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렘(חֵרֶם), 바쳐진 마음에 타협은 없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라 인류 중에서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속량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7:28~29)
인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영역을 꼽으라면 단연 ‘물질’과 ‘소유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입술로 “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라고 쉽게 고백하지만, 막상 삶의 자리가 흔들리거나 더 큰 이익이 눈앞에 보이면 그 고백의 무게를 가볍게 바꾸곤 합니다. 레위기의 가장 마지막 장인 27장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유약함과 변심의 가능성을 추적하며,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무겁게 질문합니다.
그 질문의 정점에 바로 ‘헤렘(חֵרֶם)’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레위기 27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서원물(가축, 집, 토지 등)은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마음이 바뀌면 일정한 대가(원금의 5분의 1)를 더 지불하고 다시 개인의 소유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무른다(속량하다)’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배려하신 하나님의 법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28절과 29절에 등장하는 ‘온전히 바쳐진 것’, 즉 ‘헤렘’은 차원이 다릅니다. 헤렘으로 구별된 순간, 그것은 인간의 손이 다시는 탈 수 없는 ‘절대 성물’이 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타협도, 환불도, 취소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더 얹어준다고 해도 인간의 영역으로 되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 단호함은 물건을 넘어 ‘사람’에게 적용될 때 한층 더 무겁고 엄숙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29절은 “인류 중에서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속량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선언합니다. 이 구절은 사사로운 인신제사를 용납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맥락에서 이 법은 하나님께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 공의의 재판을 통해 ‘진멸’하기로 작정된 사형 선고의 대상, 혹은 공동체를 무너뜨린 심판물로서의 헤렘을 의미합니다.
성경 역사 속에서 여리고성의 바쳐진 물건을 훔쳐 이스라엘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던 ‘아간’의 처형이 바로 이 헤렘의 법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엄중한 공적 심판의 대상이 된 인간은 그 어떤 물질적 대가나 뇌물, 속량금으로도 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공의의 절대성을 보여줍니다. 은혜의 법 한편에 타협할 수 없는 무거운 공의의 선이 있음을 엄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무서운 차단과 격리의 법을 레위기 마지막 장에 두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과 신앙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 쉽게 ‘무르기’를 반복합니다. 뜨거운 은혜를 경험할 때는 삶을 통째로 드릴 것처럼 서원했다가도, 돌아서서 현실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슬그머니 그 고백을 철회합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형편에 맞춰 하나님과의 약속을 깎아내리는 ‘값싼 기부’의 형태로 신앙을 전락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의 도달점은 내 형편에 따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거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의 소유권을 완전히 하나님께 이양하는 고백이며, 주님의 주권 앞에 내 욕망과 죄악의 계산을 완전히 죽이는 ‘헤렘의 결단’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대한 대속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소유로 ‘속량’된 자들입니다. 죄의 값으로 인해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헤렘’의 운명이었던 우리를 대신해,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심으로 그 저주를 끊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상이 아무리 큰 가치를 제안해도 우리는 결코 죄와 사단의 영역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거룩한 ‘헤렘’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와 예물, 그리고 삶의 고백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여전히 내 뜻대로 무를 수 있는 ‘조건부 헌신’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공의를 인정하는 ‘온전한 헤렘’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인생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내 소유권을 내려놓고 주님의 절대 성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진짜 거룩한 삶의 능력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