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속 레위기 25장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사상적 충격을 안겨줍니다. 무한 경쟁과 소유의 극대화를 당연시하는 세상 속에서, 성경은 토지의 영구 매매를 금지하고 경제적 파국을 맞이한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건져내야 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바로 ‘고엘(Goel, 기업 무를 자)’ 제도가 있습니다.
고엘 제도는 가난으로 인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기업)를 팔아야 했거나, 심지어 빚을 갚지 못해 이방인의 종으로 팔려 간 친족을 위해 가까운 혈족이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를 되찾아주는 법적·종교적 책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몰락을 방관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며 그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기반을 복원시키는 전인적인 구제 제도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파 중심의 토지 제도가 사라진 오늘날, 이 고엘 제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첫째로, 고엘 제도는 ‘신앙 공동체의 연대 책임’을 역설합니다.
고엘은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수동적인 자선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친족이 곤경에 처했을 때 가장 가까운 혈족이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법적인 ‘의무’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교회 공동체는 영적 고엘의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의 가난과 아픔, 낙심과 절망을 개인의 무능이나 게으름 탓으로만 돌리며 방관하는 것은 고엘 정신에 위배됩니다. 형제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고, 지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내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책임 있는 연대가 있을 때, 교회는 비로써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둘째로, 고엘 제도는 ‘존엄성의 회복’에 초점을 맞춥니다.
고엘이 친족의 땅을 무르고 종 된 신분에서 속량해 준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다시 공동체 안에서 떳떳한 한 사람의 일원으로 자립하게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비인격적인 노예의 삶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본연의 신분을 찾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구제와 사역 역시 단순히 일회성 물질을 전달하는 시혜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소외된 이웃들이 사회적·영적 낙인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존귀한 단독자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격적 관계와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엘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를 가장 선명하게 예표합니다.
우리는 죄의 빚을 갚지 못해 영원히 파멸할 수밖에 없던 영적 파산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눈곱만큼도 없던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족(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이라는 가장 고귀한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던 자리에서 완전히 속량(Redemption)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친히 우리의 위대한 고엘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함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제 세상 속에서 ‘작은 고엘’로 살아가야 할 거룩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경제적 양극화와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홀로 서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이웃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 사랑과 기도의 역량을 흘려보내어 누군가의 무너진 삶의 자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받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레위기가 선포하는 희년과 고엘의 정신을 오늘 이 땅에 살아내는 성도의 삶입니다.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기억하며, 벼랑 끝에 선 이웃을 향해 기꺼이 언약의 손길을 내미는 참된 고엘의 삶이 우리 가운데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