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수련회, 목적 없이 노는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

그냥 놀러 가면 안 됩니까: 목적 없이 노는 수련회가 필요한 이유

 
교회 수련회 기획 회의를 떠올려 보십시오.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올해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강사는 누구를 모실까.
집회는 몇 번 할까.
결단의 시간은 언제 배치할까.
그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크리에이션도 넣어야죠. 애들이 지루해하니까.”
여기에 이미 답이 들어 있습니다.
노는 시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집회를 견디게 하기 위한 완충재입니다. 아이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놀이에도 이유를 붙입니다.
이 게임은 협동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활동은 공동체성을 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시간은 마음을 열어 저녁 집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압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이 웃음이 진짜 웃으라고 주어진 시간인지, 아니면 다음 순서를 위해 배치된 시간인지를.
그래서 아이들에게 교회 수련회는 노잼입니다.
노는데도 재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짜로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와 말씀을 수련회 2박 3일에 몰아넣습니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아이가 수련회에서 두 시간 기도합니다.
평소에 성경을 펴지 않던 아이가 수련회에서 밤새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이의 신앙에 무엇이 새겨집니까?
신앙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분위기에서, 특별한 기간에 하는 것이라는 감각입니다.
일상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
1년에 두 번 몰아서 하는 것.
뜨거워졌다가 식는 것.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벤트성 신앙을 훈련시켜 온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세 가지 원인
 

1. 수련회에 평소 사역의 결손을 떠넘기는 구조

첫 번째 원인은 우리가 수련회에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웠다는 데 있습니다.
평소 주일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 예배 한 시간, 분반 공부 삼십 분.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 시간 안에 말씀 훈련이 이루어집니까?
기도가 훈련됩니까?
아이의 삶을 알 만큼 대화가 됩니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수련회로 몰아넣습니다.
1년 동안 못한 말씀 훈련을 2박 3일에 넣습니다.
1년 동안 못한 기도 훈련을 하룻밤에 넣습니다.
1년 동안 못한 결단과 헌신을 마지막 밤에 넣습니다.
수련회는 평소 사역의 연장이 아니라, 평소 사역의 부재를 메우는 보상 장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입니까?
첫째,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년 치 훈련이 나흘에 압축될 수 없습니다.
둘째, 이 구조에서는 수련회 일정이 빽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쉴 시간, 놀 시간, 관계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셋째,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평소 사역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수련회가 매년 결손을 덮어 주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은 평상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소에 하는 것을 수련회에서 조금 더 깊이 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평소에 안 하는 것을 수련회에서 갑자기 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라 이벤트입니다.
 

2.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사역자의 압박

두 번째 원인은 사역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구조의 압박입니다.
수련회가 끝나면 무엇을 보고합니까?
몇 명이 참석했는가.
몇 명이 결단했는가.
얼마나 은혜로웠는가.
여기에 어떻게 씁니까?
“아이들이 서로 많이 친해졌습니다.”
“평소에 말 안 하던 아이가 웃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싸우던 두 아이가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 보고는 성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당회에서, 부모에게, 담임목사에게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합니까?
눈물입니다. 결단입니다. 사진 속의 손 든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사역자는 그것을 만들어 냅니다.
집회를 늘립니다. 강사를 부릅니다. 마지막 밤을 강하게 구성합니다.
그리고 노는 시간은 줄입니다. 노는 것은 보고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도 압니다.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관계라는 것을. 함께 웃고 함께 뛰는 시간이 그 아이를 교회에 남게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증명되지 않는 것은 예산을 받지 못하고, 시간을 배정받지 못합니다.
이 압박이 계속되는 한, 수련회는 계속 집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3. 놀이를 신앙과 분리된 것으로 보는 신학

세 번째 원인이 가장 깊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노는 것은 영적이지 않다.
놀이는 신앙과 무관하다.
그러므로 놀이에도 영적 의미를 붙여야 정당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를 그냥 두지 못합니다.
물놀이에도 나눔을 붙이고, 게임에도 적용을 붙이고, 자유시간에도 조별 미션을 붙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냥 노는 시간을 주는 것을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수련회 와서 놀기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관계를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함께 먹으셨습니다. 배를 타셨습니다. 결혼식에 가셨습니다. 사람들과 밥상에 앉으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보낸 시간의 상당 부분은 집회가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강의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시간 속에서 배웠습니다.
관계는 신앙의 부속물이 아닙니다. 관계는 신앙이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다음세대에게는 이것이 더욱 결정적입니다.
청소년이 교회에 남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교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여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나를 기다리는 형이 있어서입니다.
같이 웃던 친구가 있어서입니다.
한 아이가 교회를 떠날지 남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관계를 만들 시간을 수련회에서 가장 먼저 삭제해 왔습니다.
 

숫자가 보여 주는 흐름

아래 내용은 다음세대 사역 현장과 청소년 신앙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들을 정리한겁니다.
첫째, 청소년이 교회에 계속 나오는 이유를 물으면 교회 친구와 공동체 관계가 상위에 위치합니다. 설교나 프로그램보다 관계 요인이 앞서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둘째, 반대로 교회를 떠난 청소년의 이탈 사유에서도 관계 문제가 교리적 회의보다 앞섭니다. 사람은 신학 때문에 떠나기보다 자리가 없어서 떠납니다.
셋째, 수련회에서 결단한 학생 중 몇 달 뒤까지 그 결단을 유지하는 비율은 낮습니다. 여러 조사에서 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넷째, 평소 신앙 습관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의 차이는 수련회 참여 여부보다 훨씬 큽니다. 즉 수련회가 신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신앙이 수련회를 의미 있게 만듭니다.
이 흐름이 말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수련회에 신앙 훈련을 몰아넣는 방식은 효과가 낮고, 관계를 만드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가 다시 정리해야 할 것

주섬기는교회는 개척 이후 계속 그냥 놀러 가는 수련회를 해 왔습니다.
수련회 기간 중 예배는 한 번, 그것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을 가볍게 여겨서입니까?
정반대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영적 훈련은 평상시에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하고 있으니 수련회에서 몰아서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련회에서는 평소에 못 하던 것을 합니다.
같이 물에 뛰어들고, 같이 밥을 해 먹고, 밤늦게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게임을 하고, 아무 목적 없이 웃습니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목회자가 아이의 진짜 얼굴을 봅니다. 예배당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아이가 물에서 소리 지르며 웃는 것을 봅니다.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그제야 알게 됩니다.
아이도 목회자를 봅니다. 강대상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아니라, 같이 넘어지고 같이 웃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 관계 위에서 평소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련회는 신앙을 주입하는 자리가 아니라, 관계를 전진시키는 자리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평상시에.
관계와 놀이는 수련회에서.
이 배치가 바뀌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았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해 보십시오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구체적으로 제안합니다.
 
첫째, 수련회 기획 회의의 첫 질문을 바꾸십시오.
“올해 주제와 강사를 무엇으로 할까”가 아니라
“이번에 어떤 아이와 어떤 아이가 가까워져야 하는가”로 시작해 보십시오.
 
둘째, 집회 수를 줄이십시오.
세 번 하던 것을 한 번으로 줄여 보십시오. 그 대신 그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돌리십시오.
한 번의 예배를 깊게 드리는 것이, 세 번의 예배를 지친 채로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셋째, 놀이에 의미를 붙이지 마십시오.
게임이 끝난 뒤 적용을 나누게 하지 마십시오. 그냥 재미있었으면 된 것입니다.
의미를 붙이는 순간 아이들은 그것이 진짜 놀이가 아니었음을 압니다.
 
넷째, 평상시 구조를 손보십시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련회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평소에 말씀과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다시 수련회로 몰아넣게 됩니다.
주 1회라도 좋습니다. 짧아도 좋습니다. 평소에 반복되는 구조를 만드십시오.
 
다섯째?, 성과 보고의 언어를 바꾸십시오.
“몇 명이 수련회 등록했습니다”만 쓰지 마십시오.
“평소 겉돌던 아이가 이번에 조원들과 붙어 다녔습니다”라고 쓰십시오.
이런 보고가 인정받기 시작할 때, 사역의 방향이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다음세대를 섬기는 분들께 묻습니다.
지난 수련회에서 아이들이 목적 없이 웃은 시간이 몇 시간이었습니까?
당신은 아이가 예배당 밖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수련회를 기다립니까, 아니면 견딥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같이 웃어 본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아이는 다음 주에도 옵니다. 그리고 계속 오다 보면, 평소의 말씀이 그 안에 쌓입니다.
신앙은 그렇게 자랍니다.
수련회를 바꾸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by 김남훈 목사 (주섬기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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