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주요 구절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주요 구절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 더 읽기

교육목회란 무엇인가?

교육목회란 무엇인가?

교육목회의 필요성과 의미  시대와 복음은 우리들의 교회에 교육목회의 쇄신을 명령적이요, 긴급한 일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교육목회(Educational Ministry)는 교회의 본질적인 차원과 교회의 목회적 기능 그리고 선교론적 입장에서 대두되는 현실적인 요청이다. “교육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 기능을 소홀히하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불가결의 요소를 잃어버린 교회인 것이다.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지 않는 교회나 성례가 … 더 읽기

미국사람들은 자신의 목숨값을 얼마로 계산할까?

사람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일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런 짓을 너무 쉽게 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대두되었던 것이 바로 비용 문제였고, 또 가장 쉬쉬하고 있는 것도 비용문제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비용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분노한다.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비용과 편익분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자동차를 이용하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게 죽는 사람이 미국에서 해마다 4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자동차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는커녕 제한속도도 낮추는 걸 꺼려한다.

석유파동이 일던 1974년 미국 의회는 전국적으로 제한속도를 시속 55마일(시속 90킬로정도)로 정했다. 이유는 에너지 절약이었지만, 속도를 낮춘 덕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줄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미국의회는 다시 그 제한을 풀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주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65마일로 상향조정하였다.

운전자들은 시간을 절약했지만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늘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비용, 편익분석을 이용해, 운전속도를 높여서 생기는 이익이 목숨이라는 비용을 들일 정도로 가치가 높은지 따져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경제학자 두 사람이 이 계산에 도전했다. 이들은 제한 속도를 높여 얻는 이익 하나가 직장 출퇴근 시간이 빨라지는 것이라고 보고, 절약되는 시간의 경제적 이익을 계산한 뒤에 (평균임금을 적용해 시간당 20달러로 계산) 그 이익을 추가로 발생한 사망자 수로 나누었다. 그러자 미국사람들은 운전 속도를 높이는 편의를 위해 사람 목숨의 가치를 사실상 1인당 154만달러로 계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은 시속 10마일을 더 빠르게 차를 몰 때 한 사람을 희생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었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WCC가 공산주의를 찬양 지원한다는 허구맹랑한 주장에 대해

본교단이 사이비성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다락방 소속의 교회 교인들이 조직한 ‘국민의 소리’는 ‘WCC 총회를 통해 나타난 결의와 정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통해 WCC가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며, 게릴라 단체를 지원했다는 등의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단체는 이 같은 내용들이 WCC가 지난 9차례 총회에서 발표한 각종 문서에 소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어 WCC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마치 ‘WCC가 공산주의의 앞잡이’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도록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가난과 불완전으로부터의 구원의 수단’은 완전한 날조>

먼저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은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열린 WCC 1차 총회에서 “제3분과 제4항 ‘공산주의는 가난과 불완전으로부터의 구원의 수단'”이라고 표기해 마치 이같은 결의가 있었던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WCC 1차 총회의 제3분과인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 중 4항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자본주의자의 수혜자인 기독교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 자본주의적 기득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음을 알고 있으며, 또 공산주의를 가난과 불안전으로부터의 구원수단이라고 보고 있는 세상임을 직시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1948년 당시에 전 세계 여러 국가들 중 공산주의를 가난과 불안전으로부터의 구원수단으로 보고 있는 세상도 있다는 것이지 WCC의 이념이 이렇다는 표현이 아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역대총회 종합보고서를 펴낸 장신대 이형기 은퇴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했다. 이 교수는 “그 부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현실에 대한 설명일 뿐이고, 공산주의가 가난과 불안전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나라들도 있다는 의미이지 , WCC가 공산주의를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영어 원문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 진다. 원문에는 “Christians who are beneficiaries of capitalism should try to see the world as it appears to many who know themselves excluded from its privileges and who see in communism a means of deliverance from poverty and insecurity.”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풀어보면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기독교인들'(Christians who are beneficiaries of capitalism)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주어이고, 뒤이어 그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세상에는 ‘스스로 특권에서 배제된 줄 알고 있는 많은 이들’과 ‘공산주의를 가난과 불안정으로 부터 구원해 줄 방편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반WCC 단체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들 중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린 WCC 2차 총회와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4차 총회 시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고 선언했다는 부분과 “공산혁명 과업을 교회가 본받아야 한다”는 내용은 총회 선언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특별히 문서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첨예한 냉전시대이던 1954년과 1968년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톤과 스웨덴 웁살라 한 복판에서 열린 WCC 총회에 모인 전 세계 기독교 대표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과 맞지 않는다.

<공산 게릴라를 지원했다?>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WCC 8차 총회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했던 발표를 인용해 “WCC가 게릴라 단체를 지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의 생트집 수준이다. 반WCC 단체들의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은 당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WCC가 지난 30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남부 아프리카의 여러 해방운동단체(공산게릴라)를 지원해 온 것에 대하여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고 이것이 WCC의 입장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1998년 12월 13일 총회장에서 했던 실제 연설 내용은 “When, thirty years ago, you initiated the programme to Combat Racism(PCR) and the Special Fund to support liberation movements, you showed that yours was not merely the charitable support of distant benefactors, but a joint struggle for shared aspirations”로, “30년 전 WCC가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인종차별) 해방운동에 특별 자금을 지원했을 때, WCC는 한낱 멀리 떨어진 지원단체가 하는 자선 지원의 수준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인종차별 종식에 대한) 열망을 공유했다”는 뜻이다. 만델라 대통령의 발언 어디에서도 공산 게릴라 단체를 지원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결국 WCC가 공산 게릴라 단체를 지원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WCC가 지원했던 전 세계의 단체들을 무작정 공산주의 단체라고 규정한 뒤 ‘WCC^공산주의’라는 거짓 등식을 창조해 비난을 해 온 셈이다.

‘세계교회협의회를 향한 비판의 근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반WCC 단체들의 허구성을 밝힌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는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PCR)이 조직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60년 남아공의 샤프빌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위 중이던 흑인 69명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1968년 4차 WCC 웁살라 총회의 개막 연설자로 내정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총회 개막 4개월 전 암살된다. 이런 배경에서 웁살라 총회는 ‘인종차별정책 반대 프로그램'(PCR)의 운영을 결정했다.”

이처럼 시대적인 요청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PCR이 왜 반대론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까. 남아공의 백인정부는 인종차별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반대조직을 테러지원 단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했던 전 세계의 수 많은 교단과 단체들이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지원했다. 이중에는 루터교 세계연맹과 영국교회협의회, 미국교회협의회, 미국연합장로교회 등이 포함되었으며, 당시 서독과 네덜란드,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WCC만 유독 인종차별정책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병준 교수는 논문에서 “남아공 정부가 ICCC(칼 매킨타이어가 설립한 반WCC 단체)의 칼 매킨타이어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WCC를 비난하도록 했다”면서, “실제로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WCC 5차 총회가 열렸을 때 매킨타이어는 지지자들과 함께 나이로비로 와 WCC를 사탄으로 몰아붙이고 아프리카 해방운동을 공산주의로 비난했으며, 심지어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옹호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논문에는 또, 케냐 나이로비 총회 때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던 샘 코비아 목사(WCC 6대 사무총장 역임)의 증언도 기록됐다. 샘 코비아 목사는 “당시 WCC는 인종차별 정책의 철폐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운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아공흑인교회들을 지원했는데, 이러한 교회들에 대한 지원을 남아공 백인 인종차별정부가 매도했다. 바로 WCC가 아프리카민족전선(ANC)의 무기구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한 것이다.

이는 남아공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았던 ICCC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WCC가 교회의 헌금으로 무기구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아주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며, WCC 총회를 방해하기 위해 케냐로 모였는데 결국 정부로 부터 추방을 당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2912호] 2013년 08월 22일 (목) 11:53:52 [조회수 : 553] 한국기독공보

 WCC 반대자들이 근자에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가 WCC가 다원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WCC가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 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 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 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WCC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랍 국가들처럼 다른 종교가 국교나 다수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두번째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이다.  세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는데(요1:1) 기독교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유 안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영 역시 오순절 이전부터 역사와 창조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다면 이것이 모든 종교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종교간의 대화 이면에는 이런 신학적 질문이 늘 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는 1961년 뉴델리 총회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선교대회가 발표한 ‘세계를 향한 부름'(The Call to the World)이란 성명서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신 생명의 빛이시다. 빛은 안 비추이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 간의 대화라기보다 선교선언이 아닌가?

 WCC가 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주로 인용되는 문서인 바아르(Baar)문서에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종교 간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신앙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WCC는 결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를 용인하지 않는다. 대화 지침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증거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에 임하라”고 거듭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를 다원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2912호] 2013년 08월 22일 (목) 11:53:52 [조회수 : 553]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이형기ㆍ박성원 교수의 WCC 바로알기 10

WCC 반대자들이 근자에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가 WCC가 다원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WCC가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 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 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 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WCC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랍 국가들처럼 다른 종교가 국교나 다수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두번째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이다.

세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는데(요1:1) 기독교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유 안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영 역시 오순절 이전부터 역사와 창조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다면 이것이 모든 종교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종교간의 대화 이면에는 이런 신학적 질문이 늘 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는 1961년 뉴델리 총회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선교대회가 발표한 ‘세계를 향한 부름'(The Call to the World)이란 성명서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신 생명의 빛이시다. 빛은 안 비추이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 간의 대화라기보다 선교선언이 아닌가?

WCC가 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주로 인용되는 문서인 바아르(Baar)문서에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종교 간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신앙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WCC는 결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를 용인하지 않는다. 대화 지침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증거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에 임하라”고 거듭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를 다원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서방국가와는 달리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종교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자기들 나름의 포교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에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서방세계나 이슬람 국가라면 이런 상황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아직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교가 되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불량 예수쟁이들을 양산할 공산이 크고, 또 교회의 배만 불려주어서 도리어 교회가 타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서방국가들이 보여준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타종교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혹 타종교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하기 보다, 예수님으로 타종교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을 그리스도로 물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그런 자신감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고, 믿음의 생활을 더욱 충실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현경 교수의 캔버라 총회주제 강연과 초혼제애 대해

정현경 교수의 캔버라 총회주제 강연에 대하여

 [2913호] 2013년 08월 30일 (금) 16:36:12 [조회수 : 1160]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이형기ㆍ박성원 교수의 WCC 바로알기 11.

WCC 캔버라 총회에서 행한 정현경 교수의 주제강연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WCC총회에서도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정교회는 아주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사건은 WCC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교회 대표의 주제발표가 정통 삼위일체의 성령에 대한 성찰에 집중한 반면 정 교수의 발표는 문화적 접근을 하였다. 정현경 교수는 초혼제 의식을 하면서 성경 속에 있는 인물과 인류역사 속에 부당하게 죽임당한 영들을 한 맺힌 영으로 보고 그들의 영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제발표의 본문에 해당하는 신학적 성찰에는 문제가 없다. “성령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계시며, 창조와 생명의 바람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영은 당신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교회를 해방적 공동체로 시작하신 바로 그 영이시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라고 지적하고 인간 중심주의, 이원론적 사고, 죽음의 문화에서 회개하고 생명중심주의, 상관성주의, 생명의 문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회개의 촉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아멘’하고 마쳤다.

정현경 교수의 주제발표 본말은 기독교 성령론의 이해를 따르고 있고 도전부분에는 성령의 역사를 물신주의(mammonism), 생태위기 등 인간과 지구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과 잘 연결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본문 서두에는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 맺힌 영혼을 부르는 목록의 끝에 예수님의 영도 열거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은 앞에 열거한 한 맺힌 영들과 동격이 아니다. 예수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의 희생과 죽음은 만물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내어주심’이므로 한 맺힌 영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정교회 쪽에서 “개인의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을 성령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이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무속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한 점이다. 사실 이 점은 WCC가 종교간 대화 지침서에서 이미 경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WCC는 ‘성경을 번역할 때 문화의 내용을 너무 차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문화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본질이 모호해 질 수 있음으로 주의하라’고 했다. 정현경 교수가 취한 무속초혼형식은 바로 이 주의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이런 선을 넘은 예가 많다. 예를 들면 성탄절은 이제는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지만 원래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고 로마 태양신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예수님이란 의미로 고대 기독교에서 채용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중국문화전통에서 부르던 ‘상제'(上帝)란 개념을 채용했고,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하나님을 부를 때 이슬람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 ‘알라'(Alla)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처럼 기독교는 다른 문화권과 만날 때 일정부분 서로 형식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늘 지켜야 한다. WCC는 이를 지키려고 늘 조심하고 있다. 정현경 교수의 주제발표는 문화 속에서 성령을 살펴 보려는 한 개인의 입장이지 WCC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 개인적 영성순례 행보는 전통적인 기독교인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보는 WCC와 무관하다.

정현경 교수의 돌발적인 행동은 WCC를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먹잇감이 된 것 같다. 토착화신화, 문화와 신학  분야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주제는 참으로 많다. 정현경 교수는 그런 분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주장을 펼쳤지만 그것이 문제제기라고는 할 수 있어도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신학은 아닌 것이다.

WCC가 동성애 지지 결의했다는 허위주장에 대해

WCC가 동성애 지지 결의 했다는 허위 주장에 대해

[2916호] 2013년 09월 26일 (목) 10:03:13 [조회수 : 1036] 한국기독공보

이형기ㆍ박성원 교수의 WCC 바로알기 12

WCC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에 가장  허망한 것이 동성애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WCC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어떤 공식적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WCC는 인간의 성(性) 문제를 50년 전부터 다뤄왔다. 그러나 동성애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해 다루 것이었다. WCC가 성 문제를 최초로 다룬 것은 제3차 총회(1961, 뉴델리)에서였다. 여기에서는 혼전 성경험, 성폭력, 축첩, 부적절한 관계, 단기혼인, 쉽게하는 이혼, 종교가 다른 사람이나 교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 다문화결혼 등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한 것들이 주제였다.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는 위의 문제에 덧붙여 피임과 산아제한, 가족계획, 낙태 등의 문제가 추가되었고 동성애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웁살라 총회는 성문제는 교회 안에서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문화와 문명에 따라 아주 다양한 관습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해보도록 권고했다.

제6차 총회(1983, 뱅쿠버)와 제7차 총회(1991, 캔베라)에서는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간의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성, 성과 인간관계 등의 문제가 토론되었다. 캔버라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교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고 민감한 문제이므로 여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제8차 총회(1998, 하라레)를 준비하면서는 아프리카 짐바브웨가 동성애자들을 체포한데 대한 인권적 차원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8차 총회를 기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연구를 성지남력(sexual orientation)차원에서 인간의 성(human sexuality) 전반에 대한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WCC가 동성애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성의 보편적 접근을 위해 취한 포괄적 장치인 셈이다.

이후 개인의 성윤리, 혼외정사, 유전자 공학과 성, 에이즈, 콘돔사용 문제와 성폭력, 심지어 난민촌에서 구호요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난민여성들의 성폭력 문제 등이 인권차원에서 제기되었다.

WCC가 다룬 성 문제는 인간의 성 전반에 관련된 것이고 동성애 문제는 주로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고 있는 북미나 유럽에 의해 제기되는 현실이며 여기에 대한 남반구 교회는 대부분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WCC 안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이다.

위 글은 장신대 이형기 교수의 WCC 동성애 지지결의가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 쓴 것이다. 아마 WCC가 동성애를 지지결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WCC가 이렇게 동성애에 대한 확실하게 반대하지 않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 반대하지 않았으니 지지결의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