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TV를 보게 된 이유

목사가 TV를 보게 된 이유

텔레비전을 보면서 문득 지난 날을 돌아보며
-목회를 하다 탈진이 왔다 
 
 
 
 
 
텔레비전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건 최근 5년여 동안이다.그 전까지는 텔레비전은 별로 보질 않았다.결혼하고 5년까지는 아예 텔레비전을 구입조차 하지 않았다.그리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텔레비전을 벽장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만 보기도 했다.텔레비전 보는 걸 많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별로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 자신은 텔레비전 볼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교회 일하는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기에 집에 들어오면 그냥 누워서 쉬는게 더 필요했다.나는 그냥 일하는게 즐겁기도 했고,일하는 것밖에 몰랐고,텔레비전 보면서 소파에서 뒹군다거나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이나 운동하는 것,이런 쪽은 어릴 때부터 별로 경험해보질 않아서 하는게 잘 안 되었다.쉬는 게,노는 게 더 어색하고 힘들었다.책 보는게 더 재미있고,일하는게 더 시간이 잘 갔다.
 
그러다가 덜컥 탈진이란게 찾아왔다.아주 중증 탈진은 아니었고 일상생활이나 사역 다 정상적으로 해 나가면서 의욕상실증 증세만 도드라진 가벼운 탈진이었다.그러나 그 탈진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탈진으로 인해 잃은 것도 아주 많지만,그러나 동시에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 그대로 탈진 덕분에 얻게 된 유익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탈진으로 인해 나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쉬는 것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무식하게 달리기만 했던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돌아보게 되었다.잠깐 정차하면서 주위 산과 들과 나무와 꽃도 음미하고,아무 생각없이 신나게 놀면서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씻어내야 마음이 더 건강하게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머리에 뭔가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를 잠시 멍하니 비우고 다른 영역에 몰입해보는 것이 오히려 더 뇌발달에도 좋고,마음의 휴식을 통해서 심신의 건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지혜도 너무 늦게 깨닫게 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 뒤부터는 가끔 텔레비전앞에 앉아서 흘러간 드라마도 보고 가요 프로들도 시청하고 세계테마기행이나 TV 동물농장 같은 프로도 보게 되었다.실제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드라마는 10편도 안 될 것이다.그것도 거의 대부분 최근에 본 드라마들이다.하긴 전국민이 다 봤다는 ‘모래시계’나 ‘겨울연가’도 아직 못 봤으니 말이다.‘대장금’이나 ‘허준’이나 ‘동이’같은 드라마도 재방으로만 다 본 것일 뿐이다.
 
지금은 텔레비전 자체가 내 서재에 있으니 설교준비를 하다가,책을 쓰다가 머리에 불이 날 때 잠시 잠시 텔레비전을 켜서 머리에 붙은 불을 식히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습관을 새로이 붙였다.진작 텔레비전도 가끔 보고,여행도 좀 하고,나가서 사람들하고 떠들썩 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인생을 살았으면 훨씬 더 좋았지 않았을까,생각해보지만 이미 지난 날은 지난 날.앞으로 남은 시간들이라도 일도 더 열심히 하면서,동시에 쉬기도 놀기도 더 열심히 해보리라 그렇게 생각해본다.이 두 가지를 골고루 조화롭게 열심히 한다는게 상상처럼 쉬울런진 모르지만 의지를 갖고 시도해보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장마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쉬는 날 월요일,텔레비전을 켜 놓고 소파에서 잠시 멍 때리며 뒹굴어본다.
 
 
by 박관수 목사 (구영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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