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티베트 홍수 ‘우리의 애도에는 분노가 담겨야 한다’

네팔-티베트 홍수를 보고 인류가 망했다, 종말이 왔다, 이번 생은 망했다와 같은 한탄들.
이같은 종말론적 관점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우리의 시야와 분노를 흐릿하게 한다. 결국에 그런 넋두리는 자본주의 재난 체제를 지속시키는 역할에 복속된다.
 
우리의 애도에는 분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네팔의 탄소 배출 누적량은 고작 0.1%다. 또 네팔은 전 세계 기업들이 삼림 벌채에 미쳐 있는 동안, 오히려 근 25년 사이에 삼림 면적을 두 배로 늘린 나라다. 국유림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면서 공공림과 사유림이 울창해졌고, 네팔인들은 그 숲의 낙엽과 버섯에 의존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도 괴멸적인 기후재앙에 가장 먼저 두들겨 맞는다. 그것이 기후 부정의다. 세계의 불평등이다. 가장 적게 탄소를 배출하고 자연을 덜 파괴했음에도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가공할 폭력에 속절없이 부서졌다.
 
전 세계 산맥 빙하는 온난화 속도가 평균보다 빠르다.
따라서 눈이 덜 쌓이고 빙하가 계속 녹아 내린다. 이 추세라면 금세기 말에 히말라야 빙하는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네팔, 파스키탄, 부탄,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인 수억 명이 히말라야 빙하에 의존해 살아 왔다. 그래서 히말라야 별명 중 하나가 ‘아시아의 물탑’이다. 히말라야 산맥 빙하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건 오래된 이야기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지적해 온 사안들이다.
 
우리는 이번처럼 확실히 인지되는 재난의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사실 눈에 잘 보이지 않거나 제대로 정량화하기 힘든 느린 재난도 그 못지 않다. 히말라야에 매년 적설량이 감소하면서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혹독한 가뭄에 시달려 왔다. 눈 녹은 물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가뭄 때문에 농사를 포기하고 기후 난민이 되거나 다른 척박한 노동 환경 속으로 내던져졌다.
한편으로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내리면서 인더스 강을 범람시키고, 이는 몬순 기간마다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 막대한 규모의 홍수 재난을 야기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이미 피해를 당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수원지인 히말리야 빙하가 점점 감소할수록, 이곳에 의지해 왔던 지역들은 물 부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첨예해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하고, 이들 나라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저히 적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기후재난이 세계 불평등의 계곡을 따라 굽이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트럼프는 화석연료 기업들을 위해 빗장을 풀어주고 또 AI 광풍을 통해 가스발전소를 짓도록 닦달하고 있다. 이는 메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온실가스 폭주를 부추기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애도에는 분노가 담겨 있어야 한다.
종말이 왔다, 인류가 망했다는 한탄은 대부분 모든 책임을 추상화된 ‘인간’에게 떠넘기면서 이토록 불의한 체제의 불평등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세상이 망했다고 외칠 게 아니라 이제 당장 저 놈의 화석연료를 그만 불태우라고, 지구를 그만 좀 불태우라고, 저 히말라야 만년설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리게 하지 말라고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by 김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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