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누구나 다 한 번쯤 교회에 가 본 기억이 있을겁니다. 그 당시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달리 그 땐 친구들과 신나게 흙을 밟으며 뛰어노는 게 일상이었기에, 교회는 저에게 더없이 신비하고, 즐거운 놀이공간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평소에 대하지 못한 특별한 맛있는 먹거리를 주었기에 이번에 가면 뭘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맛있는 먹거리가 넘쳐나다보니 먹는 거 준다고 교회에 가진 않지만, 30년 전만해도 간식이란 개념이 참 귀했던 시절이라 교회에 가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회가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그 당시 받은 충격이 어린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헌금 때문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에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특별한 날이나 필요한 것을 살 때 부모님께 돈을 받았고, 어떨 때는 그걸 조금 남겨서 꼭꼭 숨겨두었다가 필요한 것을 사던 시절이었습니다.
사건이 생긴 그날, 친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교회에 갔었습니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 예배, 게임, 성경공부 다 좋았는데 딱 한가지 좀 부담스런 시간이 바로 성경공부하는 시간에 내는 헌금순서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헌금을 내지 않고, 담임선생님과 성경공부하는 시간에 헌금을 걷고는 얼마를 내었는지 출석부 같은 곳에 기록을 해두더군요. 전 낼 헌금이 없어서 항상 빈손이었구요.
그런데 그날, 다른 날은 별 말이 없던 선생님께서 제가 헌금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친구들 앞에서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당한 저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구요, 어린마음에 너무도 창피해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다음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이해 못했던 건 그 선생님의 태도였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제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더군요. 도리어 제가 결석한 그 다음 주부터 저희 집에 오셔서 절 데리러 가려하시는데, 이제 교회에 안나가니 오시지 말라해도 그냥 막무가내로 계속 찾아오시는 겁니다. 정말 그 당시에는 너무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교회가 질리게 되더군요. 아마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저도 교회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줌마님을 위해 100일 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고맙기도 하고, 또 절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목사님의 따스한 마음에 살짝 감동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제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커서 그런지 선뜻 교회에 다시 가고 싶진 않네요. 어린시절의 그 충격이 제 마음의 문을 너무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요즘 교회가 사회적인 질타도 많이 받고, 또 교회 내부적으로도 교세가 감소한다고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겠지만 제 경험 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자연스럽게 다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억지로 하게 하고, 강압적으로 한다고 해서 신앙을 갖게 되진 않습니다. 도리어 역효과가 나죠. 제가 피부로 경험한 우리 한국교회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절 위해 100일 기도하신다는 목사님 때문에 저의 경험을 여기 코이네 뉴스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by 줌마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 지침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성경에 근거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가 선언하고 결의한 입장에 따라 동성애 문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