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창 5:29 노아, 수고의 땅에 주신 하나님의 위로

노아, 수고의 땅에 주신 하나님의 위로 

본문 : 창 5:25~32

2025.4.2. 소토교회 아침기도회 설교 

사랑하는 새벽기도의 동역자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창세기 5장 25절부터 32절입니다. 이 본문은 므두셀라에서 노아로 이어지는 족보의 마지막 구절들이죠. 언뜻 보면 단순히 이름과 나이만 나열된 것 같지만, 이 안에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깊은 믿음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1. 고통 속에서 태어난 위로, 노아

말씀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먼저 므두셀라가 등장합니다. 그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그 후로도 782년을 살며 자녀들을 낳고, 무려 969세까지 삽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록되었죠. 그 아들 라멕은 182세에 아들 노아를 낳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으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노아의 이름은 ‘쉼’, ‘위로’를 의미합니다. 참으로 절절한 고백이죠.

라멕의 고백에는 인간의 고단한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땅은 에덴 이후 저주받았고, 사람은 수고하며 땀 흘려야 겨우 살아갑니다. 바로 그 고통 속에서, 한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아이가 우리를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노아를 통해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죠.

2. 에녹과 므두셀라: 짧은 생애 vs. 긴 생애

그런데 이 족보를 묵상하다 보면 흥미로운 대조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에녹과 므두셀라의 관계입니다. 에녹은 365세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무려 969세를 살았죠. 가장 짧게 산 아버지와 가장 오래 산 아들의 조합입니다. 이 둘의 대비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 측정되는가?”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영적 깊이를 지녔기에 짧게 살고도 하나님께 바로 이끌려 갔다면, 므두셀라는 단순히 오래 산 것뿐이지 않느냐?”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도 그 오랜 시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믿음으로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 생애를 길게 유지하신 것이 아닐까?”

이 두 생각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누구도 자기 생명의 길이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삶이 짧든 길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길이에 따라 누가 더 복되다, 누가 더 의미 있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 안에 살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죠.

그러니 므두셀라의 긴 생애 역시 그 자체로 복된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고 믿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많은 일들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노아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고, 하나님의 뜻을 후손들에게 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로서, 경건한 삶의 본이 되었겠지요. 하나님은 그런 자를 통해 시대를 준비하십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선물, 세상 속 기쁨

그런데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므두셀라처럼 그렇게 장수한다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요? 므두셀라를 보면 인생은 유한하긴 하지만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당연히 신앙인으로 해야 할 여러 일들도 해야 하지만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즐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0절부터 13절, 거기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먹고 마시는 것,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신앙인에게 주어진 의무만 하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주시는 기쁨도 하나님의 선물로 누려야 한다는 겁니다. 음식, 쉼, 사랑, 웃음, 자연의 아름다움—all of these!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그러니 세상의 즐거움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감사함으로 누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4. 고통 속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믿음의 삶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주받은 현실 속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주셨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살아가는 사람과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기에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 이 두 모습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요?”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부르는 삶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고통 속에 있지만, 그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주가 있는 현실을 인정하되, 하나님이 위로와 회복의 사람을 예비하신다는 믿음입니다.

➤ ‘땅이 저주받았으니, 하나님도 소용없다’가 아니라,
➤ ‘땅이 저주받았기에, 하나님을 부르며, 그 위로를 기다리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그게 믿음이에요. 회복된 세상이 아니라, 깨어진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삶. 바로 그게 신앙입니다.

5. 위로의 사람, 믿음의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저주받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위로의 사람을 통해 회복의 문을 여십니다.

믿음은 모든 것이 다 풀려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깨어져 있음에도 하나님을 붙드는 선택입니다. 오늘 이 새벽, 여러분은 바로 그런 믿음을 따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오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수고가 있어도 거기 하나님의 선물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또 다른 노아, 위로의 사람을 세우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땅이 저주받고 인생이 수고로움 속에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셨으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소서. 노아를 통해 인류를 위로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를 통하여 누군가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소서. 영원을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지금 수고와 고통 속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2.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3.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기쁨들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있는가?

by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