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어려움

말하기의 어려움

말하기의 어려움

 

‘엄한 아버지를 가진 장남’은 눌변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말이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 같은데 대체로 엄한 부모님의 첫째들은 소심하고 실수를 두려워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서툴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생각할때마다 늘 위안을 삼곤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것은 제 자신에게 그 근거가 있는 것이아니라는 위안 때문이죠. 유난히 엄했던 아버지가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장남으로 낳아주신 어머니가 그 다음 책임이신거죠.^^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의 한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교회에서 문학의 밤(당시 교회들은 그런거 많이 했습니다) 사회를 보는데 행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마이크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거친 숨소리를 삼키며 말을 더듬거려, 제가 말을 할 때마다 폭소를 들어야만 했던 치욕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인공포증과 무대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제가 선생이 되었습니다.
늘 사람들 앞에서 서야 하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에 말이죠.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저에게 참 어렵습니다. 무슨일이든 한 20년쯤 하면 적당히 적응도 할만한데 지금도 강연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의 수업에도 시작전엔 늘 긴강을 하곤 한답니다.

<한비자>를 공부하면서 한비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의하면 한비는 말 더듬이였다고도 합니다.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한비자>에 ‘난언(難言)’ 즉 ‘말을 하기 어렵다’라는 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말투가 순순하고 매끄럽게 거침없이 줄줄 이어지는 것 같으면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말하는 태도가 완고하고 신중하고, 빈틈없이 완벽하면 오히려 조리가 없고, 융통성이 없어 보일것이며, 인용을 자주 하여 말을 많이 하고 유사한 사례를 끌어대어 수다를 떨면 그것은 겉치레일 뿐 쓸모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또한 요점만 간추려 개요를 말하고 직설적으로 꾸밈없이 말하면 화술이 부족하다고 여길것이며, 상대방의 속마음을 너무 고려하여 말하면 주제넘고 염치없게 보일 것이며, 말하는 품이 너무 크고 넓으면 야단스럽기만 하고 무익하게 보일 것입니다.
또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말하며 자상하게 한다고 수치를 들어 말을 하면 고루하다고 여길 것이고, 세속적인 말솜씨로 남을 거스리지 않는 말만을 하면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첨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저속한 말을 피하고 유별난 말재간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면 무책임한 엉터리라고 여길 것이며 기민하게 말을 꾸며 대며 문체나게 말을 하면 현학적으로 보일 것이며, 일부러 문장이나 학문을 끊어버리고 있는 바탕 그대로를 드러내어 말을 하면 야비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수시로 시(詩)와 서(書)의 구절을 들먹거리며 지나간 옛 것을 본받는 척하면 암송만 되풀이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한비가 말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 근거들입니다.
물론 한비는 어리석은 군주에게 현명한 신하가 충언을 드리는 것을 전제하여 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이란 것이 그 받아들이는 대상과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또 말에 대한 반응과 책임의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말을 한다는 것은 늘 어렵기 습니다.

항상 남들 앞에 서야하고, 또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안되기에 더더욱 그 고민이 큽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도 공자께서 그 제자 중 변설에 능한 재여라는 제자를 가리켜 ‘썩은 나무에 조각을 할 수 없다’라는 혹평을 한 것, 많은 제자들 중 논리적이고 말에 능한 제자를 오히려 부끄러워 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안그래도 말주변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 저는 당혹스럽습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과 그 말이 신뢰감과 진정성을 가진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라고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말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한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 말의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비자의 또 다른 글에 “알지못하며 말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하며, 알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한다”라는 말이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하지만 그 말이 공부가 부족하여 근거없이 떠드는 말일 경우 어리석은 것일뿐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동안 무수히 쏟아내었던 말들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순간들은 고개를 차마 들 수없이 어리석었고, 졸렬했고, 어떤 말들은 내실도 없이 그저 ‘자랑’을 위한 책임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말들이 없었던 것 같아 안그래도 소심한 ‘말하기’에 두려움마저 듭니다.

성경말씀에도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잠언 21:23)라는 말이 있으며 심지어 ‘어리석은 자라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혹시 사람들이 지혜롭게 여길지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늘 ‘말을 많이 하지마라’, ‘말을 하기 전에 딱 한 번 더 생각하라’, 자신이 없으면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by 황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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