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뜰, 자욱한 연기 사이로 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비명 섞인 소리가 들립니다. 레위기 1장을 읽다 보면 현대의 세련된 예배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거칠고 잔인해 보이는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안수를 하고, 목을 따고, 피를 뿌리고, 가죽을 벗겨 각을 뜨는 과정들.
우리는 흔히 이 장면을 보며 하나님께 드리는 ‘값비싼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레위기의 제사 의식을 깊이 묵상해 보면, 제단 위에 놓인 그 짐승은 결코 하나님께 바치는 단순한 선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곳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죽어야 할 나를 대신한 생명
번제의 첫 단추는 ‘안수’입니다. 예배자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영적인 전가가 일어납니다. 나의 추한 죄와 허물, 그리고 나의 생명이 그 짐승에게 옮겨갑니다. “이 짐승이 죽는 것은 곧 내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처절한 고백이 안수에 담겨 있습니다.
제물은 나의 소유 중 일부를 떼어 드리는 기부 물품이 아니라, 죽어야 마땅한 나를 대신해 죽어가는 ‘나의 대리자’입니다. 제단 주위에 뿌려지는 피를 보며 예배자는 전율했을 것입니다. “저 피는 원래 내 몸에서 흘러야 했던 피구나.”
각을 뜬다는 것: 자아의 해체
본문은 제물을 잡은 뒤 “각을 뜨고”(레 1:12)라고 명령합니다. 마디마디를 자르고 부위별로 해체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아의 해체를 상징합니다. 꼿꼿하게 서 있던 나의 자존심, 내 생각대로 살려 했던 고집스러운 머리, 세상의 탐욕으로 가득 찼던 내장, 그리고 죄의 길을 서슴지 않고 걸었던 정강이까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통째로 드려질 수 없습니다. 낱낱이 파헤쳐지고 해체되어야 합니다. 내 안의 은밀한 죄악과 위선을 물로 씻어내고, 오물 섞인 모이주머니를 진 밖으로 던져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제단에 오를 자격을 얻습니다.
아주 찢지 말고, 그러나 온전히 태우라
흥미로운 점은 새를 드릴 때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레 1:17) 불사르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파괴하여 멸절시키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향기를 끌어내려 하십니다.
제물이 형체도 없이 타올라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 때, 성경은 비로소 그것을 “향기로운 냄새”라고 부릅니다. 나의 형체(자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불에 온전히 삼켜질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거룩한 존재로 변모합니다.
오늘, 당신의 제단은 안녕하십니까?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구약의 번제는 멈췄지만, 예배의 정신은 여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주님께 드리는 ‘선물’입니까, 아니면 나를 드리는 ‘헌신’입니까?
제단 위에 소나 양을 올려두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제가 여기 누워 있습니다. 저의 교만을 꺾으시고, 저의 더러움을 씻기시어, 주님이 기쁘게 받으실 향기로운 연기가 되게 하소서.” 이 고백이 살아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하늘 문을 여는 진정한 번제가 될 것입니다.