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천으로서의 할례”
본문: 창세기 17:23–27
서론 – 할례는 표식이 아니라 ‘삶’의 증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할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말씀입니다.
“할례”는 히브리어 단어가 아니라, 한자로 구성된 말로, “자를 할(割)”과 “예식 례(禮)”를 결합한 표현입니다. 이는 히브리어 원어 “mul(מוּל)”, 즉 “자르다”는 뜻을 잘 반영하여 번역된 용어입니다. 따라서 ‘할례’는 단순한 의학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예식을 의미합니다.
할례는 육체의 한 부분을 베어내는 행위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의 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외적인 표시로 만족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모습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진실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즉시 순종하고, 자기 집안 전체와 함께 할례를 행합니다. 이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실천으로서의 할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묵상하며,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한 응답입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자기 집에서 태어난 모든 남자와, 돈을 주고 사들인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바로 그 날에 그들의 포피를 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 날”에 순종합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표징입니다. 그러나 **진짜 의미는 단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아브라함의 ‘응답’**에 있습니다.
믿음은 생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믿음을 물으십니다.
너는 나와의 언약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너는 말씀을 듣고만 있느냐, 아니면 반응하고 있느냐?
오늘 우리의 믿음도 ‘기도만 하고’, ‘말씀만 듣는’ 것으로는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자라지 못하고, 증거 없는 믿음은 세상 앞에 힘을 잃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말씀 앞에 즉각적이고 전인적인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실천입니다.
2. 할례는 공동체를 위한 믿음의 책임입니다
본문 26–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로 그 날에 할례를 받았다. 그의 집안의 모든 남자들, 곧 집에서 태어난 자들과 외국 사람으로서 돈을 주고 사들인 자들이 다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다.”
아브라함은 자기 혼자만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집안의 모든 남자들—종들까지—모두가 함께 언약에 동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공동체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배웁니다.
믿음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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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믿음은 가정에 영향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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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믿음은 교회에 영향을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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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믿음의 실천은 사회 안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오늘날은 종교의 자유가 있고, 강제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앞서 나눈 것처럼, 믿음은 강제가 아닌 감화로 확산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삶으로 드러날 때,
그것이 곧 내 가족과 공동체에 주는 믿음의 본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먼저 할례를 받고,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믿음의 실천은 늘 앞장서는 사람을 통해 시작됩니다.
오늘 이 새벽, 여러분이 그 믿음의 첫 걸음을 내딛는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으로 공동체를 일으키십니다.
3. 할례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할례를 명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한 민족의 풍습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는 선포였고,
그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외적 표식이었습니다.
로마서 4장 11절은 할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할례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받은 의의 인치심이라.”
즉,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마치 성도의 세례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주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습니다.
신명기 10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의 할례란, 내 고집과 죄악을 잘라내고,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에 다니지만,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믿음의 실천으로서의 할례란, 내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 선언이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할례입니다.
결론 – 할례는 오늘날 믿음의 실천, 삶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할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었고,
믿음의 고백이었으며, 공동체를 향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우리는 육체의 포피를 자르는 대신, 우리의 삶과 태도 속에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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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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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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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마음의 할례요, 믿음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행동하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 증거 있는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할례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 믿음의 자리에, 여러분 모두가 서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