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단식장과 청와대 앞에서 유민 아빠를 보고, 단식장에서 문재인 의원과 함세웅 신부님을 만나 말씀을 나누었다.
연구실로 가던 발길을 돌려 오늘은 꼭 용기를 내어 유민 아빠에게 직접 한 말씀이라도 드리리라 결심하고 광화문으로 갔다. 뜨거운 볕 아래 한참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좀처럼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빵집에 가서 좀 기다렸다. 다시 단식장에 갔더니 유민 아빠는 안 계시고 문재인 의원과 함세웅 신부님이 유민 아빠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유민 아빠 옆에 계시던 유가족에게 물었더니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대통령 면담을 위해 가셨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바로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갔더니 유민 아빠는 뜨거운 볕 아래 사복을 입은 수많은 남녀 경찰과 기자단에 둘러 싸여 지팡이를 짚고 벌을 서고 계셨다. 한동안 지켜보고 섰다가 답답한 마음에 다시 급히 단식장으로 갔다. 문재인 의원에게 상황을 이야기 하고 청와대 핫라인…으로 연락을 취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보좌관에게 문의원과 얘기할 수 있는가 물었더니 이제 단식을 하겠다고 하니 조금 조용히 머물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의원은 나를 쳐다보았고 귀를 기울일 자세를 취하셨다. 그래서 문의원에게 유민 아빠가 아무 대책없이 기다리게 하지 말고 청와대 핫라인으로 연락을 취할 수 없는지 물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미 청와대 요인이 다 알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문의원에게 유민 아빠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 모른척하지 않고 단식장에 기꺼이 나와 줘서 교황이 유민 아빠 손을 잡아 준 것보다 더 반갑고 고맙다고 얘기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교황보다 더 반갑다는 내 말에 함세웅 신부님의 표정은 조금 의아해 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다. 그렇다고 로마주교님이 유민 아빠에게 내민 따스한 손길과 경청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크게 감사하고 아름다운 분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오늘 여덟 번째 유민 아빠를 가까이서 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직접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사실 나보다 젊은 분이 60세 노인처럼 주름이 늘어나고 몸이 상한 모습을 보면서 힘드실까 염려되어 감히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문재인 의원과 유민 아빠 옆에 계시던 유가족 분에게는 조금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
문재인 의원은 정말 경청을 했고, 내 얘기 가운데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질문을 했다. 요지는 누구나 바라는 바와 같은 것이었다. 유민 아빠 스스로 “나는 내 할 일을 이제 다했다”고 말씀하셨듯이 그 분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하셨으니, 단식을 중단하시고 살아남아서 국민과 함께 투쟁하자고 말씀드려 달라고. 정신은 무한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만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분명히 정해져 있는 법, 유민이 동생 유나를 위해서라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몸이 손상될 때까지 단식을 하시지 말도록 제발 옆에서 부탁드려 달라고. 제발 빨리 의료조치를 받으시게 하라고. 그랬더니 유가족 분이 온 국민이 함께 단식 중단 요청을 하면 그 말을 따를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단식장에서 돌아서는 데 철학과 김정관 선배님(지금은 개명을 하셨지만)이 눈 앞에 서 계셨다. 무슨 일로 오셨나 물었더니 고1 아들이 단식장에서 3일을 단식하고 마치는 날이라 죽을 사 먹이러 오셨다고 했다. 멋진 부자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