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까이 갈수록 실망이 더욱 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런 결점과 실망스런 모습을 보고 실망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도울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긍휼의 마음을 갖고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약점을 비난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하기에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떠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가 떠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 즉 버려야 하는 것, 가지고 가지 않고, 두고 가야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그의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거하는 것은 갈대아 우르 지방으로 우리가 잘 아는 문명의 발생지이고, 엄청나게 비옥한 땅이어서 농사도 잘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족장정도의 지위를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 그리고 안정되고 높은 지위가 보장된 그런 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내가 버려야 할 것, 두고 가야할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얻을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다른 부연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 땅이 얼마나 비옥하다느니 가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이라느니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났습니다.
자기 주도형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할 때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사명이 주어지면 일을 한답니다. 친화형의 사람들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 예를 들어 가나안 땅에 네가 좋아하는 누구도 간다더라 그러면 간답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일을 하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옆에서 세게 이끌면 간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명령하시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 땅이 얼마나 좋고 거기서 살면 지금보다 어떻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떠나면 내가 네게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왜 떠나라고 하시나요? 여기 머물러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 바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땅으로 널 이끌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즉 네가 복이 되어서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너때문에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일종의 안보협약을 맺으십니다. 널 축복하면 내가 그를 축복할 것이요, 널 저주하면 그 저주가 저주한 자에게 돌아가도록 손봐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겠다,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스스로 속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주저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안합니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해볼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이 있으면 그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순종하며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더욱 깊은 신뢰의 관계를 쌓으세요. 더욱 깊고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생을 장막을 걷는다는 표현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막이란 텐트입니다. 한번 쳐놓으면 사시사철 눈이 오고 비가 오더라도 그대로 있는 집이 아닌, 때가 되면 걷어서 옮겨야할 것이 장막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이런 장막에 묘사하며 때가 되면 옮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이사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무엇이냐? 잘 옮길 줄 아는 것입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