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이중직 사역에 대한 오해

이중직 사역에 대한 오해

 
“목사님, 이제 교회도 꽤 커졌는데 언제 다시 전임으로 사역하실건가요?”
주변 목사님들께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교회가 작아서 하는 알바’, ‘돈 안 되는 사역을 지속하기 위해 하는 돈 되는 일’, ‘소명이 부족한 사람의 차선책’ 정도일겁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만약 이 정도의 생각으로 ‘일’을 시작하시려는 목사님이 계시다면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중직 목회자입니다. 이 글로 ‘이중직’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나눠보겠습니다.
 

1. ‘이중직’이라는 말의 오해

영어로 bi-vocational pastor. vocation은 직업이 아닙니다. 부르심, 소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중직’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중간첩 같은 어감이 됐습니다.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걸친 사람.
중세 교회는 목사와 수도사만 부름받은 사람이고, 농부와 상인은 그냥 먹고사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목사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나라’. 단지 현장이 다양할 뿐입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주일에 말씀을 전하는 것은 두 개의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소명이 두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반드시 모순을 경험하는 지점이 찾아오게 됩니다.
 

2. 하나님이 다 채워주신다는 오해

“목사가 믿음없이 일을 하냐? 사역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다 채워주신다”
이 말에는 일과 사역을 거룩함과 속됨으로 나누는 성속분리, 이원론이 깔려있습니다.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고, 일은 믿음 없는 사람이나 하는 영역이라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일할 수 있는 몸입니다. 그 몸을 두고 “채워주실 것”만 기도하는 건 믿음이 아니라 방임입니다. 심지어 일하는 그곳엔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터에서도 확장됩니다.
“까마귀가 먹여준다?” 냉정하게 보면 부모님 노후 자금, 형제의 십일조, 처가의 도움, 성도들의 봉투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주는 사람을 마르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주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채워주신다”고 말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부르면 안 됩니다.
 

3. 일은 평신도의 몫이라는 오해

개신교에는 원래 ‘평신도’가 없습니다.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모든 거듭난 성도는 거룩한 성직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벧전 2:9). 그러나 종교개혁 500년 뒤, 우리는 또다시 목사를 계급으로 만들었습니다.
계급이 생기면 일도 나뉩니다. 목사는 기도하고 설교하는 사람, 성도는 나가서 돈 버는 사람. 그래서 “목사가 무슨 일이냐”는 말이 나옵니다. 일은 아래 계급이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건 종교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겁니다.
모든 목사가 일터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임 사역도 분명한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일하면 안 된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금지는 없습니다.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바울은 사역자가 사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고린도에서는 스스로 그 권리를 접고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일을 해도 되냐 안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이 질문을 건너뛰고 “목사는 일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 그건 거룩함이 아니라 주인께 묻지 않는 종의 고집입니다. 반대로 묻지도 않고 “먹고살아야지” 하며 나가는 것도 같은 고집입니다.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하라 하시면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 명령이 강단이면 강단에, 일터면 일터에 서면 됩니다. 바울처럼.
 

4. 먹고살려고 일한다는 오해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이중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생계형과 선교형입니다.
생계형은 재정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갖는 겁니다. 일은 사역을 지탱하는 수단이고, 마음은 “언제쯤 전임으로 돌아가나”에 있습니다. 가족을 먹이는 일은 그 자체로 숭고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중직의 본질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선교형은 일터를 파송의 현장으로 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배 드릴 때는 모두가 믿어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의 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곳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장이 될 때, 일은 견디는 게 아니라 부르심의 일부가 됩니다. 바울 천막을 만들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살았고 그 부부는 후에 아볼로를 가르칠 만큼 성장해 바울의 동역자가 됐습니다. 일터가 곧 훈련 현장이었습니다.
둘 다 일하는 목사지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생계형은 결국 교회 안으로 돌아가려 하고, 선교형은 기필코 세상 안으로 더 들어가려 합니다. 생계형으로 시작해도 됩니다. 다만 거기 머물면 안 됩니다.

 

5.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긴다는 오해

“목사가 돈 욕심이 나서 세상 일을 한다.”
그 논리라면 모든 성도에게 세상에서 일하지 말고 교회 건물 안에만 머무르라고 해야 합니다. 세상을 혐오하면서 주일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라고 설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성경은 “돈을 벌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섬긴다는 건 주인으로 모신다는 뜻입니다. 땀 흘려 돈을 버는 것이 악한 게 아닙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 악한 겁니다. 정직하게 이윤을 내고, 약자를 배려하고, 손해 보면서 원칙을 지키는 것. 그게 일터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실 돈 욕심은 일터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례비 협상, 은퇴금, 권리금, 건축 헌금. 교회 안에 있지만 재물을 섬기는 목사를 우리는 이미 여럿 봤습니다. 반대로 세상에서도 정직하기 위해 손해 보는 성도도 있습니다.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주인이냐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교회 안에서 정직한 척 연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생존이 걸린 시장에서 정직을 택하는 건 성령의 능력 없이 안 됩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걸 보여주는 것. 돈이 오가는 사업 현장에서도 오직 주인은 하나님인 것. 어쩌면 그건 세상이 처음 보는 목사의 모습일 겁니다.
 

6. 교회 성공 못 한다는 오해

“두 가지 하면 절대 교회 성공 못 한다.”
맞습니다. 수천 명을 건물에 모으는 걸 성공이라 부른다면 맞습니다. 100% 실패할 겁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성도 한 명을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것. 교회에서 ‘사역’이라 말하는 것들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보다 ‘교회의 운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조직을 키우기 위한 행사들과 조직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 어쩌면 이 ‘사역’은 교회 시스템을 지키는 일이지,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데 최근 5년 안에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교회. 그건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을 다시 정의합시다. 얼마나 모았느냐가 아니라, 한 사람이 거듭났는가. 기준이 바뀌면 건물 없이 일터에 선 목사를 향한 평가도 바뀝니다. 교회의 형태 유지보다 그 기능에 집중합시다.
 

7. 누가 주인인가?

솔직히 저도 ‘일’이 힘들었습니다. 교회를 시작하자 모인 웨이터 출신 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작은 과일가게였습니다. 새벽 3~4시에 나가 저녁 8시가 넘어 귀가하는 퇴근길에 1톤 트럭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며 한참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처음엔 “언제쯤 사역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아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과일장사를 하는 그 과정이 사역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속에 성도로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며 깨닫게 됐습니다. 내가 가정에 있든, 사무실에 있든, 시장에 있든, 강단에 있든.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제자화 대상이었고 그곳에서 거듭나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됐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최전성기에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물었고, 그 다음으로 가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돈이 주인이었다면 하지 못할 결정이었습니다.
교회는 건물과 시스템으로 성공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한 영혼의 거듭남으로 성공합니다. 건물이 없어도 생명은 태어납니다.
일터를 선교지로 살겠다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교회가 되겠습니다.”
 
by 김동은 목사 (그리스도의몸교회 담임, BOC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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