습니다.
자국언론이 아닌 외신을 통해 간간이 볼 뿐입니다.
두 지역은 완전히 자기들의 세상만을 보고 살아갑니다.

하마스는 하마스대로 다시 전력을 갖추어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3명의 살해보복으로 베들레헴남쪽 120만평의 토지를 몰수해 정착촌을 건설을 발표하는 등 강경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증오와 분노가 다시 쌓이기시작합니다.
하나의 땅을 놓고 두 민족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비운의 성지입니다.

by 이강근목사

이강근목사이강근 목사는 장신대를 나와 이스라엘  히브리대 정치학 Hebrew University Ph.D공부하였고, 현 이스라엘 한인회장, 유대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