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장편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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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오랫동안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차이를 그저 ‘분량’으로만 알았습니다. 짧으면 단편, 길면 장편.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지요. 완전히 틀린 답은 아니었지만, 소설이라는 세계와 그 속에 깃든 삶의 결을 헤아리지 못한 얕은 이해였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단편소설은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은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모두 보여주지 않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 가운데 어느 한순간을 잘라 담아낼 뿐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진은 단순히 한순간을 멈춰 세우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흑백사진 속 주름진 얼굴 하나, 굳게 다문 입술 하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합니다. 사진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얼굴에 새겨진 표정과 빛의 방향, 침묵의 깊이 속에 한 사람의 삶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편소설이 그렇습니다. 짧은 분량 안에 인물의 전 생애를 펼쳐 보이는 대신, 그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순간을 포착합니다. 어떤 선택을 앞둔 순간일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일 수도 있으며, 평범한 하루에 문득 균열이 생기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그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불필요한 설명과 사건을 덜어냅니다. 그리고 독자는 사진의 바깥을 상상하듯, 문장에 직접 쓰이지 않은 인물의 과거와 미래를 스스로 채워 넣습니다.
반면, 장편소설은 ’영화‘와 닮았습니다. 장편소설의 시간은 사진처럼 멈춰 있지 않습니다. 인물은 화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사건은 앞선 사건의 결과가 되어 다음 장면을 불러옵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 후회와 결심이 차례로 지나가고, 때로는 같은 장면이 다른 의미로 되풀이됩니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였던 말 한마디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한때의 실패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인물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고, 시간이 시간 위에 포개지면서 한 사람의 서사가 완성됩니다.
장편소설의 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어느 한 순간의 장면이 아니라, 흘러가는 긴 과정을 끝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읽어낼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 섣부른 규정은 폭력이다.”—김훈, <라면을 끓이며>
네.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종종 폭력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타인의 삶을 ‘사진 한 장’으로 손쉽게 판단하곤 합니다. 유난히 빛나던 성공의 날, 혹은 처절하게 미끄러졌던 실수 혹은 실패의 한 장면만을 도려내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섣불리 마침표를 찍어버립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한 컷의 사진으로 요약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단 하나의 장면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오래 보아야 합니다. 오래 보아야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겠지만, 오래 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보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시선뿐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지금의 내 모습 역시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끝을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 속에서, 조금 어둡고 고단한 한 ‘시퀀스‘를 지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한 장면이 어둡다고 해서 영화 전체가 반드시 어두운 것은 아니며, 잠시 길을 놓쳤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난 것도 아닙니다. 다음 장면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만남과 변화, 뜻밖의 회복,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장편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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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가장 알맞게 흘러가도록 지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내일을 내다보는 마음을 주셨지만, 그분이 완성해가시는 삶의 시작과 끝을 우리는 한순간에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도서 3:11, 의역)
by 권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