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의 상식과 충돌하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4장 7절이 바로 그렇습니다. 시내산 언약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우리는 이 구절을 단순히 “말씀을 잘 지키겠습니다”라는 다짐 정도로 읽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원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짧은 고백 속에 놀라운 신앙의 비결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이 고백은 ‘나아세 베니쉬마’입니다. 직역하면 “우리가 행하겠습니다(나아세), 그리고 듣겠습니다(베니쉬마)”가 됩니다.
순서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보통은 내용을 먼저 잘 ‘듣고’, 그것이 합리적인지 판단한 뒤에 ‘행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거꾸로 말합니다. “일단 행동하겠습니다. 그리고 듣겠습니다.” 현대인의 논리로는 이것이 무모한 맹세처럼 보이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난해한 순서를 우리의 일상 속 ‘관계의 원리’로 가져오면 아주 명쾌하게 이해됩니다. 이것은 군대나 배움의 현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군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휘관이 명령을 내릴 때, 병사가 “잠깐만요, 작전 계획서 좀 보여주십시오. 제가 읽어보고(듣고) 타당하면 돌격하겠습니다(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군인은 입대하는 순간 이미 국가와 상관의 명령에 따르기로 ‘관계 설정’이 끝난 존재입니다. 그러니 병사의 태도는 이것입니다.
“충성! 명령만 내리십시오(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배움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영을 배우는 제자가 코치에게 “이 동작을 왜 해야 하는지 먼저 납득시켜 주세요”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물을 먹어가며 코치가 시키는 대로 팔을 저어볼 때(행할 때), 비로소 “아, 이래서 힘을 빼라고 했구나!” 하고 몸으로 깨닫게(듣게) 됩니다.
즉,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나아세 베니쉬마)’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하고 듣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 백지수표를 내민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고 나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이미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말씀만 하십시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대하곤 합니다. “하나님, 이 말씀대로 살면 내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먼저 설명해 주시면 순종할지 말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거래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해시켜 주시면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주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여 주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순종을 결단하고 발을 내디딜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머리로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따를 때 이해되는 신비, 그것이 바로 ‘나아세 베니쉬마’의 축복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계산기를 두드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말씀하십시오”라고 반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by 박동진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