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과 제사장. 성막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특별히 선택하셨고, 그들 중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동행하는 자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모든 무너짐은 ‘질서의 왜곡’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시내산에서 제사장 가문과 레위 지파를 세우셨을 때, 그 장엄한 설계도 안에는 인간적인 계급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영토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영적 신분은 완벽하게 대등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수기 3장에서 규정된 그들의 ‘종속적 관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계급이 아닌 ‘기능적 종속’이었습니다.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거룩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소 안에서 피를 뿌리는 제사장의 직무와 성막 안팎을 지키고 운반하는 레위인의 직무를 엄격하게 구별해 놓으신 ‘사랑의 질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존중할 때만 성막의 거룩함이 유지되는, 아름다운 상호 의존적 동역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흐르면서 인간의 탐욕은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를 서서히 오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광야를 누비며 성막을 어깨에 메고 나르던 레위인들의 거친 노동은 성전이 고정되면서 갈 곳을 잃었습니다. 이동식이던 예배 처소가 거대한 정착형 성전으로 바뀌자, 레위인들의 직무는 성전 문지기, 찬양대, 제물 도살 보조와 같은 하급 기능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기능적 분담의 선은 수직적인 지휘 계통으로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파국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잃고 왕정이 폐지되자, 유대 공동체의 유일한 수장이자 행정권자로 대제사장 가문이 부각되었습니다.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본질적인 타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전세와 종교적 재권을 장악한 제사장 그룹은 점차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중앙 유대의 지배 기득권층(훗날의 사두개파)으로 군림했습니다. 반면, 그들의 지시를 받으며 성전의 궂은일을 도맡던 일반 레위인들은 종교 권력의 하수인이나 경제적 취약 계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두 형제의 거리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졌습니다. 대제사장 가문은 로마 제국의 권력과 결합해 종교를 사업화했고, 성전에서 수종들던 레위인들은 그 거대한 기득권 체제의 가장 말단에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고용인에 가까워졌습니다. 신분적 대등함은 사라지고, 철저한 구조적·정치적 종속만 남은 것입니다.
이 역사적 과정은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임의 구별’을 인간이 ‘계급의 차별’로 바꾸어 버릴 때, 공동체는 생명력을 잃고 제도화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혹은 교회 안의 다양한 직분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잠시 기능적으로 대행하는 자리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내게 주신 직분을 권력으로 착각하거나, 다른 이의 헌신을 하급 노동으로 가벼이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아름다운 동역을 수직적 종속 관계로 타락시켰던 유대 역사의 비극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함을 받은 ‘동등한 영적 레위인’이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직분의 높낮이가 아닌, 사명의 거룩함으로 서로를 받드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