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벗겨진 ‘불온’의 굴레: 신앙은 왜 거리에 섰는가?
1981년 5월, 5·18 광주를 피로 짓밟고 들어선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인천제일교회당에서 하나의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한완상 박사를 초청해 열린 강연회의 주제는 다름 아닌 ‘민족의 교회, 행동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수백 명의 기독 청년들은 찬송과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동인천역까지 10여 분간 언덕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군사독재의 폭압에 맞선 자발적 거리 행진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정권은 이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옭아맸고, 경찰은 배후를 캐내어 전국적 조직 사건으로 엮기 위해 혹독한 고문과 조작을 일삼았습니다. 철도청 공무원이던 청년은 직장을 잃을 위기 속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신학생은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며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육체적 장애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10월 8일, 인천지방법원은 재심을 청구한 5명(임정상·정희윤·강우경·이민우·문광석) 모두에게 45년 만의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앞서 검찰 역시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국가폭력이 덧씌운 전과자의 멍에가 공식적으로 벗겨진 것입니다.

질문 하나: 신앙은 예배당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가?
독재정권은 언제나 교회를 향해 “정교분리”를 들이밀며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권력에 순응하고 체제를 축복하는 종교만을 ‘건전한 종교’로 공인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전두환 정권은 5·18 유혈 진압의 참상을 은폐하고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대규모 관제 문화 축제인 ‘국풍 81’을 기획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1년의 기독 청년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가 불의한 폭력으로 시민의 생명을 짓밟고 진실을 은폐할 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제단 앞의 기도에만 머물러도 되는가?”
그들에게 신앙은 사변적인 교리 암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Mishpat)와 평화(Shalom)가 질식당한 역사 현장 속에서, 억압받는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와 내딛은 걸음은 체제 전복을 위한 폭력이 아니라, 진실이 왜곡된 어둠 속에서 진리를 증언하려는 신앙고백적 행위였습니다. 법원의 이번 무죄 판결은 당시 청년들의 저항이 위법한 난동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시민적 저항이자 양심의 발로였음을 뒤늦게나마 사법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질문 둘: 왜 이들의 저항은 교회사에서조차 지워졌는가?
주목할 지점은 이번 재심 사건이 한국 교회사와 시민사회운동사에서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펴낸 방대한 사회운동사 기록물에서도 1981년 인천제일교회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거대 담론을 이끌던 중앙 중심의 유명 인사들의 투쟁만이 역사로 박제되는 동안, 지역의 현장에서 자신의 삶과 일상을 걸고 침묵을 깼던 청년들의 기록은 파편화되어 잊혔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청년들의 고문 피해와 일상의 파괴는 그저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왜곡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고립된 섬처럼 변해가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불의에 저항하며 공공의 정의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선배 신앙인들의 ‘행동하는 영성’을 스스로 망각하고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재심 무죄는 단순한 사법적 복권을 넘어, 한국 기독교가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 기억의 저장고에서 다시 길어 올려야 할 부채입니다.
질문 셋: 4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45년이라는 세월은 한 청년의 청춘을 노년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고문으로 망가진 신체, 뒤틀린 삶의 궤적,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은 무죄 판결문 한 장으로 온전히 보상될 수 없습니다. 정의의 회복이 지체될수록 폭력의 그림자는 깊어집니다.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를 향해 이 판결이 던지는 경고는 묵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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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과 국가 권력의 자기반성: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사법살인과 조작 수사에 대해 국가는 기계적 무죄 선고를 넘어 피해자들의 훼손된 삶 앞에 온전한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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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의 뼈아픈 성찰: 지금의 기독교는 과연 사회의 불의와 약자의 신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권력과의 유착에 안주하거나 기득권을 수호하는 이념 집단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습니까?
1981년의 청년들이 동인천역으로 향하던 그 언덕길은, 신앙이 머물러야 할 자리가 권력의 안락한 품이 아니라 고통받는 세상의 한복판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45년 만에 되찾은 그들의 무죄는, 오늘날 침묵과 무관심에 길들여진 우리를 향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신앙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