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중에 지은 죄는 무엇인가?

자복(自服), 감추어진 죄를 ‘부지 중의 죄’로 바꾸는 은혜

 

우리는 흔히 ‘부지 중에 지은 죄’라고 하면, 아예 모르고 저지른 단순한 실수나 불가항력적인 행동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부지 중의 죄, 즉 히브리어 ‘쉬가가(שְׁגָגָה)’의 성격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여기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허물뿐만 아니라, 순간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혹은 정욕과 연약함에 이끌려 ‘알면서도’ 저지른 범죄까지도 포함됩니다.

인간은 순간적인 탐욕에 현혹되면 양심이 마비된 채 죄를 짓곤 합니다. 엄밀히 말해 완전히 모르고 지은 죄라기보다는, 죄의 엄중함과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을 망각한 채 저지르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인간의 욕심과 연약함으로 점철된 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부지 중의 죄’로 인정받아 용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 분기점은 바로 ‘스스로 깨닫고 행하는 자복(회개)’에 있습니다.

민수기 5장 7절은 이웃에게 손해를 입히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죄를 범했을 때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온전히 배상할 것을 명령합니다. 범죄한 인간이 성령의 조명과 말씀 앞에 자신의 양심을 깨우고, 재판관이나 타인에 의해 강제로 폭로되기 전에 스스로 죄를 인정하며 나오는 것, 이것이 자복입니다.

성경의 법정 시스템 속에서 이 자복은 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탐욕으로 이웃을 속이거나 착취했을지라도, 죄를 자각한 즉시 스스로 자복하며 나아오면 하나님은 이를 고의적인 반역이 아닌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죄(부지 중의 죄)’로 간주해 주십니다. 이 경우 원금에 20%의 가산금만 더해 배상하고 속건제를 드림으로 관계와 영혼이 회복되는 ‘샬롬’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똑같이 탐욕으로 죄를 지었음에도 끝까지 그것을 은폐하고 감추다가 정식 재판에 넘겨져 증인과 물증에 의해 죄가 드러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때는 더 이상 연약함에 의한 죄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동체와 하나님을 기만지한 ‘고의적인 반역(짐다)’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출애굽기 22장의 재판법에 따르면, 자복하지 않다가 재판에서 들통난 도둑은 속건제 한 마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2배에서 최고 5배까지의 가혹한 법적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이처럼 죄의 질과 심판의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죄의 유무 자체가 아니라 ‘자복의 여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여 순간의 유혹에 넘어지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붙들고 끝까지 완악하게 숨기는 자에게는 엄중한 심판의 재판정이 기다릴 뿐이지만, 마음을 찢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죄를 던져내어 자복하는 자에게는 제단 위의 보혈과 회복의 은혜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는 잠깐의 현혹으로 지은 크고 작은 허물들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법정의 고발과 심판을 통해 폭로되는 고의적인 죄가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부지 중의 죄로 용서받는 은혜를 입을 것인가는 오직 우리의 정직한 자복에 달려 있습니다. 죄를 숨기는 완악함을 버리고, 자복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영혼의 샬롬을 회복하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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