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장로회신학교의 외국인 선교사 교수들은 조선의 독립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일부는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다른 일부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거나 선교 활동의 지속을 위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아래는 주요 선교사들의 태도와 행동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 마포삼열(Samuel A. Moffett)
마포삼열 선교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교육과 계몽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였으며, 독립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특히, 그는 조선인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2. 소안론(William L. Swallen)
소안론 선교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도덕학과 신구약 해석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독립 열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교육과 신앙 생활을 통해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3. 왕길지(George O. Engel)
왕길지 선교사는 교회사와 교수법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근대화와 교육 발전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교육을 통한 사회 발전이 독립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교육 선교를 통해 조선인들의 역량 강화를 도모했습니다.
4. 이눌서(William D. Reynolds)
이눌서 선교사는 신학과 신약 해석을 가르쳤으며, 조선어 성경 번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영적 성장과 자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조선의 독립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5. 기일(James S. Gale)
기일 선교사는 말세학과 신약 해석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문화와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서구에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독립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6. 곽안련(Charles A. Clark)
곽안련 선교사는 강도법을 가르쳤으며, 조선의 독립운동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자주성과 독립 의지를 존중하였으며, 교육과 신앙을 통해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7. 사우업(C. E. Sharp)
사우업 선교사는 목회학과 구약사를 담당하였으며, 선교 활동의 지속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인들의 독립 열망을 이해하고, 그들의 교육과 신앙 생활을 지원했습니다.
8. 어도만(W. C. Eerdman)
어도만 선교사는 구약 해석을 가르쳤으며, 조선의 독립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육과 신앙을 통해 조선인들의 자립과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9. 원두우(H. G. Underwood)
원두우 선교사는 신학과 심리학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독립 열망을 지지하며, 국제사회에 조선의 상황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10. 배유지(Eugene Bell)
배유지 선교사는 신학과 신약 해석을 가르쳤으며, 조선의 독립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선교 활동의 지속과 보호를 위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 했지만, 조선인들의 교육과 신앙 생활을 통해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11. 마로덕(L. O. McCutchen)
마로덕 선교사는 신구약 해석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독립에 대해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교육과 선교를 통한 사회 발전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조선인들의 역량 강화를 통해 독립의 기반을 다지고자 했습니다.
12. 라부열(S. L. Roberts)
라부열 선교사는 신구약 해석을 가르쳤으며,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육과 신앙을 통해 조선인들의 자립과 발전을 지원했습니다.
13. 업아력(A. F. Robb)
업아력 선교사는 교회사와 신약 해석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독립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선교 활동의 지속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 했지만, 조선인들의 교육과 신앙 생활을 통해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