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필요한가? 레위지파를 두신 하나님의 뜻

종교가 필요할까? 현대 사회는 철저한 ‘효용과 가치’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는가?”, “비용 대비 효율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종교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던져집니다. 과학이 세계를 설명하고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예배하고 종교적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어떤 실질적인 효용이 있느냐는 회의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인들의 질문은 신선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천 년 전, 거친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했을지 모릅니다. 그 중심에는 ‘레위 지파’라는 독특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생산성 없는 집단, 광야의 중심에 서다

민수기 1장의 인구 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광야라는 척박한 생존 환경에서 하나님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20세 이상의 장정들을 계수하셨습니다. 당장 내일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력과 군사력은 생존과 직업적 효용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독 레위 지파만큼은 군대 명부에서 제외시키셨습니다(민 1:47~49). 이들은 칼을 들고 싸우지도 않았고,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농사를 지을 영토(기업)를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레위 지파는 공동체에 짐이 되는 ‘비생산적 집단’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비생산적인 지파를 이스라엘 진영의 가장 깊은 중심, 즉 ‘증거의 성막 사방’에 배치하셨습니다(민 1:53). 그리고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생산적인 일 대신, 거룩한 성막을 관리하고 예배를 수종 드는 영적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여기에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는 ‘종교의 진짜 효용’이 담겨 있습니다.

거룩한 울타리: 생존을 넘어선 존재의 보호

민수기 1장 53절은 레위인의 핵심 역할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생존을 이어가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는 ‘스스로의 유한함과 죄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성 가득한 인간이 무방비로 부딪힐 때 발생하는 영적 파국(진노)을 막아서는 울타리가 바로 레위인이었습니다.

이를 현대적인 언어로 바꾼다면, 종교는 인간이 ‘기능’과 ‘소유’에 매몰되어 스스로 파멸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영적 방어선입니다.

현대인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효율을 내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결과는 극심한 영적 고립감, 실존적 허무,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죽음 앞에서 무력하며, 도덕적 타락과 내면의 공허함을 스스로 치유하지 못합니다.

이때 종교는 인간에게 ‘기능적 쓸모’가 아닌 ‘존재론적 의미’를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절대자 앞에 단독자로 서는 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레위인이 성막을 지킴으로써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했듯, 종교는 보이지 않는 거룩함의 울타리를 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고 영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여호와가 기업이 되시는’ 삶의 해독제

레위인은 땅을 차지하지 않는 대신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민 18:20)이 되시는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자원을 소유함으로써 안정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의 모델을 온 이스라엘 한복판에서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의 필요성은 바로 이 ‘대안적 삶의 제시’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무한 증식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효율성 속에서, 종교는 잠시 멈추어 서서 “인간의 가치는 당신이 가진 생산성에 있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하여 예배하고, 내 손의 소득을 나누어 신앙 고백을 하는 행위는 세상의 효율성 기준으로는 철저한 ‘낭비’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낭비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물질의 노예가 아닌, 존엄한 영적 존재로 회복됩니다.

결론: 효율의 시대, 본질을 붙들다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레위 지파가 없었다면, 그들은 강력한 군대를 가졌을지언정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목적 없는 유랑민’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도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다그치지만, 종교는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초청합니다. 눈에 보이는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붙들게 하는 것. 그리하여 유한한 인간을 무한하신 신의 신비와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종교가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유일한 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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