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은 가로 약 4.5m, 세로 약 13.5m의 직사각형 구조물인데, 창문이 전혀 없고 네 겹의 덮개(가늘게 꼰 베실, 염소털,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 해달의 가죽)로 겹겹이 덮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낮에도 칠흑 같이 어두웠을 텐데 왜 등불을 밤에만 켰을까?
1. 제사장의 활동 시간과 빛의 필요성
성소 내부에서의 주된 직무는 아침과 저녁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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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전날 밤 타오른 등불의 심지를 정리하고(꺼진 불을 손보고) 향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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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다시 불을 켜고 향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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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 동안 성소 안에서 제사장이 상주하며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낮에 성소 내부가 어둡다는 사실 자체가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낮에 업무를 위해 들어갈 때는 입구의 휘장을 걷어 올림으로써 외부의 빛이 어느 정도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 영적 상징성: ‘어둠’을 밝히는 빛
성경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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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태양 빛이 세상을 밝히는 시간으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편만한 때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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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태양이 사라진 시간으로, 죄와 심판, 영적 어두움을 상징합니다. 성막의 등불 규례가 “저녁부터 아침까지”로 명시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빛)이 세상의 어둠이 가장 깊을 때 그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등불이 됨을 강조하기 위한 신학적 설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유대 전승과 ‘서쪽 등불(Ner Ma’aravi)’의 존재
성경 본문은 ‘저녁부터 아침까지’를 명시하지만, 후대 유대교 문헌(미슈나, 탈무드 등)에서는 흥미로운 기록이 나타납니다. 일곱 갈래의 등불 중 가운데 줄기에 있는 하나, 혹은 서쪽에 위치한 한 개의 등잔은 낮에도 꺼뜨리지 않고 계속 켜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서쪽 등불’이라 부르는데, 제사장이 저녁에 다시 불을 붙일 때 불씨로 사용하거나 하나님의 임재가 지속됨을 상징하는 용도로 썼다고 전해집니다.
즉, 전체 등불은 밤에만 밝히되, 상징적인 등불 하나는 낮에도 유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성소 안은 제사장들이 정기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속죄제(Sin Offering)의 경우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 휘장 앞에 뿌리는 절차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4. 피를 휘장에 뿌리는 경우 (레위기 4장)
모든 제사에서 피를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경우에만 피를 성소 휘장에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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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레위기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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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온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 (레위기 4:16-17)
이때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했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오염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결하게 하는 매우 엄숙하고 정교한 의식이었습니다.
5. 어두운 성소에서 어떻게 피를 뿌렸을까?
낮에 성소 안은 등불을 켜지 않아 어두울 텐데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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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의 유동적 관리: 비록 출애굽기 27장 20-21절의 기본 규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를 강조하지만, 제사장이 성소 내부에서 정교한 의식(피를 일곱 번 정확히 뿌리는 일 등)을 수행해야 할 때는 필요한 조명을 관리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낮에도 켜두었던 등불(서쪽 등불)’ 전승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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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휘장을 통한 채광: 성막 입구(제사장이 들어가는 문)는 문이 아니라 ‘휘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안으로 들어갈 때 이 휘장을 젖히거나 고정하는 방식으로 외부 광선을 최소한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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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의 불씨: 성소 중앙에는 분향단이 있고 거기에는 항상 향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등불만큼 밝지는 않지만, 향로의 불씨 역시 미세한 빛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6. 신학적 의미: 빛 가운데서 드려지는 속죄
사실 성소 안에서 피를 뿌리는 행위는 ‘시각적인 정확함’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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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성소 안에서 휘장에 피를 뿌리는 제사장의 손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하는 행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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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등불이 밤에만 켜졌다면, 낮에 드려지는 속죄제는 그 어스름한 빛 속에서 더욱 엄숙하게 진행되었을 것이고, 이는 죄의 어두움을 씻어내는 피의 대속을 더욱 시각적으로 강조했을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제사장은 분명히 성소 안 휘장에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낮에도 최소한의 등불(상징적 등불)을 유지했거나, 성소 입구의 휘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하여 의식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등불 자체가 ‘하나님을 뵙기 위한 빛’이었기에, 속죄의 피를 뿌리는 거룩한 직무와 등불의 관리는 항상 병행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소 내부는 낮에도 매우 어두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막 규례는 ‘실용적인 조명’의 목적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식적 빛’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어둠이 깊은 밤 시간(저녁부터 아침)에 그 등불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사명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대낮에도 어두운 성막이었겠지만, 그 안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대로 타오르는 빛으로만 채워져야 했던 ‘구별된 공간’이었던 셈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