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영성은 성숙한 관계에서 완성된다
— 다윗의 ‘갈등 회피’가 남긴 영적·심리적 교훈
성경 속 다윗은 그야말로 신앙과 지도력의 영웅이다. 골리앗 앞에서의 대담함, 거친 광야에서 빚어진 신실함,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영성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거대한 이방 민족과의 전쟁에서는 연전연승했던 다윗도, 가장 가까운 집안사람이나 충신들과의 사적인 갈등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다윗의 생애를 가만히 추적해 보면 한 가지 치명적인 패턴이 드러난다. 바로 ‘갈등 회피’다.
아내 미갈이 자신을 업신여기자 소통과 화해 대신 죽을 때까지 ‘격리’와 ‘냉전’을 택했다. 장남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강간했을 때는 분노만 했을 뿐, 아버지이자 지도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징계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했다. 이 방관은 결국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의 사적 복수(암논 살해)로 이어졌다. 압살롬이 도망쳤다가 돌아왔을 때도 다윗은 2년 동안이나 그를 차단하고 외면하는 ‘어정쩡한 차단’으로 시간을 끌었다. 그 2년의 세월 동안 압살롬의 가슴속에는 반역의 칼날이 다듬어졌다.
더욱 아픈 가시는 모사 아히도벨과의 관계였다. 다윗은 자신의 가장 신임받는 책사의 손녀(밧세바)를 범하고 손주사위(우리아)를 참살하는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았을지 모르나, 정작 자신의 범죄로 평생의 상처를 입은 당사자 아히도벨을 찾아가 직면하여 사죄하거나 보상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를 묵인하고 방치한 대가는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당한 참혹한 배신과 왕국의 위기였다.
우리는 다윗의 이 인과관계를 통해 ‘성숙한 인간관계’에 관한 무거운 영적·심리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사람 앞에서의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
많은 신앙인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 복원을 넘어, 나의 허물로 상처 입은 이웃과 가족을 향한 책임 있는 사과와 화해의 행동으로 완성된다. 피해자의 아픔을 직면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영적 회피’일 뿐이다.
둘째, ‘죄책감’과 ‘건강한 권위’를 구분해야 한다.
다윗이 자녀들의 중범죄 앞에서 제대로 된 경계선을 세우지 못하고 유유부단했던 이유는 “나도 같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도덕적 부채감 때문이었다. 과거 자신의 오점에 매여 마땅히 해야 할 지도자·부모로서의 훈육과 정의 집행을 미루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악의 방조’다. 내 허물을 인정하는 겸손과, 오늘 내게 맡겨진 인격적 책임을 다하는 결단은 구분되어야 한다.
셋째, 회피와 차단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며, 분노를 숙성시킬 뿐이다.
불편한 사람을 가두거나, 외면하거나, 소통을 차단하는 행위는 당장 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 같지만, 상대방의 가슴속에는 깊은 앙심과 수동적 공격성을 키운다. 소통의 공백기 동안 갈등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음습하게 부패한다.
성숙한 신앙이란 단순히 기도를 많이 하거나 사역의 성과를 크게 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 혹은 내가 상처 입힌 이웃과 가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소통하고, 사과하고, 건강한 경계선을 세워가는 ‘정서적 성숙함’이 바로 성숙한 영성의 진정한 지표다.
전쟁터의 거인이었으나 집안과 대인관계에서는 아이와 같았던 다윗의 비극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다면, 그 깊이만큼 당신이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직면하여 풀어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