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찬탈인가, 생명의 헌신인가
어느 시대, 어느 공동체나 지도자의 부재(不在)보다 무서운 것은 ‘거짓 지도자의 출현’이다. 특히 공동체가 위기를 맞이하거나 긴 방랑의 피로감에 젖어 있을 때, 사람들의 상처와 결핍을 파고드는 선동가들은 언제나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성경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은 참된 지도자와 거짓 지도자를 구별하는 가장 선명한 영적 시금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거짓 지도자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의 안위나 백성들의 눈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권력 그 자체’를 탐한다는 점이다. 고라 무리가 모세와 아론을 향해 던진 명분은 그럴듯했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민 16:3).” 이들은 평등과 거룩, 그리고 공동체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외쳤지만,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목적은 아론이 가진 제사장의 특권과 모세의 통치권을 찬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비판하던 지도자의 자리를 빼앗아 스스로 지배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거짓 지도자는 백성들의 불만을 자신의 영적·정치적 신분을 상승시키는 도구로 삼는다.
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된 지도자는 ‘내가 이 백성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일할 것인가’를 눈물로 고민한다. 고라 무리가 전 지파의 유력한 지휘관 250명을 포섭하여 압도적인 세력으로 몰려왔을 때, 모세가 취한 첫 번째 행동은 군사력을 동원한 권력 방어가 아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영적 권위가 자기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기에 인간적인 혈기를 버리고 보좌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참된 지도자의 진가는 위기의 절정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반역에 동조한 온 회중이 순식간에 멸절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모세와 아론은 다시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민 16:22).” 자신들을 끌어내리려던 원수 같은 백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는 중보의 일에 집중한 것이다.
참된 지도자는 군림하고 지배하기 위해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영혼들을 살리고 섬기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내어준다. 이 모세의 대속적 중보는 장차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온몸을 던지신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예표한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와 가정, 그리고 일터에는 고라처럼 화려한 명분으로 자기를 포장하며 자리를 탐하는 자가 아니라, 모세처럼 영혼의 생명을 위해 묵묵히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 섬기는 참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내게 주신 직분과 공동체를 나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영혼을 살리는 청지기의 사명으로 여기며 헌신하는 참된 영적 지도자들이 도처에 일어설 때, 비로소 공동체는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거룩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