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환규 목사 별세, 그의 영전에 드리는 글
故 고환규 목사님의 영전에 부쳐 고환규 목사님 … 갑작스런 황망한 소식을 접하고 목사님께서 시시로 올려주신 사진을 찾아 목사님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었지만 목사님은 여전히 순박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근엄하거나 무표정한 모습 없이 한 결 같이 천진하게 미소를 머금고 계신 모습이셨습니다. 그 미소는 분명 속에서 […]
故 고환규 목사님의 영전에 부쳐 고환규 목사님 … 갑작스런 황망한 소식을 접하고 목사님께서 시시로 올려주신 사진을 찾아 목사님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었지만 목사님은 여전히 순박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근엄하거나 무표정한 모습 없이 한 결 같이 천진하게 미소를 머금고 계신 모습이셨습니다. 그 미소는 분명 속에서 […]
영과 혼의 비교 1.영과 혼의 기능적 비교 (1)영Ibid., pp. 50-54. 인간의 영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또는 표현을 바꾸어 말한다면 영은 세가지 주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양심과 직관과 영교가 그것이다. ①양심 양심이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분별기관이다.그러나 이러한 분별은 마음에 쌓아놓은 지식의 힘을 빌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양심의 일은 독립적인
인간의 원죄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들 창조의 꼭대기에 앉은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죄인이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있다. 그런데 “불순종”이라는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과 이웃 및 자연과의 관계단절을 초래한다. 이러한 인간의 범죄는 개개인의 죄이면서도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은 Arthaus의 글에서도 볼
세 가지의 인간관 지금까지 제시되고 있는 인간관은 인성이 몸,혼,영이라는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삼분설과,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는 이분설과,하나의 기초적 실체로 된 것으로 보는 일원론적 인간관이 있다. 1.일원론적 인간관 일원론적 인간관은 최근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이다. 그들은 몸,혼,영은 인성의 분리할 수 있는 다른 기관들이나 기능들이나 부분들을 지칭함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을 다른 관점으로부터 이해하고 표현한 것 뿐이라
저는 14년 전(2007년 12월)에 개척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 개척하면 열정이 넘칩니다. 부흥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3년에 100명 전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주3~4일 전도, 심방, 양육 그리고 기도, 전도축제를 위해서 100 일 금식(60일간 두끼, 40일 한끼)을 하기도 했습니다. 3년만에 재적 75명(장년35명, 주일학교40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 부부가 저를 늘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새신자 성도님과 동업을 하더니
어느 목사님( 장동학목사)이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목회자들이 너무 믿음이 좋은 것 같아서… 교회나 가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된다.“ 여러분의 담임목사가 믿음이 그렇게 썩 좋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믿음이 아주 특심하면 여러분은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매년 했어야 했고, 십일조 안낸다고 닦달을 당했을 것이고, 전도 안한다고 매일 야단맞을 것입니다. 가정 중심보다는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리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주님은 우리에게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산을 옮기는 믿음은 뭔가 아주 대단하고 특출한 것이 아니라 겨자씨만한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대단한 분입니다. 바울이 선교의 현장에서 불가능한 상황, 도무지
1. 하나님의 침묵만큼 괴롭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내 억울함을 하소연해도 하나님의 답이 없다. 침묵하신다. 심지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누구라도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지, 살아계시는 분이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기에 역으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내가 보이는 태도만큼 내
그들이 패했다. 40만 명의 병사들이 2만 6천 명의 병사를 당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싸움에서 1만 8천 명이나 죽었다. 분명히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답이 있었다. 그 답대로 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싸움에서 패했다.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 11지파 동맹군이요, 그들을 패퇴시킨 이는 베냐민 지파였다. 무엇이 문제였나? “우리 중에서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그들이 하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