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호막이 거두어진 이스라엘의 운명
세상은 거대한 맹수들의 사냥터와 같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이 타락한 세상이 작동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냉혹한 원리입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야 하고, 그 결과 세상은 늘 비명과 아우성이 가득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현장이 됩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척박한 역사 한가운데, 이 잔인한 생존 공식에서 완전히 열외된 독특한 나라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은 군사력이 강해서도, 영토가 넓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정국가(Theocracy) 이스라엘의 특별함은 ‘구별됨’에 있었습니다. 세상 나라들이 더 많은 군마와 병거를 모으기 위해 피를 흘릴 때, 이스라엘은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을 지키고, 50년마다 모든 부채와 노예를 해방하는 희년을 선포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망하겠다는 자살 행위와 같은 법이었지만, 그들은 안전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비와 햇빛을 주관하시고 이방의 침략을 막아주시는 초자연적인 보호막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이 누리는 거룩한 차별성이자 특권이었습니다.
레위기 26장은 이 거룩한 울타리가 걷히는 비극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언약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은 그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진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냉혹한 일반 역사 속으로 고스란히 편입되어 버렸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군화 짓밟힘 아래, 주변의 다른 약소국들이 겪었던 비참한 전철을 아무런 차별성 없이 그대로 밟아야 했습니다. 성읍은 포위되었고, 굶주림에 처했으며, 백성들은 원수의 땅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바람에 구르는 낙엽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는 그들의 모습(레 26:36)은, 신앙을 잃은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생존의 공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면 더 자유롭고 강한 나라가 될 줄 믿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자유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잔인한 정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하여 짓밟히게 된다는 성경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특별함은 세상의 스펙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갖추거나, 세상의 서열 구조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유행과 논리를 거스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룩한 구별됨’에 우리의 진짜 힘이 있습니다.
세상이 거칠고 험악할수록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스펙’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차별성을 잃고 약육강식의 논리에 편입되는 순간, 우리 역시 아비규환의 세상 속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특별함을 회복하십시오. 세상의 상식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거룩한 구별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이 냉혹한 정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