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표현, ‘정결한 곳’
레위기를 읽다 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표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레위기 1장 16절은 새를 번제로 드릴 때 모이주머니와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를 버리는 곳에 던지라고 말하며, 그 재가 옮겨지는 장소를 뜻밖에도 ‘정결한 곳’이라고 부릅니다(레위기 6장 11절).
타고 남은 재와 찌꺼기가 모이는 장소를 왜 성경은 ‘정결한 곳’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은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의미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거룩은 ‘구별’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거룩’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구별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단은 거룩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부정한 것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물에서 나온 찌꺼기와 재를 제단 밖으로 옮기는 일은 단순한 정리 작업이 아니라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그 재가 버려지는 장소도 아무 곳이나 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진영 밖 정결한 곳’이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오염되거나 부정한 장소가 아니라 종교 규례상 부정하지 않은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졌던 제물의 흔적이 아무렇게나 취급되지 않도록 질서를 두었던 것입니다.
이 규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거룩은 더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을 제대로 버릴 때 유지됩니다.
진영 밖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
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신약성경에도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영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고 설명합니다(히브리서 13장 11~12절). 구약에서 속죄 제물이 진영 밖에서 처리되었던 것처럼, 예수께서도 성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그곳은 저주와 수치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곳에서 인간의 죄가 처리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장 버려진 자리처럼 보였던 곳에서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졌다는 역설입니다.
우리 삶에도 필요한 ‘버리는 자리’
이 고대의 제사 규례는 오늘의 삶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종종 거룩함을 흠 없는 상태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의 삶에도 제거해야 할 찌꺼기와 재 같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성경의 제사처럼 삶에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정직하게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거룩은 완벽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른 곳에 내려놓는 질서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버려진 자리라고 생각하는 그곳에서, 삶의 정결함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